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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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이 책을 보고나서야 정유정 작가의 매력을 확 느껴버렸습니다. 확!
7년의 밤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소설도 아닌 여행에세이를 통해 알게되다니!
또다른 발견입니다. 소설보다 작가의 실제 이야기에 훅 빠지게되는 신기한 매력.
아직 정유정이란 작가를 모르고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데리고 안나푸르나 등반을 하시겠다, 그 얘기야?

지영이 되물었다. 뭔가 불편한 기색이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어디든 따라온다 해놓고.

 

나 관악산도 못 올라가는 저질체력인 거 몰라? 쏘롱인지, 패스인지를 넘으려다간 피 토하고 쓰러져 죽을 거라고.

내가 약속은 했다만 저승까진 못 따라간다.

 

인사말도 못하는 영어벙어리인 데다, 융통성 없고 붙임성 없고 방향감각마저 없어 집 근처마 벗어나면 환상방황을 일삼는 길치 아내가 홀로 안나푸르나를 헤매다 행방불명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반대 사유였다. 

나도 안나푸르나 가고 싶다고 새벽 3시에 통곡을 하면 될까?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겐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저자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버립니다.

더이상 글이 써지지 않다며 자신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 주인공이 꿈꾸던 곳 히말라야 안나프루나로 갈 생각을 합니다.

별들의 바다를 보기 위해 작가 김혜나와 떠나는데요.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나이가 이팔청춘이 아니라는 사실! 유부녀에 아들이 있는 엄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올해 48세! 간호사로 일하다 42세에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직업을 그만 두고 펜을 들었다는 그녀.
아들이 일본 유학중이라는 말에 또 한번 놀랍니다. 이렇게 장성한 아이가 있는 작가였던가.

사진 속 그녀의 모습에 많아야 30대 후반일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정말 동안미모의 소유자입니다.


천부적인 글쟁이인 그녀가 궁금했습니다.

책의 앞뒷면의 내용만 보다가 '정유정'이란 작가가 궁금해져서 그녀의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봅니다.

산행중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내 아이'라는 문구에 아이가 있다고?라는 궁금증에 찾아본 것이었습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관심이 없나 싶을 정도로 찬성도 반대도 안했지만 등단 뒤 초등학교때 받은 상장 전부를 모아둔 상자를 가져와 그녀가 그때 이런 글을 썼었지라며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합니다. 왠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나는 인터뷰 글이었습니다.

열한 번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변기를 닦고 있다가 열두 번째 공모에서 당첨전화를 받고 변기를 붇잡고 울었다는 이야기도 눈에 들어옵니다. 천성적으로 외조를 잘 한다는 남편과의 만남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남동생의 절친!! 연하입니다.
공무원이 되면 결혼해준다는 말에 119 구조대에 합격한 남편. 대단합니다.

글쓸 체력을 위해 복싱을 한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새 우산을 사들이다 지친 남편은 아파트 재활용품 통에서 살이 부러졌거나
손잡이가 고장 난 우산을 구해다 놓고는 했다.
들고 나가서는 마음껏 잃어버리라고. 몸에 달려있지 않다면
가슴도 놓고 다닐거라는 게, 나에 대한 남편의 평가였다." -  본문 중에서

 

남편의 작가를 향한 마음이 오롯이 드러나는 질투나는 글들입니다. 참 알콩달콩 서로를 위하며 사는 부부란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말을 걸라치면 허둥지둥 허리를 굽혀 등산화 끈을 매는 척하는 저자의 모습이 눈에 선해지며 그런 저자를 사랑스럽게 쳐다볼 남편이 그려집니다.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한 그녀의 소설, 그녀를 히말라야로 내몬 '내 심장을 쏴라.'도 궁금해졌습니다.

 

"어린 시절, 사남매의 맏이였던 내겐 몇 가지 금기어가 있었다.
힘들어요, 무서워요,못해요.
어머니는 내게 '강인함을 요구했다.
상처를 받아도, 슬픈 일이 생겨도, 힘든 일이 생겨도 내색 없이
이겨내기 바랐다. 죽는시늉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것이 자존심이라고 했다.
이 가르침은 내 인생을 통제하는 정언명령이 됐다.
- 49page

 

이 책엔 히말라야의 이야기보다 그녀 삶의 이야기가 꽉 들어차있습니다.

