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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예의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6년 10월
평점 :

제목이 무척 익숙하다. 인간에 대한 예의.
공지영 작가의 책이기에 덥썩 사전지식없이 집어들었다.
아! 그런데 단편모음집이다. 장편처럼 작가의 친절한 이야기 흐름에 익숙한지라 단편은 참 마음껏 느끼기란 아직 내겐 능력밖의 일이다.
작가가 다 들려주지 않은 깊은 뜻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그것들을 하나라도 느끼고 싶어서 단편집을 집어든다.
"사랑하는 당신께" 첫 단편에서는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여인의 독백이 이어진다. 남자는 여자에겐 진부한 일상의 탈출구였다. 가정이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다. 남자는 현실이 힘들다며 곧 이혼할거라며 여자에게 기대어온다. 하지만 이내 드러나는 남자의 진실. 여자는 지금껏 남자를 위해 몸바쳐온 것들을 오롯이 들여다보기 버겁다. 남자를 위해 김장을 하고 싱상한 굴을 사서 남자가 좋아하는 보쌈을 만들었다며 집에서 저녁을 먹으라 전화를 하지만 남자는 바쁘다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남자의 아내가 찾아와 남자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며 정신차리라고 그 인간은 악마라고 말하지만 믿지않는다.
"저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제 인생을 걸었는데 이제야 당신의 아내라는 사람이 불쑥 나타나서 당신이 악마라고 하다니요......"
- 21page
남자를 만나러 회사앞으로 가보지만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남자가 어린시절 자신에게 했던 행동들을 똑같이 다른 여자에게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런데 여자의 마지막 행동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생을 걸었지만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향해서 비난스런 외침도 해보지 못하고 시원한 따귀한데 날리지 못하고! 목숨을 버린다. 아니 도대체 왜! 안타까운 행동에 답답하고 스멀스멀 울화가 올라온다. 여성들의 가치관도 이 책이 쓰인 시점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나만 변한 것일까.
"인간에 대한 예의" 제목이 참 마음에 들어서 제일 먼저 펼쳐 본 이야기였다. 잘나가는 '나'는 한때 운동권에 몸을 담았지만 지금은 먹히는 이야기를 찾아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는 잡지사 기자일 뿐이다. 데스크에서는 노동운동을 하다 20년동안 감옥에 갇혀 살았던 권오규선생 인터뷰 기사를 미루고 대중의 흥미를 끄는 인도명상가 이민자의 기사를 실으라고 한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날 '나'는 오래전 같이 운동권에 몸담았던 지인을 만나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한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대중의 흥미는 끌 수 없겠지만 인터뷰는 권오규 선생의 기사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하지만 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수배중인 후배와 아직도 감옥에 있는 선배와 그리고 버얼써 죽어버리 친구들...우리들은 말이야. 우리들은 저 팔십녀내를 결국에라도 말이야, 벗어날 수 있을까." -103page
"나는 이민자를 결코 권오규만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사실은 더 매력있고 더 재미있는 시간을 내게 주었지만, 권오규의 동생은 지루했고, 권오규는 내가 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는, 미안하다,
나는 그들의 지나온 삶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팔십년대에 이십대를 고스란히 보냈듯 그들이 보냈던 이십대를 생각했던 것이다."
- 108page
"여기, 시대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켰던 한 사람이 있다." - 109page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한 때 체류탄과 데모가 있던 시절을 떠올리게된다. 돌이켜보면 까마득하게 오래된 이야기처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살고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마음에는 지워버릴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요즘 세대의 학생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거라 생각된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지나버린 것이 아닌데도 어느 순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듯하다. 개인의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고 취업에 목숨을 거는 세상, 한 때는 나보다 다른 사람들의 인권이 우선이 되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보다 '우리'라는 단어가 익숙하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줬다.
"인간에 대한 예의" 지금 시대에 딱 필요한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