외로운 남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7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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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시앤은 자리를 뜨며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후회하는 듯이. (-) 우리는 서로 원망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어쩌면 우리의 사랑이 실패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상상할 만큼 순진했다. (-)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사랑은 태산도 넘고 무쇠도 부수며 온갖 장애를 넘는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 우리가 집어치우고 포기하는 것은 우리의 무능 때문이다. '위대한 사랑'은 포기가 무엇인지 모른다. (-)



(-) 영화를 본 후에는 잠깐 산책을 했다. 멍하니 진열장을 바라보다가 여자들을 보려고 조금 정신을 차려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가끔 영화를 한 편 더 보러 가기도 했는데, 대개 범죄영화였다. 혹은 선술집 테라스에서 맥주를 한두 잔 비웠다.

살짝 심심했다. 일요일 오후보다 쓸쓸한 것이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젊은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고 가고, 배가 부른 아내가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을 보면 그들을 죽여버리든가 내가 죽어버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맥주 서너 잔째부터는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워졌고, 심지어 유쾌해지기까지 했다. (-)



나는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대낮이 더 나았다. 어두워지면 불안해졌다. (-) 거리가 어두워 반쯤 암흑인데도 나에게 안도감을 주던 웅성대는 군중이 기억난다. (-) 두려워졌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든 것이.(-) 나아졌다. 일종의 쾌활함이랄까. 자주 이렇게 유쾌해지고 갑자기 행복해지지만, 이런 느낌은 그리 강하지 않아서 곧 사라진다. 내게는 슬픔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하나 있지만,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이란 내 주위의 사물이나 사람들을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을 응시하는 것. 아주, 아주 주의깊게 바라보면 갑자기 이 세상 모든 것을 마치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러면 그것은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해졌다.



내가 보았던 모든 길과 도시, 거리, 그리고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잊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썼다. 나는 이 세상에 던져졌고, 그런 사실을 마치 난생처음 안 사람처럼 새삼스레 깨달았다. 가끔 느끼곤 하던 세상의 이런 생소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것은 나 그리고 우리가 습관에 따라 으레 해왔던 배우나 엑스트라 역할에서 벗어나, 세상에 에워싸여 있으나 세상 속에 있지 않은 사람, 마치 연극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거리를 두고 떨어져 더이상 참여하지 않는 것과도 같았다. (-) 불안감이 사라졌다. (-) 왜냐하면 이 보편적 기계와 이 사람들, 이 거리들과 이 움직임들은 매번 추하지 않으면 아름답고, 좋지 않으면 나쁘고, 유리하지 않으면 불리하고, 위험하지 않으면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일종의 도덕적 중립을 얻기에 이르렀다. 혹은 미학적 중립을. '그들은' 더이상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나는 식당 안에서 그들이 내뱉는 말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모든 것이 덧없는 환영일 뿐이며 일종의 무(無)의 환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거리에, 일종의 거리, 일종의 공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나뿐이었다. 나머지는 구분할 수 없는 '이 모든 것들'이었다. (-)



(-) 나는 파란 꿈은 두세 번밖에 꾸지 않은 것 같다. 파란 꿈이란 밝은 햇살 속에서 도망치듯 꺼져가는 바람과 그림자만 느낄 수 있는 새벽녘에 꾸는,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할 수 없어서 안타까운 꿈을 말한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삶이 걸레처럼 찢어져 사라져버린다. 괴롭지 않으려면 체념해야 한다. 나는 체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산다. 그리고 자주 그럭저럭 체념하는 데 성공했다. 진실하고 깊은 체념은 아니었다. 가끔 화가 치밀기도 한다. (-)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앞으로도 배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 벽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나는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무지 속에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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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어둠 - 우울증에 대한 회고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임옥희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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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심리적 자기 혐오─뭐라고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자부심의 상실 같은─는 우울증의 가장 보편적인 증세였다. 병이 진행되면서 나는 나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으로 인해 점점 더 고통받았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감을 눈부시게 회복시켜줄 상을 받기 위해 나흘 일정으로 황급히 파리로 날아왔던 것이니, 내가 느끼는 비애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나의 상황과 역행하고 있었다.

