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이제하 지음 / 달봄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코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책 표지부터 감각적이고 몽환적 느낌으로 다가오는, 제목만큼이나 무척 독특한 책을 만났다.

서른아홉 개의 짧은 이야기라 쉽게 쉽게 넘어갈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담고 있는 의미만큼이나 오랜 시간 책을 들고 있게 했다.

간혹 어떤 이야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금 이야기에 담겨진 뜻을 살펴보게 한다.

 

모든 이야기들은 사랑이라는 주제로 연관되어있다. 하지만 연인의 달달한 사랑만이 아닌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세계의 다양한 사랑을 담고 있다.  은근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덥지 못하는 책. 마지막에 한방 먹이는 책. 이 책이 그런 책이다.

 

"클레오파트라 얘기 들어 보신 적 있어요?...... 그 사람 칭찬할 만한 것이라곤 코밖에 없었다니까요.

- '코' 에서 이혼하려는 부부의 이야기"

 

부부간에 서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코였고 그 때문에 끌려 결혼하게 된 3년차 부부. 그런데 그들은 결국 그 코때문에 이혼을 하게 된다. 서로 코만보다가. 그런데 그 뒤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 잘생긴 코 하나 때문에 번성해야 할 인류의 사랑이 박살나야 하다니...... 비록 그렇게 잘생긴 코가 플라스틱 제품이면 또 어떻고 상아면 또 어떻단 말인가...... 결혼 전에 그 두사람의 코를 따로따로 몰래 수술을 해준 것은 중앙성형외과 원장 닥터 태두산.... 바로 나였던 것이다.

- '코' 본문 중에서 " 

 

뭐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은 잘생긴 코때문에 이혼을 한다는 것일까 싶다가 마지막 부분의 결말에 머리속에 먼가가 번뜩하게 된다. 서로에게 가장 부족해보이고 마음에 안들어하는 부분이었던 코. 그들은 수술을 해서 자신이 가진 외모 중에 가장 돋보이는 코를 갖게 되었지만 은연중에 서로는 그것이 진짜가 아니었음을 알게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그 사람의 진짜를 볼 줄 알아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판타스틱 미니픽션이라는 제목답게 책 속 이야기는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이에 따라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대하게 될 것 같다. 작가가 친절하게 해석해주지 않는 터라 읽는 사람 마음대로 느끼는대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는 내가 해석한 것이 맞는 것일까? 작가의 의도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계속되며 참 어렵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날부터 밤마다 시인 부부의 침실에선 향기가 퍼졌다.  어떤 날 밤에는 이 집에 모처럼 밤손님이 들었는데, 간 큰 놈이 하는 버릇대로 훔치기 전에 우선 뒤뜰에 쭈그리고 앉아 볼일부터 보던 도둑은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다가 거기 예리하게 베어 사각으로 움푹 함몰한 하늘을 보자 그만 기겁을 해 볼일도 끝내지 못한 채 도망치고 말았다. - 이불 85page"

 

시인 부부는 하늘을 이불 삼아 산다는 정말 말도 안되는! 판타스틱한 이야기들도 제법 만날 수 있다. 동화같은 이야기, 현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글을 참 그림만큼이나 감각적이다. 곰이 주인되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투표를 하고 괴로웠던 나머지 자기 나라로 영영 돌아갔다는 이야기나 폭풍 속에 달아난 닭을 찾아간 동네영감집에서 심한 모욕을 당하고 더러운 영감태기를 혼내 주려고 닭 목을 비틀어버린 아이의 이야기, 피난 가기 직전 기르던 새를 벽에 사정없이 던져버리는 아이와 그 아이에게 나타난 죽은 혼령 이야기등은 충격적이면서도 사랑의 시작을 위한다는 제목과는 동떨어진 듯한 느낌이라 난해했다.

 

하지만 중간 중간 정말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억 속에 오래남았다.

매일 오르락 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안에서 눈이 맞아버리는 남녀의 이야기 늘 보는 그사람, 집앞을 곁눈질하며 자주 지나가는 남자와 그를 몰래 쳐다보던 여자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다룬 회오리등은 대여섯장밖에 안되는 짧은 이야기인데도 주인공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그런 이야기였다.

 

"도대체 재혼은 할 거예요 말 거예요? - 늘 보는 그사람 중"

"그래서 입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내겐 첫 남자고 처음 키슨데 여편네가 있으면 어떻게 자식이 있으면 어떻단 말인가..... 사랑에는 국경이 없는데.... 날아, 이자식아. 모두 뿌리치고 날아!  이 개자식아.....하는 아우성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올라와, 집에 돌아와서도 한없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안 될 일은 안되는 거지요. 아주머니가 아래층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집 식모입니다. - 회오리 중" 

 

 

서른아홉개의 다양한 이야기로 정말 많은 다양한 군상을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 나도 겪었던 이야기네 공감하며 끄덕이는 이야기도 있고 한편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로 입가에 미소짓는 이야기도 있고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며 머리를 쥐뜯는 이야기도 있다. 짧은 이야기 서른아홉개가 서른아홉권으로 다가온다. 그냥 흘려가며 쓰윽 읽기엔 책 속 의미를 다 살펴볼 수 없을 것 같다. 처음부터 쭈욱 읽어내려가지 않아도 기분에 따라 마음에 맞는 단편을 찾아 읽어도 좋을 듯하다.

 

"창에다 손가락으로 무얼 끄적거려 본 적이 있니? 그래 그 희뿌연 자신의 입김 속에 무슨 그림을 그려 넣었었어?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대게 사람을 그린다. 턱 밑에 발이 달린 진짜 인간을 말야.

청년들은 십중팔구 유리에다 하트를 그리지. 그놈이 순수한 무의식 상태 속에 있었다면 말야.

장년은 씹어 먹을 듯이 창을 바라보면서 더럽게 돈이나 생각한다.

늙은이들은 거기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 그저 눈을 뜨고 장님처럼 보고나 있을 따름이지.- 비 중"

 

창에다 손가락으로 무얼 끄적거려 본 적이 있니?라고 물어보는 문구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언제부터 창에 호하고 입김을 불어 손으로 발바닥을 콕콕 찍지 않았는가가 궁금해진다. 늙은이들은 거기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 그저 눈을 뜨고 장님처럼 보고나 있을 따름이지... 나는 몸도 마음도 같이 한꺼번에 확 늙어버린 것인가보다며 서글퍼진다.

 

뜬금없이 예전이 일들이 툭툭 튀어나오며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이다.

조금은 무료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이 책을 꺼내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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