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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어줘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사람이 절망으로 죽어 간다면 세상 전부에게 외면당해서가 아니다.
손 잡아줄 단 한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나, 이구절?"
작가의 '가시고기'를 읽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금 돌아보면 책 속 이야기는 흐릿한데 그 먹먹함만은 아직까지도 생생한데요. 이 책은 그 먹먹함에 또 덧칠을 해버렸습니다.
소재는 자살과 시한부인생.
딱 들어도 체류성 이야기임이 틀림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자살하고 싶어하는 해나와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은재의 이야기속에 빠지게 됩니다. 자살에 관한 이야기는 요즘 정말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딸아이 학교에서 청소년 자살문제예방에관한 공문이 왔습니다. 아이와10분간 대화하라는 문구가 기억납니다. 속 이야기를 꺼내놓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데 그 대상이 부모가 될수 없다는 현실이 요즘이네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틀에 가두어놓고 그대로만 크기를 강요하는 현실.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내 이야기에 더 힘을 주는 현실. 그래서 요즘 슬픈 소식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책의 해나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 하나 없는 존재입니다.
해나는 부모도, 애인도, 친구도, 돈도 아무것도 가진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혼자서 자살할 용기도 없어서 미주라는 친구와 다리위에 섰습니다. 목숨을 내던지려고. 그런데 정작 죽은 사람은 자신이 아닌 미주였습니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는 순간 해나에게 은재라는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생긴 것도 못생기고 호감가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은재는 해나의 병원비도 내주고 해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줍니다. 은재는 소설가라고 합니다. 암투병중인 베스트셀러 작가. 우연히 그의 컴퓨터 배경화면에서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있는 그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그는 엄마의 옛애인이었습니다.
지금 껏 사는 동안 한번도 자신과 아빠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해나는 엄마를 계속 미워했습니다. 아빠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었는데 엄마는 너무도 밝게 억척스럽게 사는 모습에 엄마가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몇년간 외면하고 살았는데 그런 엄마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더 이상 미워할 대상도 없어진거죠. 그래서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은재아저씨를 통해 지금껏 자신이 알던 엄마의 모습에 감춰진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아저씨의 소설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바로 해나 엄마의 이야기였던 것이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아저씨는 그렇게 글을 통해 엄마에게 진실을 고백하고 싶었나봅니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꼭 문제가 되는 것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서 상대방이 오해를 하고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해버리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텐데 헤어지지 않을텐데 꼭 숨기고, 돌아서서 아파합니다.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모습인데요. 해나 엄마와 은재아저씨의 스토리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사랑한다고 말도 못하고 바보같이 세월을 보내다 죽기 마지막에 만나는 것이 진실을 말하지 못한 대가치고는 너무 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살아만 있어줘.
얼마전 본 텔레비젼 프로에서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아내를 둔 남편이 아내에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게 정말 사랑이겠죠.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진실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속 마음에 담은 글]
"죽음은 마침표일까? 쉼표, 혹은 느낌표일까?아니면 영원한 물음표? 모르겠다. 그저 안개 속을 걷는 일이라고 해두자.
삶도, 죽음 역시 안개에 뒤덮인 미지의 길이다. 부활이든 소멸이든,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든 뭐가 대수일까.
지쳤다. 몹시 지쳤다."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이라......죽은 자의 입은 닫혔고 눈은 감겼으며 육신은 묶였다. 자살이 미화된다면, 살아남은 자의 자기 위안이거나 스스로에게 내리는 면죄부에 가까우리라."
"너는 나의 곤줄박이새끼란다. 위기에 처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할 어린 곤줄박이 말이다."
"해나는 피식 웃으며 생각한다.내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게 아니다. 세상이 나를 튕겨내고 있을 뿐이다.
난 버림받은 거야. 그러니까 죽을 자격이 충분해. 해나는 깊게 숨을 내쉬고는 미주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없다.아, 미주가 없다. "
"죽고 싶어서 죽으려던 게 아니란다. 결국 살고 싶어서 죽으려 했단 말이가. 웃겨. 정말 웃기고 있어."
"자살은, 누군가의 가슴속에 지옥을 만들어주고 떠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