여행의 에피소드보다는 여행에서 떠오른 그녀의 추억 이야기에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그녀가 왜 작가로서 성공의 고지에 오르고서 다시 펜을 들기 힘들었을지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금씩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왜 히말라야로 향하고 싶었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찾고 싶었는지를, 그녀의 마음의 무게를 이해하게됩니다.

 

"아임 헝그리라고, 이것들아."

 

선머슴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그녀의 말들이 웃음을 유발하는데요.

중간중간 그들의 리얼한 여행 모습을 사진과 함께 보여줬다면 더욱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화려한 풍경보다는 떼가 꼬질꼬질해진 여행 중의 모습을 담았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 점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음식에 꼭 들어가야할 향신료 마살라를 거부하는 저자, 여행 3일째까지 음료만 달라질 볶음밥의 흡입장면
집어넣었는데 나오지 않는다!로 표현되는 변비가 계속되는 여행일정.

"아직 변비로 죽은 사람은 못 봤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로 대변되는 여행기.

이 책은 여느 히말라야 험난한 산행 여정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산만 하루종일 타는 거라 생각했는데 은행, 경찰서, 체크포스트, 약숙, 식당, 분식점등이 있는 큰마을도 있고 하루쯤 묵어가는 곳과 식당도 존재합니다. 히말라야 여행의 루트도 다양하다고 하니 지금껏 생각하고 있던 루트와는 다른 여정입니다.

 

여행 중 저자의 기억 속 일틀이 툭툭 튀어나와 읽는 재미를 더했습니다.

여행동안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저자의 추억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또 미사 빼먹고 불장난하러 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호탕한 저자의 어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과 함께 쥐불놀이를 하고 쌔까맣게 타서 집에 돌아가는 저자.

"어머니는 회초리를 꺼냈다. 내 거짓말이 마음에 안드셨던 거다.

반면 하느님은 마음에 드셨던 게 분명하다. 나를 소설가라는 직업거짓말쟁이로 만든 걸 보면. 안그런가?" -본문 중에서

그런 것 같다! 하느님은 정유정 작가가 마음에 드셨나보다. 분명히!

 

꺼둔 전화기에서 울린 첫번째 전화! 로밍도 되지 않은 전화기에서?

비싼 요금을 물어야하는 전화는 남편도 아들도 친구도 친지도 아닌 택배 기사였다.

"택뱁니다. 집에 계세요?"

 

그녀가 들려주는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유쾌하지만 그 속에 담긴 그녀의 마음은 짠하다. 

어머니를 추억하는 이야기엔 움찔. 뭉클. 주룩!

 

"스물두 살은 내 생의 랜드마크였다. 어머니가 투병을 시작한 해였고 질주하듯 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내 등에는 세 동생이 업혀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마저 내게 기댔다.

나는 싸움꾼이 돼야 했다.

어머니가 가르친 대로 죽는시늉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어머니의 유언대로, 어머니를 대신해 엄마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으므로" - 132PAGE

 

"안나푸르나에 오면서, 링이 아닌 놀이터에 나를 부려놓으리라, 결심했다.

죽기 살기로 몰아붙이는 습성을 버리고 가겠노라, 마음먹었다.

싸움꾼의 투지와는 다른 힘을 얻을 수 있겠지, 기대했다." - 133PAGE

 

"안심키켜 드리고 싶었다. 걱정 말라고. 내가 잘 할 것이라고. 그 순간, 어머니의 손끝이 움찔했다.

사력을 다해 내 손을 맞잡아주는 느낌이었다.

작으 ㄴ움직임이었지만, 반사적인 움찔거림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어머니의 작별인사로 받아들였다.

어머니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내딸, 힘내.

이제부터 너 혼자 가는거야." - 141PAGE

 

"나는 혼자 가야했다. 빚을 갚고, 동생들을 가르치고, 집안 살림을 꾸리면서

운명이 내게 둘 중 하나를 요구한 셈이었다. 달리거나 고꾸라지거나.

이제 와 나는 울고 싶었다.

어머니가 떠났던 오늘, 이국의 쓸쓸한 강가에서 뒤늦게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그러면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두려움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리지 않으면 고꾸라진다는 두려움, 고꾸라지면 죽는다는 두려움으로부터" -142PAGE

 

왕매미를 잡아달라고 울어재끼는 아들을 위해! 나무로 오르는 엄마 정유정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작가 매력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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