 

 

시상식 당일이었다. (-) 나는 퐁 루와얄 호텔에서 아침 늦게 일어났다. 오늘은 기분이 상당히 좋은 것 같은데, 라고 혼잣말을 하고 아내 로즈와도 얘기를 나눴다. 약한 진통제 할시온 덕분에 불면증을 가까스로 진정시켜 잠을 몇 시간 잔 후라 기분이 꽤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덧없이 이지러질 이런 쾌활함은 거의 의미 없는 반복현상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밤이 오기 전에 얼마나 끔찍한 상태에 빠져들 것인지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 매 단계 악화되는 상황을 조심스럽게 감시 관찰하고 있었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지적 선언은 『시지프의 신화(Le Mythe de Sisyphe)』에 등장하는 바로 이 문장이다. "진정으로 진지한 철학적인 주제는 오직 하나인데,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철학적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당혹스러웠다. (-)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으나 언제나 실패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자살충동을 가지고 있다는 그 전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

(-) 그는 어떠한 자살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시지프의 신화』에 죽음을 지배하는 생의 승리라는 엄숙한 메시지(희망이 부재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가까스로)가 담겨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살에 관한 카뮈의 진술과 이 주제에 관한 그의 집착이, (-) 끈질기게 따라다녔던 정서장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여주인공 엠마 보바리가 마을 신부에게 도움을 청하는 순간이다. 간통으로 인한 죄의식에 시달리다 미칠 지경이 되어 지독한 우울증에 빠진 엠마─마침내 자살로 치닫고 마는─는 신부에게 이처럼 비참한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달라고 주저하면서 부탁한다. 하지만 단순한데다 그다지 현명하지도 않은 (-) 진부한 종교적 충고나 들려주는 신과 남자, 어느 누구로부터도 위안을 받을 수 없었던 엠마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되었다.

 

 

(-) 억지스런 농담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진심이었다. (-) 강한 성욕의 소유자들에게는 음탕한 백일몽이 환상이 아니라 사실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날 상담 시간에는 위안거리가 전혀 없었다. 나는 정말 비참한 기분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시간을 맞이할 차비를 했다. 손님 몇 사람을 저녁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저녁식사는 반갑지도 그렇다고 공포스럽지도 않았다.(-) 그 같은 무심함 자체야말로 우울증의 병리학적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이 상태는 익숙한 고통이 시작되려는 고통의 문지방이 아니라 고통의 평형현상이다. 말하자면 정신이 (-) 고통을 흡수할 수도 없는 상태인 셈이다.

고통에는 사람들이 그걸 경험하면서도 경감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사람들은 날마다 다양한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비롭게도 그런 고통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

그러나 우울증에는 이와 같은 구원에 대한 신념, 혹은 궁극적인 회복에 대한 신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럭저럭 견딜 만한 치료법이 있다 하더라도 일시적일 뿐이며 더욱 극심한 고통이 뒤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름아닌 이 절망감이 고통보다 더욱 인간의 영혼을 파멸시킨다. (-) 이 병의 경우에는 고통에서 고통으로 이동한다. (-)

 

 

(-)최초로 우울증의 발작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 병이 지나가야 할 모든 과정을 전부 다 거쳐야만 낫는다는 말을 듣게 된다. 아니, 그것은 확신에 가깝다. 이것은 힘든 일이다. 안전한 해변에 서 있는 사람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엄청난 모독이다. 그러나 모독이 될지라도 반복해서 그런 격려를 보여주면, 그리고 그런 격려가 충분히 끈질기고 헌신적이고 열정적이라면 위험에 빠진 사람은 거의 언제나 구출된다. 극히 심각한 우울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비현실적인 절망 상태에서 과장된 병마와 치명적인 위협으로 인해 갈가리 찢기고 분열된다. 친구, 사랑하는 사람, 가족, 존경하는 사람들은 거의 종교에 가까운 헌신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생명의 가치를 설득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울증 환자에게 생명의 가치는 스스로 느끼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종종 갈등을 일으키지만, 그런 헌신은 무수히 많은 자살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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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이순애 엮음, 이홍락 옮김 / 창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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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무엇인지 누가 가르쳐다오'라는 리어왕의 물음은 '리어왕의 그림자'라는 어릿광대의 대답에 의해 그 물음이 지닌 자기부정성을 명백히 한다.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은가라는 통렬한 의문을 자신에게 되던지는 것이다. (-)

 

 

생산자로서의 측면(-)을 방대한 기구적 체계 속에 흡수시켜버린 탓에 그 체계 속에서 가루 상태로 흩날리게 된 존재가 유일하게 남은 소비 측면에서만 자신의 활동을 안전하게 발휘하려고 할 때, 거기서 발생하는 자아 지향은 앞에서 말한 대로 욕구의 만족을 향한 자기내적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연모하는 태도의 근저에는 사태의 성격상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을 품에 안을 수 없는 데서 오는 욕구불만과 불안의 잠재적 고조가 숨어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온전히 긍정하고 그러한 욕구의 만족만을 일편단심 추구할 때에도 자족보다는 불만과 불안이 끊임없이 맴돈다.

