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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봄날 지음 / 반비 / 2019년 11월
평점 :
에세이치고는 꽤 많은 분량이다. 페이지 수를 확인하지 않고 구매한 까닭에 배송을 받고 책의 두께감에 살짝 놀랐다.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이 책에 성매매 경험 당사자로서의 20여 년, 그리고 그 이후의 삶까지 담아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감정소모가 싫어서 부러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아서 못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저자는 담담한 문체로 자신의 경험을 풀어냈지만,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읽어낼 수가 없었다. 읽는 중에도 몇 번이고 힘들어서 멈추고, 마저 읽어야지 하면서도 힘들었던 게 생각나서 잠시 뒤로 미루기를 반복한 끝에 겨우 다 읽어냈다.
저 짓들을 하는 게 정말 사람일까?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물음이었다. 성매매 현장의 잔혹함에 대해 지금까지 들은 바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 당황스러웠던 것은, 내가 '에이, 설마'하며 도시괴담으로 치부했던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저자의 경험이라는 형태로 현실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타인을 착취하는 데 그토록 거리낌이 없을 수 있을까.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일까, 아니면 그러다 보니 무뎌진 것일까.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기에 포주가 되고 성 구매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기엔 돈을 주고 성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흔하지 않은가. 저자는 말한다. "업소를 벗어난 지금, '구매자들도 사람인데, 좋은 사람도 있지 않느냐?'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20여년간 업소 생활을 했지만 매너가 좋은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도 차지 않는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업소 여성들을 착취하면서 꾸준히 불우이웃 돕기를 해온 업주가 나온다. 어떤 이에게는 착취자면서 어떤 이에게는 후원자다. 구매자들은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자랑함과 동시에 업소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사람은 뭘까. 저들은 사람일까. 스스로 사람은 원래 다 그렇다고 합리화하면서 편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