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휴먼 - 어느 외계인의 기록 ㅣ 매트 헤이그 걸작선
매트 헤이그 지음, 정현선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휴먼 어느 외계인의 기록 THE HUMANS
나는 아내와 아들을 죽여야 한다.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하든, 변할 것은 없었다. 나는 그녀를 죽여야만 했다. 당장, 그 자리에서는 아니지만, 곧 어딘가에서. 하지만 그전에 그녀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만이라도 알아야했다." - 68page
외계인인 "나"는 지구에 보내진다. 천재적인 수학자 앤드루 마틴 교수가 얻은 연구 성과를 없애고 그 정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나"의 임무였다. 지구에서는 그 어떤 인간도 도달하지 못한 지식의 영역에 도달한 인간은 외계세계에 큰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를 복제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완벽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실패했다. 지구에 대한 모든 것을 직접 학습해야했다. "나"는 지구에 갓 태어난 마흔세살짜리 갓난아기나 마찬가지였다.
지구에 처음 도착한 날 "나"는 알몸으로 내려왔다. 인간 사회에서는 그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지못해 알몸으로 도시를 활보하고 다닌다. 첫인사가 얼굴에 침뱉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지능이 높은 존재이기에 인간의 말과 글은 쉽게 익힐 수 있었지만 인간 사회의 문화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구는 정말이지 묘한 세계였다. 아내가 있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외계세계에서는 결혼이라는 개념이 없다. 눈물도 고통도 사랑도 없다. 오로지 완전한 수학과 이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결혼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어느 하나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덩그러니 떨어지는 "나"는 알몸으로 돌아다닌다고 경찰에 잡혀 정신병원에 간 것으로 임무를 시작한다.
"앤드루 마틴 교수는 내가 맡아야 할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위장이었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내가 되어야만 했던 인물이었다. 내 임무는 그를 납치해서 죽이는 것부터 시작이었다......요컨대,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 피츠윌리엄 칼리지 수학 교수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마흔셋 먹은 그 남자가 아니었다. 그 남자는 지구에서는 아무도 풀지 못한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자기 삶의 8년을 바친 사람이었다." - 16page
"나는 결혼한 남자였다. 마흔세 살, 인간의 생애에서 중년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나는 이제껏 그 어떤 인간도 풀지 못한 중요한 수학 문제를 이제 막 해결한 교수였다. 불과 세 시간 전,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인간 종의 진보를 이루어 낸 것이다."
- 37page
임무만 수행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외계인은 점점 지구의 생명체에 정을 느끼게된다. 제일 먼저 마음을 나눈 것은 개였다. 교수가 자신의 진짜 주인이 아니라는 걸 제일 처음 알아차린 것도 개였다. 혼자 남겨졌다 느끼는 외계인은 개와 함께 하루종일 음악을 듣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인간 사회에 대해 하나씩 배우게 된다. 그리고 점점 교수의 아내와 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정을 느끼게된다. 무조건 아내와 아들을 죽이라는 임무를 과연 외계인은 수행할 수 있을까. 아내와 아들도 예전의 남편과 아빠가 아닌 외계인으로 변한 지금의 남편과 아빠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게 느껴진다. 외계인은 아내와 아들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보게된다. 우주에서 가장 어리석은 행성에 있는 것이 좋아지고 만다.
"내가 저 아이를 없앨 수 있을까?" -286page
"언젠가 그 아이에게는 진실을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고 나면?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도 그 애가 나를 아버지로 받아들여 줄까? 나는 꼼짝없이 덫에 갇혔다. 거짓으로 살아야 했다. 거짓은 계속되어야 했다." - 385page
과연 이 외계인이 기록을 통해 남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아내와 아이를 죽였을지 결말이 궁금해서 책을 덮을 수가 없다. 제목을 떠올리면 이성적인 외계인이 감정을 지닌 인간적인 존재로 변화하겠다 짐작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두툼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힌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남편이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설정. 그리고 임무를 위해 나와 내 아이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상상만해도 섬뜩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나는 아내와 아들을 죽여야하는 외계인은 섬뜩과는 전혀 거리가 먼 따뜻함을 가진 존재였다. 천재교수로 수학적 성과로는 인정받았지만 남편과 아빠로는 빵점이었던 앤드루 교수, 이와 반대로 외계인이 변한 앤드루 교수가 예전의 잘못을 하나 하나 고쳐가며 가족과 화해하는 과정은 마음을 뜨끈하게 만든다. 외계인이 눈을 통해 보게된 인간의 모습은 생각만큼 참혹하지 않았다. 따뜻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느낌도 잠시 모든 걸 가질 것 같던 순간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마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야기가 끝을 향할수록 과연 이 외계인은 어떤 끝을 맞이하게 될까 조마조마하며 책을 읽게된다.
외계인이 남긴 인간에 대한 97가지 조언. 그 중에 마지막 97번째 "사랑한다, 기억해 줘."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 남편과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남는다. 명성과 부를 쫓는 치열하게 사는 남자,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 아이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 남자가 이 시대의 남편과 아버지일까?란 생각이다. 예전의 모습을 모두 지우고 나서야 아내가 원하던 남편으로 아들이 원하는 아버지가 되었다. 이런 모습들이 한편으론 씁쓸함을 남겼다. 가족끼리 서로 더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가야한단 생각도 하게된다. 연인들의 사랑처럼 가족의 사랑도 이해와 함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단 새삼스런 사실도 깨닫는다.
매우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다. 영화 판권이 팔려 작가가 직접 각본을 쓰고 있다고 한다. 곧 영화로 만나보게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