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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모성 미나토 가나에
"그때 내가 죽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사인이 산사태와 화재인 편이 내 인생을 구원한다. 엄마에게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받는 것보다는." - 86page
엄마랑 나랑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할거야? 아이랑 나랑 물에 빠지면 누굴 먼저 구할거야? 누가 더 좋아?
이런 식의 질문들. 농담삼아 한번쯤 해보거나 들어봤을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 후에 선택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게될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누굴 더 좋아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지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고 말해줘라는 것에 생각이 그치고 마는데요. 미나토 가나에의 이 책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선택당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 어머니와 딸아이 둘 중 한명만 구할 수 있다. 과연 누구에게 손을 내밀 것인가!
미나토 가나에의 신간이기에 무턱대고 집어들었습니다. 아이가 크면 꼭 읽게 하고 싶고 청소년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 중 하나가 미나토 가나에의 야행관람차이기 때문입니다. 야행관람차와 고백을 통해 같은 사건이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당사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들을 격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모성' 또한 겉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또 한번 깨닫게됩니다. 양파껍질처럼 숨겨진 진실을 적나라하게 하나씩 벗겨낼때마다 '고백'이라는 작품에서 느끼는 충격을 받게되는데요. 어떻게 같은 사건을 이토록 다르게 받아들이면서 살 수 있는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기억들 중 어떤 것들은 이 책의 이야기처럼 내가 아는 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 어떤 것보다도 표현하고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명심하게됩니다. 누군가를 위해 했던 행동이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
"저는 딸아이를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키웠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하자 신부님은 왜 그런가요?라고 되물으셨습니다. 간단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대답할 수는 없었습니다. - 7page "
한 여고생이 4층에 있는 자택에서 떨어졌는데 경찰은 사고와 자살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조사에 착수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엄마의 고백과 딸의 회상으로 같은 사건에 대한 전혀 다른 이야기를 엄마와 딸의 시선으로 들려줍니다. 여고생의 추락사건을 보고 뭔지는 모르지만 가정에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엄마가 딸을 죽음으로 몰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요. 이는 모성에 대한 강렬하고도 당연한 믿음 때문이겠지요. 이 책은 그런 모성에 대해 반론을 제시합니다. 모성이라는 것이 태생부터 갖고 있는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인지. 아이를 낳기만 하면 저절로 생기는 것일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물론 누구나 모성은 여자에게 당연히 태생부터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게 될 것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중간중간 딸아이와 저를 떠올리며 그 모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분명 아이를 사랑하는 건 맞는데 가끔 아이고 이 웬수라고 절로 한탄이 나올때가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대체 내가 전생에 뭘 잘못했길래 이리 머리가 아프게 만드는지 눈물이 핑돌게 욱할때도 있는데요. 솔직히 이 책속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내 아이의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게됩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스스로 무던한 애를 쓰며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이의 노력들. 그런 것들이 이 책을 통해서 엄마와 딸의 반복되는 이야기로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한쪽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도 없었습니다.
처음 엄마의 고백을 들으면서는 뭔가 확실히 문제가 있는 엄마다!라는 편견을 갖게 되다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녀에게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모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부터는 말이죠. 안타깝게도 책 속 주인공들은 그 노력의 대상이 그걸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안타깝단 생각이 듭니다. 모성은 제목만 봤을 땐 엄마와 딸의 이야기만 들려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도 들려주네요. 아! 일본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깜짝 놀라게됩니다. 방관하는 남편과 딸노릇만하려는 시누이들, 구박하는 시어머니 그리고 그걸 막아주려는 딸. 엄마는 전혀 모르지만 엄마를 지켜주기 위한 딸아이의 절절한 노력은 더욱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왜 엄마는 딸아이의 아픔과 상처를 살피지 못하고 자신의 아픔만 토로하고 있는 것인지. 왜 아이의 마음을 보듬지 못하는 것인지. 그런 것들이 너무도 답답하게 다가왔습니다. 차라리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거나 울부짖었다면 처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며느리가 자신과 비슷한 강도로 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딸은 자기처럼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그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혹여 엄마가 살아 계셔서 제 손을 본다면 분명 속상해하셨겠지요."
"욕조에는 제가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게 순서였는데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제가 욕조에서 나오면 탈의실에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뜨거운 물을 너무 많이 쓴다고 벌거벗은 채로 혼난적도 몇 번이나 있어서, 식어빠진 욕조 물로 몸을 씻을 때도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물을 졸졸졸 흘려보냈습니다. 그 탓인지 때 이른 감기에 걸려 아침상을 다 치우고 누워있었는데, 시어머니가 2층 방까지 올라왔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너희들을 여기서 살게 해주고 있는데, 지금 무슨 양반 놀음을 하고 있는 거니." - 99page
"저에게 가족이란, 기쁨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다도코로와 딸, 그리고 그 불길한 날 이후부터 함께 지내게 된 다도코로 집 사람들은, 제가 아무리 호의를 전해도 100분의 1도 저에게 되돌려준 적이 없습니다." - 94page
이 책을 읽고 절실하게 깨닫게 된것은 내 마음에 있는 상처와 고통 그리고 사랑마저도 입밖으로 내어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알아주겠지, 언젠가는 알아줄거야라면서 다른 사람이 꼭 내 마음과 같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이죠. 가족이란 힘들땐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한다는 것도 새삼 깨닫습니다. 서로를 위한다며 혼자서 끙끙 앓고 살면 그 상처가 곪아서 더 큰 상처로 부메랑 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겠습니다.
사랑하면 더 많이 표현하고! 사랑하면 더 많이 들어주고! 사랑하면 더 많이 말하고! 시시콜콜한 것에도 감사하고 표현하며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