구체적인 사물과 대면하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자아는 사물 그 자체의 한계를 자신의 욕구의 한계로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모든 지각 형식을 통해 종합적으로 사물의 한계를 스스로 알게 되므로 거기서 오는 자제력은 도덕적인 명령에 의한 외부로부터의 제한 같은 것과는 달리 극히 자연스러운 내부로부터 우러나오는 자족이 된다. 그러나 대량생산과 대량유통 및 대량소비의 기구 속에 침몰하여 사물과의 관계를 상실한 제품 음미기로서의 자아가 발하는 욕구는 줄 끊어진 연처럼 무한정해지고 만다. (-) 소비의 자아에 가해지는 제한은 사물과의 상호관계가 아니라 돈이라는 이름을 지닌 '인쇄된 종잇조각'의 보유한도뿐이다. 그 '기호'의 명령만이 욕구에 대해 금지를 명령한다. (-)

그리고 숙명적으로 불안정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오히려 더욱 용의주도하게 자아방위를 위한 장치를 만들어내려 한다. 자신에게 지나친 위협이나 겁을 줄 가능성을 가진 자, 즉 '타자'는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또는 일이든 간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릴 일이 없도록 아예 멀리한다. (-) '타자'와의 대면적인 상호교섭으로서의 경험은 이런 식으로 주도면밀하게 배제된다.

그러나 무균상태의 온실로부터 세계의 사물을 제멋대로 선별하여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것만 골라서 쓰는 태도가 횡행하는 곳에서 세계는 어떻게든 변형될 수밖에 없다. 거기서의 세계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물(物)이 아니라 오로지 소비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될 때에만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가상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거기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리어왕의 허깨비처럼 '세계의 허깨비'로만 끝나지 않는, 물건 목록으로까지 폄하되어버린 세계다. 우리를 둘러싼 현대적 나르시시즘은 그 속에 이러한 세계상을 감추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생산의 사회관계'가 은폐되어 제품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활보함으로써 그것이 지니는 소비상의 아름다움이 마술적인 매력을 마음껏 뽐내는 '제품의 물신숭배'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한결같이 긍정적인 자아가 행하는 만족 추구는 그 같은 '물신숭배'를 촉진하는 정신적인 요인이 될지언정 그것에 제동을 걸지는 못한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 나르시시즘의 자아를 대신해 '타자'에 대해 생각하는 자아가 되살아나야만 한다. 오래된 문구를 흉내내서 말하면 '나는 타자에 관해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모든 것에 대해서 '서로 낯선 관계'에 있는 자는 '처음 보는 자'가 흔히 보이는 미심쩍어하는 눈으로 마치 '기이한 것'을 보듯이 사물을 들여다본다. 정신없이 들여다보는 그 같은 주시에는 멍한 '방심'과 '망연자실'이 포함되어 있으며 동시에 들여다보는 물체에 대해서는 '극도의 각성'을 하게 된다. 그럴 때 사물을 수단으로 취급할 때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사물의 가려진 차원'에까지 눈길이 닿게 되며 사물의 자연을 그것 자체에 입각하여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사물에 대해 생각함'은 바로 그 사물에 대해 '친밀한 자에서 전혀 낯선 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잘 길들여 자신의 소비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존재를 접하게 된 상황이 내포하는 '기묘한 의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한 무의 의식상태, 이 세상의 경계선으로 되돌아와 선 상황이 바로 '타자를 그것에 입각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이 '고래 배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오늘날에는 '낯선 자'의 시선에 관해 깊은 통찰을 행한 바로 그 사상가 본인이 (-) 지적했듯이, '나는 가끔 생각한다. 고로 나는 가끔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뽈 발레리Paul Valéry). (그러나 데까르뜨적 확실성과 항상성을 상실한 채 이따금 되돌아와 숨을 돌리는 간헐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나'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간헐적인 존재가 가져다주는 제동·억제 작용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

 


그리고 만약 그 간헐적인 존재가 늘어나서 그 간헐성의 발생빈도가 잦아진다면 그것들의 상호집합의 결과, '타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우리 밖에 서 있는 사물의 자연스러운 세계를 소생시키며 그것을 향해 마음을 비우고 대면하는 '우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그때에는 "눈이 펄펄 내립니다/사람은/그 아래서 살고 있는 것이랍니다"라고 일찍이 우리에게 겸허함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던 어느 산마을 소년의 감수성이 우리 사회의 공통항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는 '고래 배 속'의 이물질이 되어 얼마간의 가능성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행위에는 사용가치 극대화라는 소비 자본주의 논리가 체현되어 있다. 이때, 버리는 주체는 인간이고 버려지는 것은 사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소외되는 것은 인간이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성 속에서 사물은 결코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지 않는다. 일회성은 사물의 평면적인 성격과 만나는 것만을 허용하고 사물 속에 깃들어 있는 비밀과 교섭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앤다.

