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원씨는 어디로 가세요?
유성원 지음 / 난다 / 2025년 5월
평점 :
2025년 10월, 책방봄 북토크 중에서
저는 남자를 좋아해요 혹은 남자를 사랑해요라고 말하려고 해도 그 관계의 형태 자체가 이 소수자 내부 안에서도 굉장히 비규범적인 거 문제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형태였기 때문에 그걸 말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적인 대중에게 호소하는 설득하는 전략 중에 우리 모두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이 사람의 경험을 번역하거나 해석해서 납작하게 만들어서 떠먹기 좋게 살을 발라서 주는데 저는 너무 잔가시가 많은 거예요. 살을 분리해내기에는 그냥 다 버리는 게 나은 그런 가시덩어리의 살이었어요. 그래서 이 가시인 나. 살만 발라내려고 하면 다 부서져버리는 이 나를 어떻게 세상에 드러낼 수 있을까? 그걸 계속 글을 쓰면서 좀 고민했었던 것 같고.
2019년도만 해도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렇게 선으로 이해하진 못했어요. 그냥 점처럼. 일회성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이 사람을 내년에 안 볼 수도 있고 그냥 한 번 만나고 끝이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1월에 봤는데 봄이 되니까 또 봐야 되고 여름에도 보고 가을은 건너뛰고 겨울에 보고 이렇게 반복적으로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 시간이 흐르면서 별다른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이 사람과 어떤 관계가 생겨났고 이 사람과 함께 계속해서 살아가겠구나 하는 걸 좀 의식하게 된 게 한 몇 년 전부터인 것 같아요. 그전까지만 해도 예를 들면 뭐 회사는 그냥 고용관계 계약관계니까 그만둘 수 있고 떠날 수 있고 심지어 사는 것도 그냥 선택이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이제 죽지 않을 거고 살아 있을 거고 계속 일할 거고 하는 식으로 좀 마음을 바꾸게 된 그런 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거는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저의 소명처럼 느껴지는 걸 좀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저희 어머니가 뭐 칼국숫집을 하시는데 칼국수집이 그래도 그럭저럭 장사가 되는 편이라고 한다면 제가 종종 가서 일손도 거들고 하는데 갑자기 거기가 어디에 소개돼가지고 손님이 많이 몰려올 수도 있잖아요. 그럼 이제 제가 잠깐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정말 많이 도와줘야 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하지만 그 일을 도와주면서 저는 계속 마음속에 꿈이 있는 거예요. 나는 사실 어떤 과학자가 될 거야, 어떤 세균 실험을 잘하고 싶어, 뭐 이런 꿈이 있을 수 있는데 그래서 칼국숫집에서 일하는 걸 임시적이라고 생각하고 이거 말고 진짜 하고 싶은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근데 그때 이제 제가 배운 거는 이게 내가 할일이구나라는 걸 어느 순간 받아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칼국숫집에 오는 사람들이 그냥 나를 힘들게 하는, 날 노동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나 어머니가 만들어준 이 음식을 맛있게 먹고 그게 그 사람들 삶에 또 양분이 되고 하는 굉장히 의미 있는 노동의 어떤 조각과 관계 속에 내가 위치하고 있고 그거를 가능하게 하는 것에 대한 감사함 같은 것이 그때 생겼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각을 전환하면서부터는 선택지를 아예 없애버렸어요. 옛날에는 사는 거는 살아도 되고 그만 살아도 되는 선택으로 생각하고 언제든 죽으면 되니까 죽으면 되니까라는 마음을 먹고 살았거든요. 그러면 이제 하기 힘든 일을 할 수 있고 삼키기 힘든 걸 삼킬 수 있고 화가 나는 걸 참을 수 있는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 모든 걸 끝내버리기 때문에 가능한 인내가 아니라 정말로 내가 이 일이나 상황이나 주어진 조건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인내 같은 것들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쓸 때는 가제가 행복의 비결이었어요. 실제로 곳곳에 보면 행복의 비결이 나옵니다. 근데 그 행복의 비결이라는 거는 굉장히 평범한 것들이에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인데 그것은 바로 제가 저에게 맞는 행복을 계속해서 발견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저라는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 트리거를 만나고 어떤 조건에서 힘들어하는지를 반복해서 기록하고 관찰하면서 저에게 맞춤형 매뉴얼을 만들어준 건데 그럼에도 이 글을 쓸 때 제가 생각했었던 독자는, 이 책을 만나는 모든 분들이 소중하지만 저 같은 사람이 이거를 읽기를 바랐어요. 이 안에 있는 성원씨라는 어떤 인물이 말하고 있는 거 보고 있는 거 겪고 있는 거가 어떤 건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텍스트가 좀 가닿기를 바랐고 그들에게 제가 썼던 어떤 문장들이 힌트가 되어서 그들이 반복해서 실패하는 어떤 부분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조금이라도 방향을 틀어줄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썼던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