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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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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 플레이어
"젠틀맨 & 플레이어" 마지막 장을 덮고도 다시 한번 더 뒷부분을 읽었다. 드디어 머리 속을 어지럽히던 실타래가 한번에 풀린 기분이 든다. 이번엔 마지막 부분의 반전과 이야기가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젠틀맨 & 플레이어'에 나오는 '나'는 한명이 아니다. 두명의 화자가 나오기 때문에 초반에 누구의 이야기인지 집중하면서 봐야만했다. 책장을 넘긴지 꽤 오래되서야 '나'로 지칭되는 사람이 한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저자 조안 해르스가 12년간 영국의 명문 사립인 리즈 문법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고 하는데 자신의 교직 생활을 토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학교생활의 경험담이 묻어 있기에 더욱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차가 체스판의 말들 폰, 킹, 나이트, 체크,비숍등의 명칭으로 나온다. 또한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체스의 이름이다. 그러고보니 책의 표지도 체스판같다. 주인공(스나이드)이 거대한 학교를 상대로 한판의 체스경기를 한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킹은 스트레이들리를 상징하는 말, 폰은 주인공을 상징한다고 한다. 폰은 체스에서 가장 약한 말이지만 체스판을 끝까지 전진한 이후에는 더 강한 말로 바뀔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책의 전반에서 이런 '폰'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젠틀맨 & 플레이어라는 제목도 참 특이했는다. 젠틀맨은 2차 대전 이전의 영국 정상급 크리켓 경기에서 보수없이 경기에 참가하는 유한계급의 아마추어 선수를 말하고 플레이어는 보수를 받고 뛰는 직업 선수를 뜻한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는 하층계급의 아이가 부와 명예와 전통의 상징인 영국의 한 유서 깊은 사립학교에 동경과 질시를 품고 그 세계에 도전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그냥 가난한 아이가 부유한 학교를 동경하고 시기한다고 했다면 아마도 몰입도가 떨어졌을텐데 아이의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과 심리상태를 충분히 말해주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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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넘으라고 있는 거야.
난 내게 늘 금지되었던 것, 그게 갖고 싶었을 뿐이야!"
하층 계급의 어린 스나이드는 명문 사립학교 세인트오즈월드에 수위로 근무하게 된다. 아홉살의 나이로 자신의 처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세인트오즈월드의 아이들이 어린 눈에는 동경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니는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야 말았다.
작은 체구와 수위인 아버지의 열쇠로 아이는 사람들이 없는 세인트오즈월드를 자기의 비밀스러어운 세계로 만들어갔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그세계에 존재했다.
" 아우데레, 아게레, 아우페레. 도전하고, 노력하고, 정복하라. "
점점 담이 커진 어린 스나이드는 세인트오즈월드에서 리안이라는 소년을 만나 우정과 사랑을 알아간다.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 사귀는 데 세툴렀고, 학교에서는 눈에 띄지 않던 학생이었기에 어린 스나이드는 세인트오즈월드에서 또 다른 삶을 살 수가 있었다. 자신의 진짜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놀림을 당하지만 세인트오즈월드에서는 다르다 "핀치백"이라는 이름으로 생활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주저하며 두 학교를 오가면서 지내다 점차 대담한 생활을 하게 되는 스나이드의 모습을 보며 괜한 스릴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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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는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 스나이드의 삶이 초반에 잘 나와있다. 아이가 느꼈을 분노와 아픔들을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가난 속에서 주정뱅이 아버지와 살면서 떠나버린 엄마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사는 스나이드에게 연민이 생긴다. 엄마가 떠나고 5년이나 세월이 흐른 후에 프랑스인 남자와 새롭게 인생을 살고 있다는 엄마의 소식을 들었을때 둘 사이에 자식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부터 아마 스나이드는 이 모든 일을 계획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부분에 프랑스인 새아버지와 엄마, 동생이 화재로 죽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스나이드가 한 짓이 아닐까라는 의문도 든다. 어린 시절의 충격과 상처로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책을 통해 많이 접하게 한다. 인생의 1/10정도 밖에 되지 않는 사람의 어린 시절이라는 것이 평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이런 책을 읽게 되면 항상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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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신분증과 위장으로 다른 사람의 행세를 하며 명문 사립학교 세인트오즈월드로 입성한 스나이드. 이런 모습을 표현하며 사람의 겉모습만 바라보는 현실의 위선을 많이 풍자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 모습들을 증오하고 깨뜨리고 싶은 어린 스나이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신은 가질 수 없었지만 그것이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님을 보이고 싶어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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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린 스나이드가 소년인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리언을 사랑한다고 하고 했을때 동성애적인 코드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아차!하는 반전을 맛보았다.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들이 한번에 후루루룩 펼쳐지면서 모든 이야기를 다 뒤집어서 새롭게 이야기해주고 설명해주는데 굉장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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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왜! 어린 스나이드가 증오의 칼날을 갈고 세인트오즈월드로 돌아와서 복수를 하게 되었는지의 이유도 명확히 나와있어서 결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가 의문이 나서 뒷부분을 두번이나 다시 읽었다. 처음 볼때와는 또 다르게 두번째 보니 이해를 하고 봐서 그런지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이 미스데어가 내게 준 선물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을가? 또 어떤 이름으로 살고 있을까? 어쨌든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될것 같지는 않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괴로웠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전에도 어려운 일들을 겪고 또 극복해왔다.
전쟁, 죽음, 스캔들...... 학생과 교직원은 왔다가 가지만 세인트오즈월드는 영원히 남는다.
그녀는 세인트오즈월드의 심장에서 그녀의 몫을 베어갔고, 세 달만에 전설이 되었다. 지금은 어떨까? 눈에 띄지 않는
삶 - 소시민적 삶과 단순한 직업, 어쩌면 가정까지 포함한-으로 돌아갔을까?
그것이 영웅들이 노쇠하면 괴물들이 하는 일일까?
" 궁금하군, 미스 데어. 당신이 투명인간이었다고 말하는 그 모든 시간동안 당신은
과연 스스로의 참모습을 보았는가 하는 것이. "
- 561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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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듯한 기분이 든 것은 아마도 어린 스나이드가 여자!였다는 사실보다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리안의 죽음이 어린 스나이드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소름끼쳤던 것 같다. 스나이드는 그토록 사랑하던 리안을 왜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아마 리안이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갖고 싶은 존재에서 더이상 완벽하게 갖기 못할 존재로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그런 일을 벌인 것을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을 지켜본 '킹'에게 왜 그때 나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왜 나를 신고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서 세인트오즈월드로 찾아온 것 같다. 자신의 존재감을 찾고 싶어서 말이다.
스나이드. 그녀는 진정한 자신을 찾았을까? 세월이 흐른 후에 또다시 세인트오즈월드에 찾아와 자신의 몫만큼의 심장을 얻기 위해 체스게임을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존재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또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트오즈월드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살인에도 학생이 죽었어도 학교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정말 또 한번 서글퍼지게 한다. 진정한 인간됨과 아이들을 위해야할 곳이 투명한 존재를 만들어버리는 학교라니 정말 무서운 곳이다.
요즘 한참 왕따와 학교폭력으로 학교가 시끌시끌하다. 아이들의 아름답고 행복해야할 유년시기에 무엇을 주고 보게 해야할지를 다시 한번 돌아봐야할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