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셔츠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얀 메탈 장편소설 20세기의 셔츠

 

"파이 이야기"의 저자가 쓴 작품이라고 해서 무척 궁금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쇼킹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사뭇 기대감에 부푼다.

20세기의 셔츠. 뚜껑을 열어본 결과 역시나 파이 이야기만큼이나 앞부분은 난해하다. 우화라고 하더니 이게 무슨 비유인거지? 그 뜻을 알지 못해서 머리 속이 아주 복잡해진다. 그러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 다음이 궁금해지고 계속 읽어가다보면 뒷부분에서 빵 터뜨려버린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머리 속에 남겨두면서도 계속 읽지 않고 덮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 남게된다.

 

희고 "20세기의 셔츠"에 슘겨진 미스터리한 진실

증오와 광기를 신선하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담은 우화


이 책을 읽으면서 '우화'라는 사실에 집착해서 뭘 비유했다는 것이지? 뭘 하려는 것일까를 찾기 위해 우화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초반에 읽어가데 어려움이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우화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다가가서 읽어내려갔으면 더 쉽게 읽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셔츠가 어디에나 있듯이, 홀로코스트는 어디에나 있다!"

"왜 이제 와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소설을 쓰려는 것일까?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됐는데. 프리모 레비, 안네 프랑크 등 많은 작가가 홀로코스트를 완벽하게 정리해서 끝내잖는가, 헨리는 혼잣말로 웅얼거렸다." - 37pgae

 

20세기의 셔츠 제목이나 무척이나 독특한데. 20세기 중엽에 일어난 인류의 대학살이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저자는 왜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방식이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왜 상상력이나 비유를 개입시킬 수 없는가에 의문을 갖고 새로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홀로코스트란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을 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고유명사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한다.


 

얀 메탈은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새로운 이야기를 원했는데 흥미롭게도 책 속 주인공이 얀 메탈의 이야기를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 헨리는 홀로코스트에 깊이 빠진 작가다. 기존과 다른 접근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으나 출판사 관계자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그는 글쓰는 것을 접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독자 헨리에게서 편지와 함께 형광펜으로 줄이 쳐진 플로베르의 단편소설이 도착한다. 형광펜줄은 오로지 동물들과 그들의 잔혹한 운명에만 초점을 맞춘 듯하다. 어떤 끌림이었을까 헨리는 그 독자를 찾아가게된다.

 

그 독자는 박제를 하는 노인이였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음침한 분위기에 박제된 동물들만 가득한 가게. 그곳에서 독자는 헨리에게 자신이 평생 써온 희곡을 쓰는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

 

"뭔가를 감춘 듯한 이 희곡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 78page

 

독자는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이 등장하는 알 수 없는 희곡을 그가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들려주며 그의 생각을 묻는다. 단테의 '신곡'에서 길을 잃은 단테를 연옥과 지옥으로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와 천국의 안내자인 베아트리체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하는데. 마지막 결말을 보고서야 왜 박제사 노인이 당나귀와 원숭이에게 그런 이름을 붙여주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앞부분에서 당나귀와 원숭이가 나누는 알 수 없는 대화에 주목하기보다 뒷부분에서 그들이 보고 경험한 것들을 들려주는데 그 이야기가 핵심이었다. 박제사 노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당나귀와 원숭이의 대화가 아니라 그들의 목격한 것들을 헨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란 생각이 든다.

 

"원숭이와 당나귀, 두 동물이 등장인물인데 아주 큰 셔츠에 살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상당히 환상적인 기운을 띠지만 홀로코스트를 떠올려주는 부분들이 있어." - 161page

 

희곡에서 유대인들이 입었던  옷을 떠올리는 줄무늬 셔츠로 들어가는 당나귀와 원숭이.

홀로코스트에 푹 빠져있던 주인공 헨리는 박제사 노인이 들려주는 희곡이 홀로코스트를 의미한다는 것을 점차 알게된다.

 

무언가 말하며 비웃고 있는 소년들에게 쫓기는 여인 둘. 가슴에 무언가를 안고 있다. 물 속에 가슴에 품은 것을 꾹 누르는 두 사람은 이내 물 속에 자신의 몸을 던져 자살을 하고 만다. 그녀들이 품고 있었던 것은 아기였다.

 

셔츠 안에서 당나귀와 원숭이는 이런 끔찍한 사건들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들 옆에 벌거벗인 익명의 시체에 구스타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를 위한 게임을 시작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신문사에도 편지로 알렸고, 거리를 행진하며 시위도 했어. 투표도 했고, 그랬는데 우리가 즐겁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즐겁게 지내지 않으면 우리가 그들에게 지는 거야." - 266page 버질 원숭이의 말.

 

구스타프 게임은 떠올릴 수록 홀로코스트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해서 마음이 정말 먹먹해진다. 그리고 떠올리기조차 무서운 생각들로 가득차게 한다. 얼마나 끔찍했을까, 얼마나 비참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들이 던지는 질문 게임은 유대인의 학살을 담고 있는 여느 소설과 영화만큼이나 그 아픔을 느끼게 한다.

 

"게임 2

당신은 이발사다.

당신은 사람들로 가득 찬 방에서 일하고 있다.

당신이 그들의 털을 깎으면,

그들은 어디론가 끌려가 죽임을 당한다.

당신은 매일 하루 종일 그 일을 한다.

한 무리가 다시 끌려왔다.

그들 중에서 당신은 절친한 친구의 아내와 여동생을 알아본다.

그들도 당신을 알아보고 반가운 눈인사를 보낸다.

당신은 그들과 포옹을 나눈다.

그들이 앞으로 자신들에게 닥칠 운명에 대해 묻는다.

당신은 그들에게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 271page

"게임 7

당신 딸은 확실히 죽었다.

딸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면, 조금이라도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딸의 머리라도 밟고 올라서겠는가?" - 276page

 

"게임 11

1650명이 살던 당신 고향에서 122명만이 살아남았다.

당신의 가족은 모두 죽었다고 한다.

또 당신 집은 생면부지인 사람들이 차지하고,

당신 재산은 모두 도난당했다는 얘기도 듣는다.

게다가 새로 들어선 정부가 재건을 위해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려 한다는 소문까지 듣는다.

당신은 고향으로 돌아가겠는가?" - 280page

 

"게임 12

의사가 당신에게 말한다.

이 약이 당신의 기억을 지워줄 겁니다.

이 약을 먹으면 당신은 고통과 상실감을 잊을 겁니다.

하지만 좋은 기억까지도 완전히 잊을 겁니다.

당신은 그 약을 먹겠는가?" - 281page

 

제 3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던 일들이 이 게임을 통해서 너무도 가혹하게 다가온다.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당신은 딸의 머리라도 밟고 올라서겠는가? 그들에게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이 질문들이 자꾸 머리 속에 떠올라서 마음이 너무도 무거워진다.

 

 

전반 부에서는 파이이야기에서처럼 약간은 몽롱하고 약간은 모호하고 약간은 지루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지만 조금만 참으면 묵직한 쓰나미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왜 그토록 주인공 헨리를 박제사 노인이 집착하며 그의 희곡을 들려줬는지, 박제사 노인의 정체와 그가 평생동안 희곡을 쓰면서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된다.

 

홀로코스트의 학살자와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를 기존의 사건 중심에서 그들의 내면의 이야기와 그 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파이이야기만큼 마지막 결말이 참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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