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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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제목부터 무척이가 독특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화제의 신간을 드디어 집어들었다.

그의 단편소설과 에세이만 감흥을 받고 장편소설은 도통 이해할 수 없어서 이 책을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아니 그보다 내가 과연 하루키의 장편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망설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 내가 이제 하루키의 장편소설을 읽기 시작해도 되는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술술 읽혔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제목은 길고 어려워보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제목의 의미가 한순간에 확 다가온다.

아 그래서 이런 제목을 지었구나하고 끄덕이며 쓰쿠루가 떠난 순례의 끝을 보고 싶어진다.

 

36살의 다자키 쓰쿠루는 '역'을 만드는 일을 하며 도쿄에서 살고 있다. 딱히 두드러진 개성도 색채도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한 쓰쿠루는 사라라는 연상의 여인과 몇번의 만남을 가진다. 쓰쿠루가 이 여자와는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쯤, 사라는 그에게 좀처럼 깊이 다가갈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그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 털어놓는 쓰쿠루의 과거.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그리고 그 여름을 경계로 다자키 쓰쿠루의 인생인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 본문 중에서

"다자키 쓰쿠루가 그렇게나 강렬하게 죽음에 이끌렸던 계기가 무었이었는지는 명백하다.

어느 날 그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네 명의 친구들에게서 '우리는 앞으로 널 만나고 싶지 않아. 말도 하기 싫어.'라는 절교 선언을 받았다. 단호하게, 타협의 여지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리고 그렇게 가차없는 통고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 또한 묻지 않았다. 네 명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고, 쓰쿠루는 고향을 떠나 도쿄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러므로 그룹에서 추방당한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불편한 일도 없었다." - 10page

 

36살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 때의 사건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말로 표현해버리면 그까짓 일로 왜?라고 생각하게 되버리는 그런 것.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서 떨어져나간 일. 그런 일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의 다자키 쓰쿠루에게는 몇달 동안 죽음으로 뛰어들고 싶었던 큰 사건이었다. 청춘의 열병이라고 표현을 해야할까? 파릇한 사춘기와는 또 다른 느낌의 시기. 사회의 때가 잔뜩 묻어 순수함을 잃어버린 세대도 아니고 아직 십대의 순수함을 가진 성인의 몸을 가진 시기라고 말을 해야할까? 쓰쿠루는 그 시기에 의지하고 마음을 털어놓고 늘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하던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쓰쿠루는 갈 곳도 없으면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오고가는 역에 커피 한잔을 뽑아들고 몇시간이나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정말 아프고 누군가가 미치도록 생각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갈 곳이 없는 기분. 세상에 홀로 버려진 느낌. 그런 것을 갑자기 받았던 쓰쿠루는 목숨을 버리려 하지만 그도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이 되버리고 예전의 그가 아닌 완전히 달라진 쓰쿠루가 되버린다. 외면도 내면도 달라진 쓰쿠루는 과거의 떨쳐버리지 못한 이 사건으로 가슴에 뭔가 꽉 낀 것같은 삶을 살아 간다.

 

"누군가엔가 이야기해 버릴 필요가 있었던 거 아닐가. 스스로 생각한 것 이상으로."

"친구 네 명에게서 존재를 부정당했을 때 다자키 쓰쿠루라는 소년은 사실상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존재의 겉모습만 겨우 유지되었지만 그마저 약 반년 사이에 크게 바뀌어 버렸다." - 57pag
"성찰을 낳은 것은 아픔입니다. 나이도 아니고, 하물며 수염은 더더욱 아니죠." - 69page

 

사라는 자신과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쓰쿠루가 왜 그렇게나 심하게 친구들에게 거부당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찾아보라고 한다. 16년이 지난 후에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되지만 쓰쿠루는 네 명의 친구, 미스터 레드, 미스터 블루, 미스 화이트, 미스 블랙을 불시에 찾아가 그 이유를 들어보는 순례의 길을 떠나기로 한다. 도쿄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저 멀리 핀란드에까지.

 

쓰쿠루는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다가왔다가 이윽고 사라진다고 느낀다. 쓰쿠루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거나 찾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체념하고 떠나버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 친구들이 자신을 냉정하게 버렸던 그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서 자신에게는 무언가 있는 존재감보다 텅 빈그릇, 색이 없는 배경처럼 누군가의 무엇을 가득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로부터 16년이란 세월이 흘렀어. 하지만 그때 입은 상처는 아직도 내 가슴에 남은 것 같아. 아무래도 아직도 게속 피를 흘리는 모양이야. 얼마 전에 사소한 일을 계기로 그걸 깨달았어. 나에게는 꽤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던 거야. 그래서 이렇게 나고야까지 만나러 왔어. 갑작스럽게, 민폐였는지는 몰라도." - 193page

 

계속 피 흘리는 상처를 하나 씩 치료해가면서 쓰쿠루는 네명이 과거 절친했던 친구들을 찾아간다. 그가 친구들에게 거부당했던 이유는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유였고 도대체 무슨 이유때문에 그랬는지를 찾아 마지막 친구까지 차례대로 만난다. 1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토록 스쿠루의 마음 속에 담겨져있던 트라우마 같던 버림받은 사건은 30분도 채 되지 않는 친구들과의 재회로 하나 둘 풀린다. 하지만 청춘이었을 때 속마음을 터놓고 모든 것을 나누고 행복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더이상 아니었다. 쓰쿠루와 그들 사이에는 더이상 나누어야할 소중한 것이 없었다. 쓰쿠루의 순례길을 따라다니다보면 그가 왜 그런 거부를 당했는지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지지만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는다. 중간에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몽환적인 이야기들이 언급되는데 그 때문인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의 주범이 혹시 스쿠루가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된다.

 

"다카키 쓰쿠루에게는 가야 할 장소가 없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테제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는 가야 할 장소도 없고 돌아갈 장소도 없다. 예전에 그런 게 있었던 적도 없고, 지금도 없다. 그에게 유일한 장소는 '지금 이자리'이다."- 419page

 

이 책에 담고자하는 메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나 겪게되는 청춘의 열병. 얼마나 뜨겁냐 차갑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상을 사는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당사자에게는 너무나도 큰 상처로 피 철철 흘리는 상처가 될지라도! 그 당시엔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 이유를 내가 몰랐을 뿐이라고. 과거를 마음에 담지 말고 지금 당신의 옆을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가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쓰쿠루의 선택이 얼마전 읽었던 '노르웨이의 숲'을 떠오르게 한다. 어릴 적 순수했던 사랑을 마음에 담고 있다가 새로운 사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절망하는 주인공이 결국은 사랑과 인생을 찾게 되는 이야기들이 스쳐간다. 과거의 어느 한 순간으로 인해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에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 매 순간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쓰쿠루처럼 자신의 과거 상처를 치유하는 순례 여행을 과감하게 떠나진 못하겠지만 그 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같은 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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