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빠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 - 늘 바쁜 아빠가 가슴으로 쓰는 편지
윌리엄 란드 리빙스턴 원작, 코하세 코헤이 글, 후쿠다 이와오 그림, 이홍렬 옮김 / 깊은책속옹달샘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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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가진 초보엄마입니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아들은 없지만, 아들과 딸에게 공평하게 불리우는 이름 아빠. 2004년 초가을 예비 아빠의 대열에 선 신랑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아이없이 단둘이 살자던 그가 두 돌을 바라보는 아이와 지내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만약 우리에게 딸이 없었더라면, 저 사람이 지금의 이 행복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딸의 사소한 손짓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딸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한글자 한글자 읽어내려가다 저도 모르게 울컥하고는 가슴이 메어지게 아려옴을 느낍니다. 배변 훈련이 힘든 과정인 줄 짐작하면서도 실수로 쉬를 하면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밥 안 먹겠다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럼 먹지 마. 그 대신 간식으로 우유 안 줄거야.'하고 엄포를 놓기 일쑤이고, 외출할 때마다 옷 안 입겠다고 도망가는 딸 아이에게 엄마 혼자 나가겠다고 겁을 주는, 5초만 생각하면 하지 않을 말 실수를 이렇게 매일 하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일까요?

엄마가 좋아서, 책이 좋아서 엄마 무릎에 폭 안겨 있는 이 아이가 바로 내 딸이고, 아직은 너무나 작고 어린데, 난 이 아이에게 내 방식대로 하려고 많은 것을 요구해 왔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아니 알았지만 내 성질이 못 이겨 닥달하고 보챘습니다.  이렇게 작고 어린 아이일 줄은. 목이 메어 책장이 안 넘겨지더니, 아이의 머리 위로 눈물이…

놀란 딸 아이가 고개를 휙 돌려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작은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는 이 작은 아이, 나의 소중한 공주님을 가슴에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잊지 말자. 내 아이는 아직 작고 어리다는 것을. 그리고 내 아이도 나와 같은, 나보다 더 멋진 미래를 꿈꿀 인격체임을.'

아이가 나에게 찾아왔을 때의 당혹함과 설렘. 아이가 처음으로 발길질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을 때의 놀라움. 아이가 세상으로 나와 꼬물꼬물 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의 행복. 그 순간들을 너무나 쉽게 잊은 건 아니었을까요? 아이가 짧은 시간동안 나와 가족에게 준 기쁨과 행복을 따지자면 내가 살아온 30년이라는 세월보다 많은 것을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잊고 있었던걸까요? 잊지 말아야 했는데, 부모의 욕심은 끝도 없다더니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을 욕심내고 있기에 정작 소중하게 여겨야 했던 참된 행복마저 놓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난 딸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었던 시간들을 반성하면서 또 다시 욕심을 가져봅니다.

정리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신나게 노는 아이로 자랐으면,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퇴근하는 엄마 아빠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 앞에 자신있게 엄마 아빠를 소개하는, 엄마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옷이 엉망이 되고, 운동화가 쉽게 닳더라도 자연과 친구가 되어 즐길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아빠 엄마의 꾸지람 속에서도 마음을 표현하여 아빠 엄마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줄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고 말입니다.

아빠의 야단으로 얼룩진 하루였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 아빠를 품에 안아줄 만큼의 사랑이 깊은, 책 속의 아들을 만나면서, 아빠의 반성과 눈물 속에 담긴 사랑이 아들의 마음에 충분히 닿았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마음이 한시름 놓입니다.

