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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을 테면 잡아 봐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75
원유순 지음, 윤봉선 그림 / 시공주니어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잡을 테면 잡아 봐 커다란 자연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 그 치열한 공존을 그린 연작 동화집
깊은 밤 숲속에서 뭔가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의 표지입니다. 얼핏 봤을 때 도깨비라도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검은 물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뱀, 새등의 동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슨 이야기일까?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이 책은 사람과 자연이 같은 세상에 더불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름답고 비장하게 그린 동화입니다. 그러고보니 책표지의 동물 그림들이 뱅글뱅글 도는 생태계의 먹이 순환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런데 책 속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연의 섭리를 자연관찰책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각 동물의 입장으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잡을 테면 잡아 봐'를 보고나면 깊은 여운이 남는 이유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그림동화책이나 만화를 통해서 약하고 어린 동물은 선하고 그들을 잡아먹는 포식자는 공포와 무서운 악당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말이죠.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착한 동물, 나쁜 동물에 관해 아이들이 생각해보게 합니다. 동물에 관한 다큐를 보면 어린 얼룩말을 잡아먹는 사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럴 때 어린 얼룩말이 불쌍하단 생각에 마음을 졸이고 도망쳐!라고 외치게 되지만 그 순간 굶주리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기 사자를 떠올리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뒷면을 이 책에서는 들여다보게 해줍니다.
늦봄 배추밭의 애벌레, 버려진 고양이, 집을 나간 사냥개, 굶주린 멧돼지 가족, 길을 잃은 꿀벌,
새로운 천적 때문에 죽어 가는 다람쥐...... 한 걸음만 가까이 가 보면 우리 모두는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존재가 아니라, 먹이 사슬의 한 축일 뿐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우수작품상 수상
총 6마리의 크고 작은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각 단편마다 등장하는 동물이 처음부분만 보면 누구인지 잘 짐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동물은 누굴 말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더 빠져들어 읽게됩니다. 그리고 6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꼭 먹이사슬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점이 재미를 더합니다. 첫편 용용 죽겠지에서 등장하던 나비가 우리집은 어디인가?에서 집을 잃고 헤매는 꿀벌편에서도 등장합니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산에서 살게된 고양이는 잡을 테면 잡아 봐에 등장해서 누군가를 쫓는 고양이로 등장합니다.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같아 보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들. 이 이야기들은 생명체는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줍니다.
"17호, 안 돼!"
16호가 나직하지만 날카롭게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 우리 모두 죽일 셈이야?"
나는 얼른 토사물을 다시 꼴깍 삼켰다. 16호는 얄밉도록 침착했다. 내가 봐도 배춧잎인지 벌레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흡사하게 위장했다. - 13page '용용 죽겠지' 편
"바람돌이는 귀가 쫑긋 서고, 눈이 빛나는 멋진 친구다. 우리 또래 중에 아무도 바람돌이만큼 동작이 날래지 못하다.
게다가 귀는 또 어찌나 밝은지." - 49page '잡을 테면 잡아 봐' 편

제일 감동적이였던 이야기는 '잘 가라, 멍청한 놈'과 '내 아들 큰이빨' 두 이야기였습니다.
흰눈이는 귀여운 새끼들을 낳았습니다. 꼬물꼬물한 귀여운 새끼들을 흰눈이는 끔찍이 아꼈습니다. 물고 빨고, 핥아 주며.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흰눈이의 새끼들을 몽땅 팔아 버렸습니다. 그 후로 흰눈이는 힘없이 살아갑니다. 멧돼지 사냥에 나선 주인과 흰눈이는 멧돼지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타앙, 타앙! 소리와 함께 새끼 멧돼지들이 쓰러졌습니다. 그 순간 흰눈이는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있었습니다 흰눈이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있었습니다. 아마도 떠나간 새끼들을 떠올리고 있나봅니다.
산등성이에 굶주림에 지친 멧돼지 가족이 있습니다. 그악스러운 가시덩굴을 헤집으며 골짜리를 오르며 먹이를 찾고 있던 중 새끼 한마리가 덫에 걸리고 맙니다. 오랫동안 써먹어서 버석하게 말라 버린 어미 멧돼지의 이빨은 부러지기만 할뿐 덫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제 아비의 이빨을 빼다 박은 큰이빨은 씩씩 거리며 덫과 씨름하더니 새끼를 구해냅니다. 그대신 송곳니 하나를 잃었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멧돼지 가족은 마을로 먹이를 찾으러 나가고 그곳에서 멧돼지 사냥을 하는 흰눈이와 마추치게 됩니다.
" 내 아들 큰이빨, 사랑한다. 나는 멀어져 가는 큰이빨을 향해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 - 135page
이 책은 아이들에게 자연관찰책에서는 들려주고 보여주지 않던 생태계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생태계는 이어져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연결을 보기보다 개별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키우는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며 멧돼지들을 소탕해야한다는 기사를 보며 책속에 굶주림에 허덕이던 멧돼지 가족이 떠오릅니다. 새끼를 낳자마자 새끼들을 어미에게서 떼버리는 현실에 흰눈이의 촉촉한 눈이 떠오릅니다. 벌레먹은 농작물은 상품가치가 없다며 농약을 사정없이 치고 있는 현실에 17호와 16호가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뉴스나 다른 책을 통해 앞으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 뒷면의 이야기도 상상할 수 있게 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