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박경리 장편소설 파시

 

'박경리'의 소설이기에 집어들었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하얀 배경에 검은 글씨로만 디자인된 표지가 눈에 더욱 들어온다.

파시. 생소한 단어이다. 파시는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을 말한다고 한다. 어장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육상 근거지에서 어업자와 어부를 고객으로 한 각종 상행위가 이루어지는 곳. 이 책의 주 무대가 부산과 통영이고 이곳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시장과 같기때문에 이런 제목을 지은 것이 아닐까싶다.

 

이 책이 1968년에 발표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거리감없이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란 생각이든다. 어린 시절 한국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내 아버지 또한 어린 시절 이북에서 피난해 왔기 때문에 이산가족이라는 것을 좀 더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아마도 내 뒤로 몇 세대가 지난 후에는 아니 더 짧게 보면 내 아이들이 커서 이 책을 읽는다면 책 속의 이야기가 많이 멀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전쟁을 부모를 통해서도 겪지 못한 세대이기에 남한과 북한에 대한 이야기,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 이산가족이 서로를 만나 끌어안고 통곡 하는 장면들을 떠올리지 못하기에 내가 느끼는 것들을 오롯이 느끼진 못할 거란 생각이 들어 아쉬워진다.

 

 

 

 

 

 

전쟁을 겪은 세대로부터 직접 그 이야기를 들을 순 없겠지만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파시였다. 처참한 전쟁을 겪었어도 사람들을 살아가고 또 사랑을 한다.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물욕만을 채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순수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추악한 내면을 드러내며 사는 사람도 있다. 파시엔 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게 사는지를 판단하기 힘들어 질만큼 그들이 사는 세상은 하루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위태로운 하루 하루였다.

 

 

'파시는 바로 박경리가 겪었음 직한 한반도의 전쟁 후방지역에서 만나게 된

각종 사람들의 움직임과 방황하면서 떠돌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968년도발표한 박경리의 파시는 1950년도에 시작하여 1953년에 끝을 낸

한국전쟁의 남녘 땅 이야기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 567page

 

"피란 간다고 도시락 싸가지고 마을 사람을 따라갔어요..... 산에 갔었어요......

그랬는데 그만...... 배 타고 왔었어요. 어머니 아버진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 23page

 

"남자가 나쁘지 계집애야 무슨 죄가 있나, 인생이 불쌍해서 데리고 왔지.

피란 와가지고 오갈 데 없는 처지고 보니 두었다가, 지같이 의지가지 할 데 없는 사람에게

시집이나 보내면 저도 좋고 부산 처제도 안심할 게고......" - 34page

 

 

한국전쟁이 끝난 후 10년 후의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전쟁의 피비린내나는 참사를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그보다는 전쟁 후의 불안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하루 아침에 몰락한 집안과 그와는 반대의 집안을 보여주며 그들의 보여주는 박탈감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전쟁의 참사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여러 가지 사랑을 보여준다.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부산으로 피란오게 된 수옥은 그곳에서 끔찍한 일을 당한후 조첨지를 따라 배를 타고 통영으로 오게된다. 누구나 한번 쳐다보면 뒤를 돌아보게 하는 미모를 가진 꽃다운 나이의 수옥은 그녀를 탐하는 남자들 때문에 평탄치못한 삶을 살아가게된다. 밀수꾼으로 돈은 제법 벌었지만 자식이 없던 서영래는 그런 수옥에게서 자식을 얻고자 한다. 피란 과정에서 어떤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 수옥은 순수하다는 표현을 뛰어넘어 바보같다. 남자들의 손길을 거부하지도 못하고 조용히 울기만한다. 현실에서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을 바보 같이 참아낸다고 생각해보지만 부모도 돈도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수옥에게 하루 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을거란 생각도든다. 치욕적인 생활에서 탈출해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가 싶더니 사람 일은 하루앞을 내다보기 힘들다고 정말 처철하게 지독한 미래가 그녀 앞에 남겨진다. 지독한 삶이다.

 

"피곤할 뿐이다. 흥! 모두 죽어 자빠지는 판로에 뭐가 되겠다고 공부를 하고 여자를 좋아하고...... 시시한 이야기다." - 50page

"그게 허영이라는 거다. 좋은 옷을 입고 싶어하는 계집애 허영이나, 만용을 부리고 사내다워지려는 허영, 뭐 달러?" - 111page

 

서로 깊이 사랑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는 조명화와 박응주. 요즘 세대라면 정말 사랑하면 도망이라도 가련만 이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며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 내기에 바쁘다. 어머니의 죽음의 원인때문에 조명화는 박응주에게 선뜻 결혼하자고 손을 내밀지 못한다. 서로 상대방이가 자신을 잡아주길 바라고만 있다. 막연한 미래 앞에서 먼저 손을 내밀 자신이 없다. 박응주는 출세가도를 달리기 원하는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라는데 명화와 다른 여자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또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박응주 아버지가 들려주는 결혼 반대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 때문에 조명화는 결국 떠나게된다.

  




"나는 젊어요! 박 의사는 늙었어요! 누가 더 잘사나 두고 봅시다! 아들은 미치광이 딸하고 결혼하고, 뭐가 남아요? 마음대로 계산대로 되는 줄 아세요? 뭐가 남아. 벙어리 딸하고 청승맞게 늙어서 그 꼴 부럽지 않아요. 조금도 부럽지 않단 말이에요!" - 204page

 

"나는 좀 더 절박한 일에 부딪쳐야 사람이 될 것 같다. 학수는 끝끝내 자기 식으로 살고 있으니 부러운 놈이지.

어쩌면 학자도......" - 550page

 

"다 젊으니께 그럴 수 있지...... 아름다운 낭만 아니가? 외곩으로 흘러가는 그 순수함 때문이지. 나는 이해한다.

어쩌면 비극이 아닐지도 모르지.

비극은 그런 순수한 것을 잃고 나이 들어버린다는 그거 아닐까?" - 562page

 

하루 아침에 몰락하게 된 집안의 학자와 학수. 어떻게보면 살림살이를 몽땅 뺏겨 살아가는 것이 막막해질 정도로 안좋은 상황에 이르렀지만 오히려 그들이 삶을 헤쳐가는 방식은 유복한 사람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덤벼들고 오히려 순수한 사랑을 하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격하게 움직이고 실행했다는 점이 달랐다. 치욕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수옥을 수렁에서 구해준 것은 배웠다는 사람들이 아닌 학수였다. 모두들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있을 때 탐욕스러운 서영래에게서 수옥을 구해내 진정한 사랑을 주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할 수 없었던 학자는 방법은 잘못되었을지언정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다.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도망쳐버리는 조명화하고는 확실히 다른 삶이었다.

 

 

 

 

처음엔 너무도 당연하게 응주와 명화의 모습이 커보이고 그들의 사랑에 눈이갔지만 갈수록 아무것도 가진 것없는 학수와 수옥의 사랑에 눈이가고 학자의 모습에 눈이 갔다. 누구의 삶이 옳고 누구의 삶이 그르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사람이 사는 데는 돈이 전부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정말 두툼한 한권이었지만 금세 읽어내려갔다. 책을 덮은 뒤 응주와 명화, 학수와 수옥 그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꼭 더 있을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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