반성하고 후회하는 여러 날들 앞에 곧바로 생겨나는 욕심의 무게에 짓눌리는 엄마보다는 사랑으로 그 욕심을 뛰어넘을 수 있는, 표현에 인색하지 않는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되어보려 노력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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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힘 아버지
왕쉬에량.유천석 외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클릭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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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아버지의 존재를 몸서리칠 만큼 부정하고 싶었다. 3남 1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머리가 좋고 인물이 좋으신 편이라 귀여움을 독차지하는가 하면, 필체가 좋아 군에 입대한 후에 행정반으로 옮겨지는 행운을 안아 군복무 동안에도 큰 고생은 하지 않으셨기에 멋진 삶을 꿈꾸며 세상이 항상 아빠의 편이라고 생각하시게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자신의 뜻만큼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것도, 막내의 어리광을 맏딸인 어머니가 모두 받아주지 않은 것도, 네 명의 자식들 조차 아버지의 고생에 감사하기는 커녕, 도란도란 대화 나누기조차 원치 않는 현실이 늘상 불만이고 짜증스러워, 그것을 가족들에게 풀어놓으며 과거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아빠의 과거에 지쳐가고 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보이면, 어떻게든 그 시간을 회피하고 싶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강원도 산골, 지하 막장에 들어가 헬멧에 부착된 작은 불빛에 의지한 채 석탄을 캐는 일을 하시면서도 자식 넷을 낳아 키우셨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고 찾아온 새해. 회사에서는 인사 이동이 있었고, 아버지는 정식 사원으로 발영이 나는 소식과 월급과 배급되는 식권의 양도 따라 늘었다. 아버지는 우리집에 복덩이가 태어났다고, 엄동설한 속에서도 나를 안고 이집 저집을 다니며 자랑했다고 하신다. 어린 시절, 잔병치레가 유독 심했던 나는 항상 어머니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버지는 아파 기운없는 나를 한 번 안아주며 그 고통 함께 짊어주고 싶어하셨지만 그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손길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아픈 셋째 딸이 가여우면서도 가슴에 한 번 안기지 않는 그 딸이 얼마나 야속하고 미우셨을까.

얼마 전 친정에 다녀온 신랑이 나에게 조용히 커피 한 잔을 내밀면서 말해 주었다.

"아버님이 당신 마음 다 아시던데……. 오빠가 삼수하느라 집안이 힘들어서 당신이 하고 싶은 공부 그만 둔 거라는 거 알고 계셨어.  그 때는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이 컸는데, 지금은 미안해서, 미안한 마음 보이지 않으려고 당신한테 자꾸만 더 모진 소리가 나간다고, 그 때 좀 더 버티고 있었으면 무슨 수를 내서라도 뒷바라지 해줬을 텐데, 너무 쉽게 포기해 준 당신이 지금은 너무 미우시대. 당신이 마음속에 담아 둔 말, 아버님이 모두 알고 계셔서 마음이 더 아프시다고. 끝까지 밀어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하다고 꼭 전해달라고 하시던데……. 이제 아버님한테 마음을 좀 열어주면 어때……."

아버지도 알고 계셨다. 내 마음을.

결혼하고, 고향을 떠나와 피붙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네 명의 자식을 낳고 힘들게 살아오면서 자신을 위해 양말 한 켤레 살 줄 모르시는 아버지. 허튼 돈 한 번 쓰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우리 아버지. 멋있다고 아주 좋다고 남들 입에 오르는 관광 한 번을 맘 편히 다녀오시지 못한 아버지.

늦은 저녁 퇴근한 신랑을 맞이하는 딸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뉴스라도 잠깐 볼라치면 아빠의 몸이 높은 산인 양 기어올라 기어이 아빠의 목에 두 팔을 감아야 직성이 풀리는 딸에게 "저리 좀 가. 아빠 힘들어."하면서도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신랑을 보면서 생각한다.

