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깨물기
이노우에 아레노 외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 깨물기 - 에쿠니 가오리 외 일본 대표 여류 작가들이 그려낸 초콜릿에 얽힌 달콤 쌉싸래한 사랑의 기억

 

"초콜릿의 달콤 쌉싸래한 향기를 중심으로 기억의 파편들을 조심스럽게 되짚는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는, 왠지 달달함이 느껴질 것 같은 감성적인 책이다. 특히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이 들어있기에 더욱 눈이 간다. "기억 깨물기" 제목부터 확 끌렸다. 도대체 이런 제목은 어떻게 생각해내는 것인지!

한 작가의 단편이 아닌 6명의 작가들의 단편이기에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어떤 느낌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낼지가 궁금해진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 역시 사랑 따위,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자꾸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휴대전화는 심장이 되어버렸다." - 11page

 

이노우에 아레노의 "전화벨이 울리면" 이란 단편부터 시작된다. 

열아홉의 소년. 과외가는 길 열두 살 차이나는 여인을 우연히 만났다. 소년과 여인은 그녀의 남편을 감시하고 호텔에서 만남을 갖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관계를 지속한다. 우리는 사랑하긴 하는걸까. 소년은 여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고 알고 있다. 목적이 있어서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왜 소년을 만나 남편을 감시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어렴풋이 그 이유가 짐작이 가긴 하지만 왠지 얼마 전 유행한 드라마 '밀회'가 떠오르면서 결말이 이들의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예전같으면 열두 살의 나이차이 유부년과 소년의 만남에 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겠지만 지금은 왠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고만다. 유아인과 김희애의 경우에만 가능하겠지만......

 

 

"처마 밑에 선 채 방금 전에 담뱃불을 붙이던 것과 똑같은 무심한 동작으로 남자는 자신의 왼손 피부를 얇게 얇게 벗겨냈다.

엄지손가락 옆에서 손목 방향으로." - 41page

 

에쿠니 가오리의 "늦여름 해 질 녘".

여자가 남자를 먹고 싶다고 말하자, 남자는 접이식 포켓나이프를 꺼내 자신의 피부를 벗겨내 여자에게 내민다. 여자는 그것을 입을 벌려 받아먹는다! 엽기적이다. 그 모습이 아주 적나라하게 상상이된다. 여자가 입을 벌려 받아먹는 모습이. 인상적인 첫장면부터 심상치않다 싶어 저자를 보니 '에쿠니 가오리'다. 역시 단박에 이해하긴 난해하면서도 자꾸 읽게되는 그녀의 이야기다. 도대체 이게 뭐지 싶으면서도 계속 머릿속에 잔상이 남고만다. 초콜릿향으로 잊고 있던 자신을 다시 기억하게 한다. 남자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결국은 혼자인 외로운 여인, 초콜릿 향을 맡으며 고독을 인정하고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 읽으면서는 쉽게 공감이 안가지만 이상하게 계속 잔상이 남는 희안한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다.

 

 

"하루, 라고 다들 불렀지만 나만은 하루키 씨, 라고 했다.

하루키 씨를 처음 만나 곳은 장례식장이었다. 증조외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것이다.

나는 아직 다섯 살이었고 당시 하루키 씨는 열여섯 살이었을 것이다. " -55page

 

가와카미 히로미의 "금과 은".

어린 시절부터 장례식장에서 만나고 육촌지간이기에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 수 있었던 하루키씨.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하루키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달콤한 초콜릿을 먹다가 하루키씨에게 키스하는 소녀. 이 둘이 육촌지간이 아니었다면 왠지 달달한 느낌의 오랜시간 마음에 담아온 순수한 사랑이라고 느꼈을텐데. 육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팔촌까지는 결혼할 수 없다고 나오는데. 이 둘의 사이가 가능한 사이일까라는 생각부터 머릿속이 복잡하게 계산하게 된다. 그져 단순한 달달한 이야기라 생각했다가 '육촌'이라는 것에서 멈칙하게 되는 이야기. 이후의 이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다. 이들의 미래는 순탄할 수 있을까......

 

 

"고토코는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하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티틀란 호수에 살고 있다는 성인이야기." - 91page

 

고데마리 루이의 "호수의 성인".

헤어진지 12년 전 남자에게서 편지가 온다. 그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인도여행을 가기 위해 파트너를 구한다고 공고문을 붙여 만나게 된 사람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그것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 같이 인도여행을 간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 둘 사이엔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알고보니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고 큰아버지가 보증하는 남자였던터라 그때 부터 둘은 연인이 된다. 여행을 같이하며 쌍둥이같이 사이가 좋은 이 연인이 왜 헤어졌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져서 손을 놓을 수 없던 이야기였다. 남자가 말한 그들만의 기억이 뭔지 왜 호수에 살고 있는 성인을 만나러간다는 것인지가 궁금해지고 이 둘 사이가 궁금해지는 처음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야기다. 이 책 '기억 깨물기'란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편, 초콜릿을 떠올리면 이 단편이 툭 튀어나올 것 같다.

 

각기 개성있는 단편들이기에 자신의 성향에 맞는 이야기부터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야기까지 초콜릿을 소재로 여섯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된다. 나는 '초콜릿'을 떠올리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고데마리 루이"라는 작가에 관심이 간다. 그녀의 다른 책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는다면 6편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모르던 작가를 새롭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