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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여행
미우라 시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남편도 짐승처럼 포효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조용하다. 저런 약한 마음. 도대체 얼마나 도망쳐야 속이 시원할까. 아이들을 어떻게 할 작정인가, 틀렸다. 이 선택은 틀렸다. 매달리는 첫째를 뿌리치고 가지고 있던 돌로 유리창을 두드린다. 수없이. 피부가 찢어지고 아마도 손가락뼈도 부러졌다. 그래도 괜찮다.물이 허리까지 차오른다. 빨리, 빨리 깨져라. 너만은 너만은...... 괴로울 것이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할 정도로 겁을 먹고 있다. 불쌍도 해라. 반드시 살려줄게, 너만은." - 268page
이미 선택은 틀렸다고 느낀 순간 너무 늦어버렸다. 경제적으로 더이상 추락할 곳이 없어진 가장은 아이와 아내를 차에 태우고 해안도로에서 엑셀을 밟는다. 동반자살. 어깨의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 가장은 마지막 책임감이란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했지만 마지만 순간 엄마는 모성애로 아이를 살린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감정이입이 되서 나도 모르게 마지막 단편 'SINK'에서 생각지도 못한 울컥거림으로 눈물이 쭉 났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살아남은 아이는 크면서 가족이 모두 차에 타서 물에 잠겨가는데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갖고 자란다. 살려고 몸부침치고 도망치는 순간 자신의 발목을 잡는 엄마의 차가운 손길이 느꼈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밟고 살아남았다 생각한다. 그래서 더이상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사랑받는 것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가슴아픈 기억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아들의 몸을 차 밖으로 밀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가 현실이 아닌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면 좋을텐데 요즘 심심치않게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들과 함께 목숨을 버리는 가족의 이야기를 접하게된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들의 선택이 옳다 그르다고 판단하긴 힘들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엔 깊숙히 빠질 수 밖에 없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 책은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그러면 안돼!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깊숙히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걸 벗어나게는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 거기 잠깐만.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지않을래요? 여기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왜?라고 생각될 정도의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괴로움이 늘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혼자 받아들이고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종류의 괴로움을 안고 있기에 아키오도 청년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 혼자 받아들이고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종류의 괴로움. 누군가 극한의 상황에 빠졌을 때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면 그 옆을 함께 해줬다면 다른 선택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죽음과 관련된 7개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집이다. 죽음이라는 암울하고 어두운 이미지때문에 책의 이야기가 마구 땅끝으로 꺼질 것 같단 생각이 들긴하지만 실제로 한편 한편을 읽다보면 그런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제목 '천국여행'이라는 것에도 그런 의미가 담긴 것같다. 여행이란 것은 언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갈 곳이 있기에 '여행'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천국여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더이상 갈곳이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천국이라는 곳을 잠깐 갔다가 다시 삶으로 돌아가라는 의미. 결국 죽음을 택하기 보다는 현실의 삶을 조금만 더 살아보는 것은 어떤가란 메세지를 담고있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된다.
전생인지 꿈인지 모를 세상을 현실과 오가며 만난다는 기묘한 이야기 "꿈속의 연인". 처음엔 애절한 사랑인줄 알았는데 결국은 처절함이 남고 마는 이야기였다. 자신을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한 여자의 결말을 보는 것 같아서 좀 씁쓸함이 남는 이야기로 남는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반도주까지 하며 지켜낸 사랑도 영원하진 못한걸까란 의문을 갖게 한 "유언", 어느 날 갑자기 사인도 모르게 죽어버린 여자친구가 남자에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와 평생을 함께하려 한다는 다소 오싹한 느낌의 "작은 별 드라이브". 이 둘의 마지막은 열린 결말로 끝을 맺기에 그 결말이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다. 이 둘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고보니 모든 이야기들이 확실한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으로 끝나지않는다. 독자 스스로에게 맡기고 있기에 읽은 후에도 계속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단편 하나 하나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SINK"는 아주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