난 언제 아버지에게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어드렸지? 그런 적이 있었던가?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더 늦기 전에, 건강한 몸이 쇠약해져 함께 산책하기조차 힘들어지기 전에 아버지에게 내 마음 속에 응어리 이젠 다 풀렸다고,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일 뿐. 주려고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이젠 만나고 싶다. 우리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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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아이 성격 부모가 만든다
노혜진 지음 / 무한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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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많은 이들의 축복의 눈물과 함께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아이가 건강하다는  소리 못지않게 반가운 소리가 또 하나 있었다. “엄마 아기 O형이네요.” 하는 간호사의 말에 “정말요?” 나는 재차 확인한 후에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소심하기로 유명한 혈액형, A형을 가진 나와 신랑. 연애할 때도 부부로 살아가는 지금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마음속에 꾹 담고서 스스로 괴로움을 자처하는 편이라 혈액형만이라도 조금 달랐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명랑하고 쾌활하다는, 혈액형별로 나뉜 성격이 100% 맞지 않다하더라도 O형이라는 소리에 출산의 고통을 잊을 만큼 기쁘고 행복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는 10개월 동안, 난 정말 큰 욕심과 많은 바람을 가진 엄마였다. 나와는 좀 다른 삶을 살았으면, 무언가 한 가지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면, 키가 좀 컸으면 등 사소한 것부터 미래의 모습까지도 상상하고 바람대로 태어나 주기를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아이와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면서 간절하리만큼 바라던 욕심은 자연스레 사라져 자취를 감추었다.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해맑게 웃는 아이의 미소를 보면서, 눈을 마주치며 편안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그 눈을 보면서, 욕심내고 기대했던 그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건강하게 태어나 이렇게 평온한 표정을 지어주는 아기에게 그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난 내 아이에게 크고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책을 가까이 하면서 힘겨운 이의 그늘이 되어주고, 당당하게 해를 향해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 자연을 닮은 아이로 자라날 수 있도록 곁에서 자연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내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졌다.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아이가 하는 만큼에 행복하고, 배우는 만큼에 기쁨을 느끼면 된다는 것을, 그것이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것을 요즘 하나씩 배우고 느껴가고 있다.


나는 때때로 엄마가 아닌 인간이 되어 있다. 엄마로 아이를 대하면 즐겁고 행복하고 아이의 작은 손짓 몸짓하나에도 넘어갈 듯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엄마의 자리를 잠시 잊고 본연의 내가 되면, 아이의 작은 실수에 불같이 화를 내고, 엄마가 하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는 아이에게 자꾸만 무얼 하라고, 하지 말라고 요구를 하고 있는 낯설지만, 이것이 진짜일지도 모르는 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나의 지침에 이끌려 사소한 문제로 큰 소리를 내며 부부 싸움이라는 것을 하여 아이가 엄마 아빠를 향해 불안한 시선을 던지는 것을 보고,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애 앞에서만큼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집을 찾아온 손님과 자리에 있지 않은 다른 사람의 실수를 확대해석하여 입에 올리기도 하고, 아이의 이유 있는 울음을 모른 척하면서 내 요구만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행동들이 나의 아이에게 얼마나 큰 불안감과 불신을 안겨주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 아이의 웃음을 보았다. 들었다. 그리고 느꼈다.

엄마의 작은 몸짓에도 넘어갈 듯 웃으며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작듯, 아이 또한 엄마에게 바라는 것은 정말 작은 것인데, 그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나를 먼저 내세우고, 나를 중심으로 놓고 아이를 끌어당기려고만 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의 성격, 바로 엄마의 관심이고 아빠의 후원이 박자 맞추어 갔을 때 이루어지는 하나의 개성 넘치는 완성품이 아닐까 한다.

정답이 없는 아이의 성격을 내가 원하는 틀에 끼여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만들어가는 성격에 엄마 아빠의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이 더해져 좀 더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가슴을 채워 주는 것이 책이 말하는 1등 성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내 아이는 내가 아니다. 그리고 나의 바람은 바람일 뿐이지 아이의 꿈이고 목표일 수 없다.

다만, 책을 좋아하고 자연을 닮은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만큼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아이의 웃음이 오래도록 입가에서,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 엄마와 아빠의 몫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제 책이 되고, 자연이 되어 갈 것이다.

