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터널

 

얼굴없는 살인자. 사회적 약자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질 거란 생각과 함께

불편한 진실도 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화 소식은 들었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 꼭 원작 소설을 통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었다.

원작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게되면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생각을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알게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게되면 내 생각을 담으면서 읽어내려가진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먼저 책을 찾게 된다.

 

 

 

 

 

 

"나에게는 터널이라는 작품이 너무도 절절했다. 펜은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해야 하며 설사 대중의 사랑을 모두 잃을지라도

양심과 도덕적 잣대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라는 초심의 다짐을 다시 찾고 싶었다."

 

이 책은 소재원 작가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절대 내놓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소설이라고 한다.

대중에게 얼굴을 들이밀기 위해 내놓았던 "나는 텐프로였다."는 그를 무명작가에서 인기작가의 대열에 올려놓기는 했지만

가슴 속에 담아놨던 작가로서의 외침을 대변해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대중의 사랑을 모두 잃을지라도!

작가의 그 마음가짐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라면서 도대체 작가는 어떤 외침을 하고 있는지를 듣는다.

 

 

 

 

 

주말 부부로 살고 있는 김미진, 이정수.

그들은 딸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주말에만 함께한다.

딸의 생일날 집으로 향하던 이정수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몸엔 이상이 없는 듯하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고 아내에게 딸의 생일잔치에 늦을거라 말하고 아내의 투정을 들으며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순간.

구조대원으로부터 터널에 갇혀 쉽게 구조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작가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가족이 떨어져 지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한다.

지금 현재 불가피하게 주말 부부로 살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아무래도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돈을 조금 벌더라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삶을 살더라도 함께 사는 것이 정답인 것인지.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든 직장을 가진 사람들에겐 정말 심각하게 다가오는 문제이다.

 

책을 읽는 내내 구구절절 이정수는 아내와 딸아이와 더 많은 것들을 함께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후회힌다.

김미진을 싣고 방송국으로 향하던 운전기사도 마찬가지. 기존의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택시기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완벽한 해답을 찾을 수 없기에 더욱 머리가 복잡해진다.


 

 

기약없는 구조로 이정수는 터널에 갇혀 30일이 넘게 혼자만의 싸움을 견뎌낸다.

무너진 터널을 감싸고 있는 암벽은 그를 빨리 세상으로 꺼내주질 않는다.

부실공사를 책임져야하는 시공사와 권력을 언론이 방패막이를 해주고 있다.

그들의 피해를 대중에게 은폐하려고 하고 돈으로 무마하려 한다.

홀로 대중에게 호소하는 김미진. 처음에는 대중에게 눈물로 호소해서 동정표를 받지만

신속하게 복구되지 않는 터널로인해 새로운 피해자가 생겨나자 대중은 매섭게 돌아선다.

 

얼굴 없는 살인자. 사람들은 어느 순간 생사도 알 수 없는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다수를 희생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서 이정수의 구조를 그만 둘 것에 손을 들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나서서 이정수를 죽여라!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김미진의 집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그녀에게 모진 손가락질을 해대며 언론은 그녀를 코너로 몰아갔다.

 

저자는 이때 언론의 올바른 역할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뉴스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비록 사람들이 열광하는 뉴스가 아닐지라도.

 

 

 

 

 

 

"상관없다 방관하고, 상관없다 책임을 떠넘기던 그들은 한패였던 것일까?

내 남편의 처절한 사투에 그들은 모두 유죄다."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악플로 고통받고 잊혀질만 하면 새로운 마녀사냥에 나서고 있는 인터넷 사회에 경종을 울리게 될 것 같다.

지금도 김미진과 이정수처럼 어딘가서에 얼굴없는 손가락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손가락이 어쩌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댓글로 악플을 달며 비난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듣고 보고 있으면서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방관하고 있는 행위도

얼굴없는 손가락과 다를게 없어 보인다.

 

키보드를 누르고 있는 내 손가락들을 내려다본다.

이 손가락들은 무죄인가, 유죄인가.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열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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