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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힘 아버지
왕쉬에량.유천석 외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클릭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한때 아버지의 존재를 몸서리칠 만큼 부정하고 싶었다. 3남 1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머리가 좋고 인물이 좋으신 편이라 귀여움을 독차지하는가 하면, 필체가 좋아 군에 입대한 후에 행정반으로 옮겨지는 행운을 안아 군복무 동안에도 큰 고생은 하지 않으셨기에 멋진 삶을 꿈꾸며 세상이 항상 아빠의 편이라고 생각하시게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자신의 뜻만큼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것도, 막내의 어리광을 맏딸인 어머니가 모두 받아주지 않은 것도, 네 명의 자식들 조차 아버지의 고생에 감사하기는 커녕, 도란도란 대화 나누기조차 원치 않는 현실이 늘상 불만이고 짜증스러워, 그것을 가족들에게 풀어놓으며 과거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아빠의 과거에 지쳐가고 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보이면, 어떻게든 그 시간을 회피하고 싶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강원도 산골, 지하 막장에 들어가 헬멧에 부착된 작은 불빛에 의지한 채 석탄을 캐는 일을 하시면서도 자식 넷을 낳아 키우셨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고 찾아온 새해. 회사에서는 인사 이동이 있었고, 아버지는 정식 사원으로 발영이 나는 소식과 월급과 배급되는 식권의 양도 따라 늘었다. 아버지는 우리집에 복덩이가 태어났다고, 엄동설한 속에서도 나를 안고 이집 저집을 다니며 자랑했다고 하신다. 어린 시절, 잔병치레가 유독 심했던 나는 항상 어머니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버지는 아파 기운없는 나를 한 번 안아주며 그 고통 함께 짊어주고 싶어하셨지만 그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손길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아픈 셋째 딸이 가여우면서도 가슴에 한 번 안기지 않는 그 딸이 얼마나 야속하고 미우셨을까.
얼마 전 친정에 다녀온 신랑이 나에게 조용히 커피 한 잔을 내밀면서 말해 주었다.
"아버님이 당신 마음 다 아시던데……. 오빠가 삼수하느라 집안이 힘들어서 당신이 하고 싶은 공부 그만 둔 거라는 거 알고 계셨어. 그 때는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이 컸는데, 지금은 미안해서, 미안한 마음 보이지 않으려고 당신한테 자꾸만 더 모진 소리가 나간다고, 그 때 좀 더 버티고 있었으면 무슨 수를 내서라도 뒷바라지 해줬을 텐데, 너무 쉽게 포기해 준 당신이 지금은 너무 미우시대. 당신이 마음속에 담아 둔 말, 아버님이 모두 알고 계셔서 마음이 더 아프시다고. 끝까지 밀어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하다고 꼭 전해달라고 하시던데……. 이제 아버님한테 마음을 좀 열어주면 어때……."
아버지도 알고 계셨다. 내 마음을.
결혼하고, 고향을 떠나와 피붙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네 명의 자식을 낳고 힘들게 살아오면서 자신을 위해 양말 한 켤레 살 줄 모르시는 아버지. 허튼 돈 한 번 쓰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우리 아버지. 멋있다고 아주 좋다고 남들 입에 오르는 관광 한 번을 맘 편히 다녀오시지 못한 아버지.
늦은 저녁 퇴근한 신랑을 맞이하는 딸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뉴스라도 잠깐 볼라치면 아빠의 몸이 높은 산인 양 기어올라 기어이 아빠의 목에 두 팔을 감아야 직성이 풀리는 딸에게 "저리 좀 가. 아빠 힘들어."하면서도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신랑을 보면서 생각한다.
난 언제 아버지에게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어드렸지? 그런 적이 있었던가?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더 늦기 전에, 건강한 몸이 쇠약해져 함께 산책하기조차 힘들어지기 전에 아버지에게 내 마음 속에 응어리 이젠 다 풀렸다고,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일 뿐. 주려고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이젠 만나고 싶다. 우리 아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