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위안을 받는다는 그 말

우리들의 시간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11월

우리들의 시간 박경리 시집

시! 정말 나와는 거리가 정말 멀고도 먼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박경리 시집이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이건 꼭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표지를 장식하는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 박경리"라는 글귀가 무척 마음에 와닿았다. 예전에 아주 잠깐 동안 연인에게 보낼 편지, 친구에게 보낼 편지 한 귀퉁이를 장식하기 위해 시를 접했었다. 그때는 글귀가 예쁘고 달달한 시들이 참 좋다라고만 느꼈는데 박경리 시집을 읽다보니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 시는 인생사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들의 시간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어디에선가 시는 그냥 읽고 느끼면 그만이라고 하던데 정말 이 책의 시들은 그냥 읽으면 자연스럽게 박경리 작가의 생각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뭔가를 감추고 있고 꾸미기에 바빠 이해하려면 뭔가를 뒤적거려야할 것 같은 시와는 달리 담백하고 솔직함이 느껴진다. "견디기 어려울 때, 시는 위안이었다."라고 박경리 작가가 말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런 이유로 시를 통해 읽는 이들이 같이 위안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리하면 토지라는 소설이 떠오르는데 시를 통해 작가의 또다른 면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년 가까이 토지라는 한 작품에 매달려 오면서 그녀를 지탱해온것은 시였다고 한다. 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채찍질하며 다독이는 것들이 느껴지는 듯하다. 시를 읽으며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된다.

쓰레기 속에서

쓰레기 속에서

나도 쓰레기가 되어가고 있다

챙기고 버리고

무던히 균형 잡아왔지만

이젠 지쳤다

눈을 뜨면 장롱이 있고

TV가 있고 찻잔이 있고

쓰레기통엔 파지가 가득

주전자 재떨이 책더미

그리고 먼지,먼지

떠나고 싶다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홀가분히

상큼함 풀밭 길 걸으며

물에 씻긴

시내 자갈 밟으며

한지로 도배한

절방 같은 마음 되어

떠나고 싶다

탐욕 때문인가

그런 것 같다

게으름 때문인가

그런 것 같다

늙어서 그런가

아마 그럴 것이다 못 떠나는 것은

이 시집은 박경리 작가가 그랬듯이 위안받고 싶을 때 손가는 곳을 펼쳐 아무곳에서나 마음 곳에서부터 읽어도 좋을 듯하다. 요즘 쓸데없는 집착과 욕심으로 마음이 복잡했는데 시 몇편을 읽은 것만으로도 나를 좀 끊없는 욕심에서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