 

 _장정일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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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랄라
말랄라 유사프자이.크리스티나 램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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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이 있는 골목은 차가 들어올 수 없어서 나는 하천 아래 찻길에서 버스에서 내려 빗장을 지른 철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누군가 나를 공격한다면 아마 이 계단에서일 거라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처럼 나 역시 자주 몽상을 했고, 때로는 수업 시간에도 다른 생각에 빠져 집으로 가는 길에 테러리스트가 튀어나와 그 계단에서 내게 총을 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신발을 벗어서 그 테러리스트를 때릴까?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이나 나나 다를 바가 없다. 차라리 내 생각을 주장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좋아요, 쏘려면 쏘세요. 하지만 먼저 내 말을 들어보세요. 당신이 하는 일은 옳지 못해요. 나는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어떤 반감도 없어요. 나는 그저 여자아이들도 모두 학교에 가게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일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선생님이나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지기는 힘들다. 나는 달랐다. 나는 장래 희망이 의사에서 발명가나 정치가로 바뀌었을 때 결코 그 꿈을 숨긴 적이 없다. 모니바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늘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모니바에게 말했다. "탈레반은 어린 여자애를 공격한 적이 없어."

 

 

평소와 다름없이 버스가 큰길 육군 검문소에서 오른쪽으로 꺾은 후 버려진 크리켓 경기장을 지나 완만하게 길모퉁이를 돌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것이 기억의 마지막 조각이다.

 

우리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밝은색 옷을 입고 턱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가 도로로 걸어들어와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운 것이었다.

"이게 쿠샬 학교 버스요?" 그가 우리 기사에게 물었다. 우스만 바이잔은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버스 옆면에 학교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가. "맞아요." 그가 말했다.

 

(-)"저기 봐, 또 기자가 인터뷰하러 오나봐." 모니바가 말했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이런저런 행사에 참석해 여성 교육을 옹호하고, 우리를 막고자 하는 탈레반 같은 사람들을 비판하는 연설을 하기 시작한 이후 종종 기자들이, 심지어 외국 기자들까지 찾아오곤 했지만 이렇게 도로에서 접근하는 일은 없었다.

남자는 앞에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독감에 걸린 사람처럼 코와 입을 손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대학생처럼 보였다. 그때 그가 홱 돌아 버스 후미로 오더니 우리에게 몸을 기울였다.

"말랄라가 누구냐?" 그가 물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몇몇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있던 유일한 아이였다.

그때 그가 검은 권총을 들어올렸다. 나중에 그 총이 콜트 45구경임을 알았다. 아이들 몇 명이 비명을 질렀다. 모니바는 내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고 말해주었다.

친구들 말로는 그가 세 발을 연달아 쏘았다고 한다. 첫번째 총탄이 내 왼쪽 눈 옆을 뚫고 들어가 왼쪽 어깨로 빠져나왔다. 내가 왼쪽 귀에서 피를 흘리며 모니바 앞으로 쓰러졌고, 뒤이은 두 발은 내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맞았다. (-)

 

 

내가 태어났을 때 마을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를 위로했고 아무도 우리 아버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나는 새벽, 마지막 별이 깜박이며 사라질 무렵 이 세상에 왔다. (-) 아들이 태어나면 축포를 쏘고 딸이 태어나면 커튼 뒤에 숨기는 나라, 그저 요리를 하고 아이를 낳는 일이 여자의 평생 역할인 나라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만일 한 남자가, 즉 파울즐라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면, 한 소녀가 그것을 바꾸는 건 왜 못하겠는가?



저 아래, 우리집 옥상에서는 어머니가 하늘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울파트 선생님과 함께 읽기 공부를 하던 중에, 힘겹게 '책'이나 '사과' 같은 낱말들을 배우던 중에 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소식이 뒤죽박죽으로 전달되어 어머니는 내가 사고를 당해 발을 다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당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에게 소식을 전했고, 기도를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알라신이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들의 기도를 더 가까이서 듣는다는 우리의 믿음 때문이었다. 곧 집은 모여든 여인들로 가득찼다. 



