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끝에 다시 -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함정임 외 지음 / 바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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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 그 길 끝에 다시

대한민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소설가 일곱 명이 우리나라 일곱 도시에서 길어올린 일곱 편 소설.

낯설고도도 따뜻한 일곱 여정!

 

보기에도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닌 일곱 명의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집니다.

 

백영옥..속초.. 결혼기념일 / 손홍규..정읍..정읍에서 울다 /이기호..원주..말과 말 사이 원주통신2

윤고은..제주..오두막 / 함정임..부산..꿈꾸는 소녀 / 한창훈..여수..여수 친구/김미월..춘천..만 보 걷기

 

안타깝게도 제대로 알고 있는 작가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 뒷부분의 작가 인터뷰부터 살폈습니다. 작가라고 하면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고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인터뷰의 글을 보며 너무도 평범하고 편안한 이미지에 책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책의 말미에 작가 인터뷰를 붙인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이 작가들의 매력을 느껴보라 하고 말이죠. 짧은 인터뷰지만 일곱 작가의 개성이 또렷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책 속 이야기는 또 어떤 개성으로 다르게 다가올지 기대감이 상승합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이기호 작가가 자녀를 둔 것이 소설을 쓰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냐는 질문에 "아들 둘에 막내가 딸인데...... 소설 쓰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2년 사이에 노트북 두 대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로 여행을 떠나버렸습니다. 백업을 이중 삼중으로 하는 좋은 버릇은 생겼네요."라는 답변에는 피식 웃고 맙니다. 앤을 정말 좋아해서 캐나다의 프린스 애드워드 섬에 가고 싶다는 백영옥 작가의 인터뷰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결혼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제 소설에 유독 상실의 단어들이, 이혼, 외도, 실연, 실직, 파산, 파탄 같은 극적인 소재들이 등장하는 건 그것이 한 인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리트머스 용지 같은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한 번뿐인 삶에서 과연 도덕은 무엇이고 윤리는 무엇인가란 질문도 가능해집니다. 두 번 살 수 있다면 결정적인 자기 삶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란 것도 올 텐데, 인생에선 어림없는 소리죠."라는 이야기에 현실 속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내용들이기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인터뷰였습니다. 그리고 강렬한 여행적 체험에 하루키의 <먼 북소리>가 인상적이었다는 말에 이 책을 너무도 좋아하는지라 같은 책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자 왠지 동질감까지 느껴졌습니다. 백영옥 작가의 책을 찾아 집어 들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을 읽기도 전에 은근하게 풍기는 작가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이 강렬한 끌림이 다른 책에서도 느껴지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지금 가장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 윤고은 작가의 인터뷰에 소개된 이 책의 소재가 무척 독특해 보입니다. 책을 읽어가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자세한 내용을 보지 않고 집어 들었습니다. 책 제목을 보고 각 지역을 소개하는 여행서와 같은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통해 살짝살짝 듣게 되는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궁금증을 더합니다.

 

첫 이야기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던 백영옥 작가의 글입니다.

남편이 죽었다고 시동생에서 연락이 옵니다. 주인공은 남편과 이미 이혼한 상태. 한때 잘 나가던 PD였던 남편은 어느새 사채업자를 만나고 다니고 은행 대출 상환 독촉, 채권 추심 회사 사람들만 찾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둘은 이혼을 했습니다. 남편과 이혼할 때 서로 갖겠다고 싸우던 고물차 재규어를 끌고 남편이 묻힌 속초로 향합니다. 모처럼 휴가를 쓰고 달려간 길 회사에서는 중요한 일이 생겼다며 빨리 회사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주인공은 남편이 뿌려진 장소에 한번 가봐야겠다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강원도의 폭설에 발이 묶이고 재규어도 멈춰버립니다. 그녀가 마지막에 던진 그 말은 누구를 향한 말일까요. 죽어서까지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 생각한 남편을 향한 그녀의 원망일까요. 그렇게 외롭게 혼자 가게 한 게 미안한 주인공의 마음일까요. 전 후자에 가깝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결혼에 대한 생각을 심도있게 다룬 단편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살았지만 시차가 전혀 다른 도시에 사는 외국인들 같았다. 나는 이 재미없고 지루한 결혼 생활의 인질이었다. 오래 연애하고, 오래 살다 보니 어떤 관성이 생겼고, 그 관성에서 벗어나는 방법조차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인질범이 되어가고 있었다." - 22page 결혼기념일 중에서

 

"이혼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가령 결혼이 조금씩 쌓여가는 적분이라면, 이혼은 가장 작은 것까지 나누어야 하는 미분이라는 것. 공정해지기 위해 서로의 물건을 나누다 보면, 결국 모든 게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함께 공유하던 시간이나 추억, 영혼까지도 말이다." - 26page 결혼기념일 중에서

 

세번째 이야기는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술먹고 달려들어도 함께 밤을 보내지 못할 외모를 가진 여인 형자. 그녀는 스물 아홉에서야 흑인 애인을 두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강력한 라이벌 동창에게 뺏길 위기에 처합니다. 솔로탈출을 위한 그녀의 선택이 뜨악하게 합니다. 이야기가 유머러스하지만 속에 뼈가 있단 느낌이 드는데 혹시 인터뷰에서 누군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누구와 동반하겠냐는 질문에 유부남이면서 "에이 무슨. 이런 난처한 질문을......"이란 대답을 유쾌하게 했던 이기호 작가였습니다.

 

인터뷰를 먼저 읽고 책을 읽다 보니 이 작가의 글이 참 매력있겠다 생각을 했는데 책 속에서도 바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인터뷰를 먼저 작가를 만나보고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보고 싶습니다. 작가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재미를 또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책 속 일곱 도시를 떠올릴 때마다 책 속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낭만이 가득한 제주도에 대한 기억은 아주 섬뜩하게 남았습니다. 책을 덮고 나니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취향에 따라 일곱 작가의 이야기들이 저마다 다르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이 짧은 한 권으로 독특한 개성의 일곱 작가를 모두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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