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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평점 :

김려령 작가의 책이기에 묻고 따지지도 않고 집어들게 된 책이다.
아! 그런데 이건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과는 느낌이 다른 성과 폭력에 수위가 높은 19금 소설!이라는 말에 더욱 궁금해진다.
왠지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는 청소년들에게 유익하고 꼭 들려줘야만 할 것 같은 그녀의 이야기들에 반해 파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줄거란 생각에 긴장도 하게된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뭐 하나 되는 놈 있다 싶으면 지가 그놈인 양 설치고, 굴수까지 빨아먹고도 더 빨아먹을 거 없나 군침 흘리는 게 가족이야."
개천에서 용난 작가 정수현. 그에겐 떠올리기조차 고통인 어린 시절이 있다.
아버지는 엄마와 형을 때렸고 형은 정수현을 때렸다. 담임선생님이 집에 찾아와 도대체 누가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냐며 물어와도 엄마는 진실을 숨겼다. 아버지에게 모진 구타를 맞은 형은 모질게 정수현에게 손을 댔다.
어머니는 형이 맞고 있을때, 정수현이 굶고 있을때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비오는 어느 날 불행한 생을 탈출하고 싶었던 어린 소년의 발악이었을까. 술에취한 아버지를 위험한 쪽으로 가게 해서 물에 빠지게 하고 자신은 도망쳤다. 며칠 후 아버지는 싸늘한 시체로 물위에 떠올랐다.
나는 아버지를 죽인 아들이다. 끔찍한 과거의 기억을 외면하고 살아온 유부남인 그에게 첫사랑이 시작되며 과거의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진다. 왜 아버지가 형은 그토록 쥐잡듯이 두둘겨 팼으면서 자신에겐 손끝하나 대질 않았는지, 언제부턴가 형이 왜 자신을 두려움에 떨며 쳐다보게 되었는지, 어머니는 왜 그토록 며느리와 자신에게 돈을 갈취했는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인지 외면하려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한 여자에게 빠져 마음의 문을 열게 된 순간 그 빈틈을 엿보던 과거의 비밀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정수현. 그는 암울했던 자신의 과거를 보상하고 싶었던 것인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숨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를 사랑했을까? 이혼하자는 그의 말에 몇번의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아내라는 존재는 참 안타까운 존재로만 언급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목숨을 담보고 끈질기게 잡고 있다가 결국은 놓쳐버리고 마는 안타까운 존재이다. 그런 아내를 두고 정수현은 새로운 첫사랑을 찾았다며 후배작가 영재에게 빠진다. 아내와는 다른 영재의 밝음과 천진난만함, 자신감.
처음 술자리에서 아내와 동석했으면서도 영재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그를 보며 정말 유부녀로서 두주먹 불끈 쥐게 하는 울분을 느꼈다. 아내와의 잠자리를 뛰쳐나와 영재의 집을 찾는 그를 보며 도대체 이 남자란! 공공의 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헉 소리나는 반전에 놀라고 만다. 식스센스의 반전이라고 해야하나?
작가가 주인공이고 조연도 작가기에 그들의 리얼한 생활상도 들을 수 있었다.
주인공의 이야기는 정말 음울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면 조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왠지 유쾌하기도 하고 완득이에서 보여준 특유의 입담이 들어있는 이야기였다.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긴 했지만 김려령의 책을 읽고 나면 느끼게되는 어린 시절의 중요함은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하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어린 시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기억이라는 것들이 뇌리에 남는다. 그 짧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평생을 좌우하게 되고 사람의 성격을 좌우하고 무의식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다는 사실이 무섭기도 하다.
성과 폭력의 수위가 높은 소설!이라고는 했지만 요즘 워낙 하드고어적인 요소들이 많이 보이기에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 보여준 김려령의 이야기기에 충격적일 수도 있겠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기에.
솔직히 마지막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보다 너무도 현실적이라서 받아들이기가 싫다.
변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버리는 것 같아서 싫다. 그도 행복했으면 좋았을텐데 여전히 어두움이 갇히게 되서 참 안타깝다.
"내가 바란건 오직 하나였다. 나를 그냥 가만히 두는 것.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이 제발 사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다. 당신에게 행운이 가닿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