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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보물을, 아쓰야는 저에게서 빼앗았습니다.
더구나 한 조각의 인간성조차 느낄 수 없는 광기로 가득 찬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그는 제 딸을 마치 짐승처럼, 아니 짐승보다 못한 고깃덩어리처럼 취급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제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딸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직접 본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 본문 중에서
예전 읽으려고 집어들었다가 참혹한 사건을 다루는 줄거리를 보고 차마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영화로 개봉되었다는 소식에 결말이 궁금해서 다시 집어들었다.
역시 처음 느낌처럼 읽고나니 속이 거북하고 뒷맛이 좋지 않다.
불꽃놀이를 보러 갔던 딸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외동딸을 홀로 키워오던 나가미네는 처참한 딸의 시체를 마주하게된다.
한통의 제보전화. 범인을 알고 있다면서 범행현장을 알려주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딸이 찍힌 비디오테이프를 아버지의 눈으로 보고만다.
나가미네는 집으로 돌아오는 범인을 마주하게되고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죽이고 만다.
"그는 두 손으로 식칼을 쥐고, 시체의 배며 가슴이며 닥치는 대로 찔렀다. 그러면서 처절한 눈물을 흘렸다.
범인 죽여도, 사체를 토막 내도 딸을 빼앗긴 원한의 만 분의 일도 풀리지 않는다. 슬픔도 줄어들지 읺는다.
그렇다면 살려두고 반성하게 만들면 원한과 슬픔이 줄어들까? 아니다.
이런 인간쓰레기들이 반성할 리가 없다. 만약 반성한다고 해도 에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다시 옛날로 돌아갈리도 만무하다. 더구나 이렇게 극악무도한 녀석이 앞으로도 계속 살아 있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그것이 비록 교도소라 할지라도." - 106page
범인들은 미성년자였다. 법으로 단죄할 수 없음을 알기에 나가미네는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결심한다.
나머지 한명의 공범을 찾아 자신의 손으로 죽이려 그 뒤를 쫓는다. 그런 그를 경찰은 또 쫓는다.
유가족이 피의자가되버렸다.
이 책을 읽다보니 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란 의문을 갖게된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해주기보다 범죄자들의 바람막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얼마전 뉴스에서 가족을 잃은 피해자가 마스크와 경찰로 둘러싸여 얼굴도 공개하지 않고 무사히 자동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피해자 유가족들의 오열이 들렸다.
도대체 어떤 놈인지 얼굴 좀 보자고 왜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거냐며 분노하는 모습에 다시 책 속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누가 이 아버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도덕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눈 앞에서 딸아이가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눈감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부모가 세상에 존재할까.
범죄를 저지른 아이를 그릇되게 감싸고 자신의 안위만을 살피는 피의자 부모의 모습도 눈에 걸렸다.
미성년자의 잘못은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방관하고 있는 부모와 사회 모두의 잘못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나니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글거리는 답답함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