아이가 언제든 나를 바라보며 닮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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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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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다시는 입에 담지 말라는 신랑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온다.
부모님의 서두름에 얼떨결에 결혼이라는 것을 한 내가 이혼은 내 힘으로 해 보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다. 20개월을 바라보고 있는 딸 아이가 백일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보면 볼수록 이쁘고 사랑스러움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말이 사실이다. 정말 그랬다. 그렇지만 잠시도 내 손이 쉬고 있으면 난 자리는 안다고 금새 표가 나고, 내 생활을 한다는 건 생각도 못할 뿐 아니라, 잠시도 그냥 두지 않는 아이로 나는 나날이 지쳐만 갔다.

식은 밥이라도 끼니를  챙겨먹고, 화장실이라도  잠시 다녀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누군가가 잠시라도 아이를 안고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날마다 회사 일로 새벽에 들어오는 신랑을 이해하면서도 난, 내 편이 되어, 육아에 대한 힘겨움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기만을 바랬지만, 피곤에 찌든 신랑 앞에서 나의 힘겨움은 팔자 편한 투정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신랑과의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아이의 얼굴에 태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하루 24시간을 손 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아 삼일 밤낮을 품에 안고 웃고 울고 자야만 했다. 그 때 난 결심했다. 이혼녀라는 이름표가 지금의 이 힘겨움보다는 나을 거라고, 혼자 이렇게 바둥거려도 이 모습 이대로가 끝이라면 더이상 기댈 것도 바랄 것도 없다고 말이다.

요군과 나나는, 흔들리는 나를 단호하게 잡은 신랑이 없었다면 나의 아이가 평생 가슴에 안고 갈 상처이고,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오래된 그리움을 현실로 보여주는 단상이며, 나의 이기적이고 섣부른 행동에 마침표를 찍어주기에 충분하였기에 마음을 더욱 아리게 한다.
요군은 엄마의 상처를 드러내어 감싸주면서 새로운 가정의 가장 역할을 충실히 해 내는 11살 생일을 맞이한 엄마의 아들이다.

바보, 멍청이에 속 뒤집어지는 낙천주의자. 이것이 요군이 바라본 엄마의 진짜 모습이고 마음 깊이 보듬어 줘야만 하는, 어른이기에 안타까운  엄마의 모습이다.  덤벙거림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일을 할 때면 아이들의 식사는 번번이 잊어 아이들의 아우성을 들어야 하고, 차에 열쇠를 꽂아놓고 문을 잠그고 나와 소동을 벌이는가 하면,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보내면서 전차 역이름을 잘못 말하여 졸지에 미아 신세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나약하고 허점투성이 엄마가 처음으로 '노란 코끼리' 같이 생긴 자동차를 사 차고에 집어넣었을 때 또 한 번 기암을 토하고 말았다. 실기에서 떨어졌지만 언젠가는 면허증을 손에 넣을 테니 미리 차를 샀다는 것이 엄마의 해명이다. 이를 본 요군은 어른이면서 자신보다 생각이 짧은 엄마때문에 한숨이 절로 내쉬어지고, 마냥 어린 아이 나나는 행복에 젖어 노란 코끼리와의  만남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요군은 잠시 나나였으면, 나나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나이라면 빗속을 뚫고 지나가는 아빠를 쫓아가 우산을 씌워 주며 마지막으로 한 번 가지 말라고 잡아 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군은 그러기에는 너무나 커버렸다. 아빠가 왜 돌아올 수 없는지, 우산을 받으면 다시 돌려주러 와야 하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는 아빠의 말에 담겨진 의미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기에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단한번도 바라보지 않고 나나의 어깨를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아빠와의 이별이다.  이것은 더이상 요군과 나나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아빠도 남편도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엄마는 모든 일에 서투른, 요군의 마음을 쓰이게 한다. 엄마 자신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안절부절해 하며 새로운 일을 또 시작한다. 엄마는 요군과 나나에게 멋진 엄마로 잘하는 엄마로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아빠가 없는 집에서 요군과 나나를 지켜낼 사람은 엄마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예전처럼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쉴새없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는 것이다. 작고 낡은 노란 코끼리는 할 수 없다는 우물 안 개구리를 사회 속으로 밀어내는 촉매제를, 나약하고 잘하는 것 없는 한 사람이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아주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 그들 곁을 떠나갔다.
나약한 이혼녀가 아닌 당당한 엄마인 다나짱과 그녀의 아이들에게 노란 코끼리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발과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주는 연결 고리가 되어 주었다.

