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백지연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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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물구나무 백지연 장편소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6명의 여고 단짝. 27년 후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위 아래가 뒤바뀐 것 같은 물구나무 인생.


여자의 삶은 결혼과 함께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일까?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에 따라 팔자가 정해진다는 속담.

요즘 세상에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이냐고 질색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텔레비젼을 통해 접하게 되는 유명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처럼 전업주부가 많지않아 맞벌이부부가 늘고 있어서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닌 또 다른 이유로 뒤웅박 팔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남편들이 결혼과 동시에 연인이었을 때의 모습을 감추고 돌변하여 다른 여자를 쳐다보게 되는 것은 분명 아닐테지만, 배우자의 불륜으로 인해 이혼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완벽한 허구의 이야기는 아닐 듯하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3년간 단짝으로 붙어다니면 6친구가 있다. 민수, 승미, 문희, 미연, 수경, 하정. 풋풋한 학창시절,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로 지내던 이들과 민수는 정말 사소한 일로 연락을 안하고 지내게 된다. 그리고 27년이 흘렀다. 그 사소한 일은 정말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묻고 따지지도 않고 친구가 되던 학창시절과 달리 조금씩 현실을 알아가며 벌어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모습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철썩같이 믿고 지내던 사람의 아주 소소한 배신이 크나큰 상처로 다가올 수 있으니 말이다.


인터뷰어인 민수에게 27년만에 수경으로 부터 만나고 싶다는 문자를 받는다. 27년. 그들이 함께 지내온 시간의 몇 배가 되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다섯 친구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배신감에 연락을 하고 살지 않던 민수와는 달리 다른 친구들은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수경으로부터 듣게 된 하정의 자살 소식. 엘리트 집안의 딸로 학생회장에 서울대 입학해 치과의사가 된 하정이 뭐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죽은 것일까? 민수는 과거 친구들 생각도 나고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탐탁지않은 하정의 죽음과 관련된 가정사를 알게 되며, 하정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알기 위해 다섯 친구들을 한명씩 마주하게 된다.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사모님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는 남편이 바람피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도저히 이혼을 해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후처가 들어와 배다른 동생을 낳으면 남겨진 아이들이 불행한 삶을 살까봐 그렇다고 하지만 실상은 남편의 그늘아래 귀부인으로 살던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에겐 호텔을 가도 특급대우를 받고 어딜 가나 초호화대접을 받는 위치에서 내려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식사를 차리기 위해 장을 보고 영수증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는 것들이 더이상 자신과는 동떨어진 일이라 생각할 수 밖에... 남편의 배신앞에서도 당당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책 속 등장하는 친구들은 나름대로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아픔을 안고 있다. 어릴 적부터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와 살고 있는 친구가 마냥 부럽기만 했는데 친아버지가 아니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남편이 바람을 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믿어주는 것이라 말한다. 로맨틱하게 살고 있는 친구는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는 것이고 결혼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본인만 알고 있는 위태위태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세상의 이치는 , 말로 듣거나 글로 읽어 아는 것과 실제 속속들이 겪으면서 알게 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절감했다. 자식 걱정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이를 가져보지 않은 내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 272page


다른 사람의 삶을 내 주관적인 가치로 판단하는 것은 역시 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진짜로 공감하고 이해해 줄 수는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여러 간접경험을 통해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생각해보고 다른 행동에 대해 이해를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내 남편만이 지난 20년 동안의 유일한 성과인 거야. 내가 남편을 떠나는 순간, 남남이 되는 순간, 내 20대부터 40대까지 인생의 가장 황금기였을 20여 년의 시간은 흔적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거라고. 그러면 나도 없어지는 거지. 내가 없어져버릴 것 같은 거야. 아마도 그게...... 두려운 건가 봐." - 273page


이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내 남편만이 지난 20년 동안의 유일한 성과. 나를 돌아보면 거기에 내 아이들까지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 자신에 대한 성과는 아무리 떠올려도 올라오는 것이 없다. 이제는 슬슬 나도 나를 좀 챙기면서 살아야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왠지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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