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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합격 데드라인 ㅣ 시공 청소년 문학 53
남상순 지음 / 시공사 / 2013년 3월
평점 :

'인간합격 데드라인' 인간합격이라는 단어에 눈이 갔습니다.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놓는 세상. '인간합격'이라는 데드라인까지 몰아넣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아이를 위한다면서도 결국은 여느 학부모처럼 아이에게 문제집을 풀리고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퍼붓고, 공부 못하면 나중에 먹고 살기 힘들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까지 줄줄 저도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제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말이죠.
시간이 지나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만 몰입해서 공감하고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인가 봅니다.
분명 지옥같은 고3을 겪었고 지루한 학창시절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똑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죠.
이 책은 예전으로 돌아가 나도 분명 겪었지만 기억 저편으로 밀어버린. 십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 아마 딸이라도 있으면 사위 삼겠다고 지금부터 작업 들어갔을 거다. 그런 동윤이가 고2에 이룩한 어마어마한 성공은 바로 함미란과 커플이 된 거였다.
성적도 최상급이다. 우리 아빠 소원인 명문대 법대, 거기 갈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라 그놈이다."
외모도 성적도 그저그런 평범한 고3학생 상진.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판사였고 집안도 남부러울 것 같이 산다.
그와 반대로 잘나가고 성적도 좋고 성격까지 좋지만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친구 동윤.
상진이는 그런 동윤이가 좋으면서도 질투가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다 하는 녀석이었고 다 가진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능글맞게도 상진이 쌀쌀맞게 대해도 동윤이는 살갑게 다가오는 친구입니다.
그 둘사이에는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습니다.
상진이 윤리 선생님에게 맞게 됩니다. 그걸 보고 친구 동윤이 선생님께 대들다가 맞아서 이가 부러집니다.
상진이는 동윤이가 자신을 위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지만 차마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동윤이를 슬슬 피해다니며 멀리하려고 하지만 동윤인 그럴 수록 더 다가옵니다.
동윤이는 정말 속도없이 착한 녀석으로만 보입니다. 그게 더 화가나고 이해할 수 없는 상진이.
그런 시간이 계속 흘러만 갑니다.
이제 고3이 되었다고 상진의 아버지는 기숙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기숙학원 대신에 할머니 집에 내려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지내라고 권합니다.
상진을 따라 내려온 동윤은 그곳에서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착한 녀석으로 인정을 받고 지냅니다.
그 모습이 못마땅했던 상진은 동윤을 골탕먹이기 위해 난처한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늘 순하고 착한 줄만 알았던 동윤이가 폭발하는 모습을 보며 상진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게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계기로 윤리시간에 선생님께 맞았던 기억을 꺼내놓으며 서로 마음 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응어리를 토해냅니다.
진정한 친구로서 새롭게 시작하는 두 소년의 모습에 저절로 흐뭇한 웃음이 지어지는데요.
책을 읽다보니 십대는 십대의 아픔을 꼭 격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대로 사춘기를 겪어보지 못했던 저는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사춘기라는 것도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되가는 과정일테니까요.
사춘기때의 방황과 고민을 그렇게 걱정할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떤 생각으로 살아야할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사춘기의 방황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네요.
제대로 겪지 못한 사춘기. 아이들 책을 통해서 이제서야 경험합니다.

우리 아이에게도 동윤이 같은 멋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친구도 되어줘야겠죠.
학교폭력방지 교육에 다른 친구가 맞고 있을 때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고 선생님께 알리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만큼 자신의 일이 아니면 철저하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기적인 모습들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했는데요.
공부만 일등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이가 아니라 인간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엠피스리 귀에 꽂고 다니는 놈들 중에 대학 가는 놈 있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이 정도면 언어폭력을 넘어 완전히 인권 침해 수준이다.
우리 아빠 직업이 판사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 놀랄 일이다.
난 이런 부모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이 못지 않은 말도 서슴없이 했던 것 같아요.
뱉어놓고 주워담지 못해서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죄책감에 시달린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요.
알면서도 '공부'라는 장벽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고 저절로 튀어나오게 됩니다.
책 속 상진이 아빠의 모습을 보며 그 반대의 엄마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마음으로는 이해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몸으로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또 한번 하게 됩니다.

상진이 인간합격 데드라인에 관한 생각을 하면서 '인간합격'이라는 일본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14살때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 상태에 빠져있다가 10년뒤에 기적처럼 깨어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깨어나기만하면 행복한 삶이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냉정했어요. 14살 소년이 24살의 청년으로 살아가기엔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영화 이야기를 들으면서 십대가 몽땅 사라져버리고 그냥 어린이 된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몸만 컸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 아이들이 십대를 왜 제대로 겪어야하는 지를 절절하게 보여주는 내용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합격 데드라인 이 책에도 그런 것들은 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 나이 때에 겪어야할 것들을 고스란히 제대로 겪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우리 아이들이 몸만 큰 어른이 되지 않도록 '인간합격 데드라인'을 넘을 수 있게 저도 이런 책들을 많이 접해서 데드라인 먼저 넘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