노란 코끼리. 그의 가슴 속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까?
10년이란 사회 생활을 접고 육아에 전념하면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로 인해 힘들었을 신랑이, 그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에 머물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내 마음속에 담겨진 소중함과 고마움 그리고 항상 곁에 있어줄 거라는 믿음이 노란 코끼리였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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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경제학
유병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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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빚내서 집을 산다고?

작년 2월 아기가 태어나기 석달전, 신랑이 느닷없이 집을 사자고 하였다. 결혼하면서, 결혼하고 나서도 양쪽 부모님에게 단 돈 십원 하나 받은 거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형편에 어떻게 집을 사느냐는 내 말에 신랑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적금 통장과 집은 다르다고. 아기가 태어나면 집은 꿈일 뿐 현실이 될 수 없다는 말로 설득시켜왔다.

대출? 결국 은행에서 돈을 빌리자는 말인데, 육아로 무기한 휴직으로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전환이 되는 이 상황에 대출이자와 원금은 다 어떻게 갚을까,란 생각에 난 두려웠다.

우리는 완공 되지 않은 아파트에 P라는, 정말 납득이 되지 않는 정말 아깝다는 생각만 드는 P를 일이만원도 아닌 천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주어야 했다. 그래야만 우리 것이 된다는 것이다.  P라는 것이 무엇이고, 왜 주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힘들게 모은 돈을 한 순간에 남의 손에 쥐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아깝다는 생각에 며칠 밤잠을 설쳤다.

이렇게 난 경제에 무지하고 내가 아는 얄팍한 상식으로 경제를 논하는 탐관오리였던 것이다.

 나는 여자다.

여자는, 결혼 잘 해서 신랑의 그늘 아래서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눈꼽만치도 해 본 적 없는 여자다.

내가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하고, 그 댓가로 주어지는 월급을 요긴하게 잘 나누어 쓰면서, 적당한 금액만큼 적금을 넣어 목돈을 만드는 것이 경제이며, 돈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 왔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흥청망청 쓰지 않는 것에 대한 보상인 것처럼 적금 만기일에 모인 목돈이 나의 자랑이며, 사회 생활 10년이란 시간을 대신해 주는 뿌듯한 증거물이라고 여겨왔다.

나는 그랬다.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고, 경제를 모르는 여자라는 것을 떠벌리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나름대로 경제에 밝지는 않지만, 돈을 열심히 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중에 하나일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회와 돈을 잃게 하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 경제학』이라는 단 한권의 책으로 나의 경제적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야 말았다.

나 자신을 위해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는 것,

경제는 남자들의 전유물인양 등한시 하며 사는 것,

나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현실이고, 경제를 모르는 여자의 표본이 되어가고 있었다.

환율, 금리, 부동산, 시세, 펀드라는 말이 언론 매체에서 날마다 떠들고,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데, 여전히 그 사람의 관심사가 모두 나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난, 절대 아싸~ 가오리!가 될 수 없음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절망만을 안겨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희망이 존재하며, 얼마든지 기회가 있음을 말하는 친절함이 나에게 경제적 펀드가 되었음을 말하고 싶다.

남자 중심의 세상에서 남자 여자 평등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제는 자신이 지닌 가치와 존중을 지켜나가는 필요조건이며, 관심을 기울이며 귀를 기울였을 때 경제에 눈을 뜨게 하는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모아 놓는 족족 카드값으로 대출이자로 나가는 우리의 가계를 살리기 위해 가계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돈을 아끼고 아끼는 나의 유일한 경제활동이, 나아가 경제 마인드를 갖는 나로 발전되는 그 날까지 어렵고 재미없다는 경제의 문턱을 열심히 넘어보련다.

나에게 찾아오는 기회와 재테크의 성공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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