우리 인간은 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지 못한다. 신은 우리에게 탁월한 뇌와 사랑하는 섬세한 마음을 주었다. 신은 말을 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두 입술을, 세상의 빛깔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두 눈을,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두 다리를, 일할 수 있는 두 손을, 아름다운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를, 사랑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두 귀를 주어 우리를 축복했다. 내 귀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 기관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그것을 잃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의사들이 존재하는 데 대해, 내 회복에 대해, 그리고 비록 우리가 생존을 위해 힘겹게 싸우는 이 세상일지라도 세상에 우리를 보내준 데 대해 알라신께 감사를 드린다. (-)한 사람이 내게 총을 쏘았다. 그 총알은 일 초 만에 내 뇌를 부풀어오르게 했고 내 청각을 빼앗았고 내 왼쪽 안면신경을 잘랐다. 그 일 초가 지난 후 수백만의 사람들이 내 생명을 위해 기도했고, 뛰어난 의사들이 내게 다시 내 몸을 돌려주었다. (-) 내가 마음속으로 유일하게 바란 것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 (-) 매일 신에게 기도했다. "나는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제가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총격 사건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는 않지만 매일 거울을 보면 그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안면신경수술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치료를 했지만 결코 예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완전하게 눈을 깜박일 수도 없고, 이야기를 할 때면 왼쪽 눈이 많이 감긴다. (-)

 


나는 아버지도 운다는 것을 안다. 내가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면 내 머리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울고, 오후의 낮잠에서 깨어나 정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내 목소리도 섞여 있음을 확인하고는 또 운다. 아버지는 내가 총에 맞은 것이 당신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식을 테니스 챔피언으로 만들려는 극성맞은 아버지처럼 나한테 앞에 나가 연설하도록 강요했다고, 마치 나는 내 생각도 없는 아이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힘든 일이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바쳐 일해온 것을, 빈손으로 시작해 이제 천백 명의 학생들과 칠십 명의 교사들이 공부하고 가르치는 세 채의 건물로 일군 학교를 남겨두고 왔다. 나는 아버지가, 검은 산과 하얀 산 사이 좁다랗게 앉은 시골 마을 출신의 가난한 소년이 그렇게 이루어낸 것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있는지 잘 안다. (-) 



(-)우리가 쇼핑몰을 걷고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주위에 너무나도 많은 남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총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총을 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겁에 질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말랄라, 넌 이미 죽음과 대면한 적이 있어. 이건 네 두번째 삶이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 두려워하면 넌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연설을 하고 난 후 나는 세계 곳곳에서 지지의 메시지를 받았지만 나의 조국은 대부분 침묵으로 반응했다. 오히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같은 파키스탄 형제자매들이 내게 등을 돌리는 것도 보았다. 그들은 "명성에 안달난 십대 아이"가 떠드는 것이라며 비난했다. (-)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약속을 하고는 결코 지키는 법이 없는 우리나라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을 보며 실망했기 때문임을 안다. 그런 약속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끝없는 공격은 전 국민을 충격에 몰아넣고,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나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바로 평화와 교육이라는 내 목표에 대한 지지라는 것을.



오늘날  우리 모두는 교육이 우리의 기본권임을 안다. 서구에서뿐만이 아니다. 이슬람교에서도 우리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주었다. 이슬람교에서는 모든 소년 소녀가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 신은 우리가 왜 하늘이 푸른지 알길 원하며, 바다와 별에 대해 배우길 원한다. 나는 이것이 큰 싸움이 될 것임을 안다. 세계적으로 초등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오천칠백만 명이며, 그중 삼천이백만 명이 여자아이들이다. 슬프게도 우리나라 파키스탄이 최악의 경우여서, 헌법으로 모든 파키스탄 어린이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오백십만 명이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들 중 오천만 명이 문맹이며, 그중 3분의 2가 우리 어머니 같은 여성이다.

여학생들은 계속해서 살해당하고 학교는 폭파당한다. 3월에는 카라치의 한 여학교가 공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상장 수여식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 폭탄과 수류탄이 운동장으로 날아들어, 교장 압두르 라시드가 사망하고 다섯 살에서 열 살 사이의 어린 학생 여덟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중 여덟 살인 한 어린이는 불구가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울고 또 울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잘 때는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니. 어떻게 어린애들에게 그럴 수 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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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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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이후 내가 쓴 거의 모든 글은 10매든 150매든 세월호에 관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는데’ 잃었다. 그 분노와 후회. 돌이킬 수 없음. 미칠 것 같은 그리움과 주저앉음. 만 3년이 지나도록 변화가 없다.˝ 고통을 살기 위해서, 고통과 살아가기 위해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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