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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2년 10월
평점 :

독특한 그림이 눈길을 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또 만났다.
늘 하루키의 에세이에 푹 빠졌다가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소설을 찾게 된다. 매번 좌절을 느끼는 소설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자꾸 자꾸 찾아든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볼까?하다가 상,하 두권! 하루키의 장편에는 유독 약한지라 한권짜리이면서 표지그림이 시선을 끌었던 '잠'을 선택했다. 이 책은 하루키가 소설 쓰기의 침체기에 있었을 때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소설이라고 한다.
"내 안에 고여 있던 것을 토해내듯이 거의 단숨에 써낸 것이 '잠', 그리고 'TV 피플'이었다. 이 두 작품은 내 안에서 한 세트가 되어 있다. 똑똑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잠'쪽을 먼저 썼던 것 같다." - 작가 후기 97page
'잠'을 읽다보면 얼마 전 읽었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하루키의 일상이 녹아있다. 그래서 더 어라? 이건 하루키의 일상인데?하면서 읽게된다. 평소에 단 것을 싫어하는 하루키는 일 년에 한두번씩은 편의점에 달려가 초콜렛을 한무더기 사서 폭풍흡입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책 속 여주인공이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하루키를 떠올리게 된다. 요리를 제법 잘한다는 하루키가 떠올라서 피식하고 웃게도 된다. 이 책은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읽은 후 읽어보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이야기다.
"잠을 못 잔 지 십칠 일째다." - 9page
"그것이 내 생활이다. 즉 잠을 못 자게 되기 전까지의 내 생활이다. 하루하루가 거의 똑같은 일의 되풀이였다. 나는 간단하게 일기 같은 것을 쓰고 있지만 이삼 일 깜빡 잊고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이 어느 날인지 벌써 구별하지 못한다. 어제와 그제가 뒤바뀌어도 거기에는 아무 지장도 없다. 이게 대체 무슨 인생인가, 때때로 그렇게 생각한다. " -26 page
어제와 그제가 바뀌어도 거기에는 아무 지장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여인이 있다. 지독하게 평범한 삶.
그녀의 남편은 한마디로 잘나가는 치과의사이고 아이도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누가 봐도 행복해보이는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더이상 핸섬해보이지 않고 추해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과연 아이를 사랑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시어머니와 아이 이름을 서로 마음에 드는 것으로 지으려다 다투었을 때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남편을 보며 그에 대한 신뢰를 잃었을 때부터였을까? 자신이 무슨 책을 읽던 관심도 갖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만을 하는 남편을 의식하게 되면서부터였을까? 그녀는 남들이 보면 행복해보이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밤. 소름끼치는 가위눌림에 깨었을 때부터 그녀는 17일동안 잠을 자지 못하는 그렇다고 불면증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잠을 자지 못하지만 체력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활력있다는 것을 느끼고 남편이 자는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여느 때처럼 자동차를 몰아 새벽에 홀로 찾은 한적한 곳에서 있던 그녀. 갑자기 어디 선가 나타난 남자들이 잠긴 자동차 문을 두드리며 뒤집을 것 처럼 흔든다. 시동도 걸리지 않는다! 그녀는 과연 어떻게 될까?
아마 전업주부라면 책 속 주인공의 마음에 감정이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키는 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여자도 아니면서.
어릴 적 잠을 자다 눌렸던 가위눌림도 생각나고 지금 현재의 내 생활, 어제와 그제가 바뀌어도 아무 지장이 없는 그런 생활도 떠올리게 된다. 약간은 몽환적이면서도 약간은 스릴있으면서도 독특한 이야기였다. 특히 삽입된 그림들이랑 이야기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제 하루키의 소설에 조금씩 적응을 해가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