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벌레들 - 역사 테마 소설집 ㅣ 바다로 간 달팽이 9
강기희 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벌레들 그들이 만들어준 '오늘'
"독종 같은 새끼, 끝내 바른말 하지 않지?"
"아닙니다."
얼굴이 찢어진 것처럼 그의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 다음에야 담임선생은 손을 멈췄다.
그제야 나는 바닥에 쥐새끼를 닮은 벌레처럼 나동그라졌다. -201page 벌레들 중에서
이제 겨우 3학년짜리 아들의 입에서 나온 '명치유신'의 진짜 뜻때문에
아버지는 대통령의 시월유신 조치 비방자로 몰릴 뻔했고
아들은 피투성이 얼굴을 보며 썩소를 날리는 담임에게 단원 만원의 치료비만 주머니에 찔러 넣게된다.
책 속 [벌레들]의 이야기다.
청소년들을 위한 역사테마소설집이라는 말에 쉽게 들었다가 마음의 울림이 너무도 크다.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 최루탄 냄새가 코를 찌르는 동네길,
뉴스 시작마다 첫머리를 장식하던 대통령의 사진,
관공서마다 붙어있는 대통령의 사진들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인데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시절, 모두들 눈감고 모르는 척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외면이 과거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 그저 예전의 일이라고만 치부되는 듯하다.
3.1절을 삼점일이라고 읽는 아이들. 역사를 수학공식처럼 외우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더이상 역사의식을 강요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런 생각으로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의식, 역사에 대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싶어한다.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지 못했던 청소년들이 단편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사적 한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소설속 인물의 마음을 듣고 공감하게 된다.
조선 말의 동학부터 최근의 촛불 집회까지의 이야기를 짧은 단편들로 담아냈다.
처음부터 읽어야할테지만 도대체 왜 제목을 벌레들이라는 말로 지었을까?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마지막 제목 '벌레들' 단편을 먼저 읽어버렸다.
"벌레의 생각도 우리가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꼭 벌레 같을 것 같고,
벌레가 글을 쓴다면 그 글도 꼭 벌레 같겠지요.
때로는 사람도 벌레 같을 때가 있고, 벌레의 생각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정말 벌레라면 그렇지 않을까요" - 183page 벌레들 중에서
"같은 일을 놓고도 세상 주류들의 생각은 이렇구나.
무엇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은 우리에게 너희들도
이렇게 생각해야지 주류로 들어올 수 있는거라고
말하고 있구나. 그 앞에 우리들의 생각이나
존재는 참으로 작은 벌레같구나. 저절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 184page 벌레들 중에서
"돌아보면 그로서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둡고도 가슴 답답한, 어떤 벌레와의 악연이었다." - 벌레들 중에서
미선, 효순사건을 계기로 퍼지게 된 촛불집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과연 주류의 이야기가 벌레들의 이야기를 짓밟아야하는 진실일까라는 의문이 들게된다.
언론매체를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자신의 생각과 역사적 의식으로 거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느끼게된다.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배웠으면 좋겠다.
동학농민운동,의열단의 독립운동,제주4.3,
국민보도연맹,부마항쟁,삼청교육대,광화문촛불까지.
국사책으로 접하면 너무도 어렵고 부담스럽기만 할 이야기들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에게 국사책보다는 이 책을 먼저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