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주책없이 또 울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저 할머니한테 빙수를 먹게 해주고 싶은 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슬퍼지는 거지.

하지만 빨리 말해, 하고 뭔가가 내 등을 세게 밀어주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이 떨어지는 걸 참았다."

 - 할머니의 빙수편.

 

 

책 속 주인공은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이 떨어지는 걸 참았는데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하염없이 펑펑 울었다.

요즘 가족의 따뜻한 이야기가 나오는 글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 저쪽에서 스멀스멀 뭔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따뜻함을 드세요는 책 제목 그대로 따뜻함을 스멀스멀 풍기는 이야기였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위해 예전 할머니와 함께했던 기억을 더듬어 후지산을 닮은 빙수를 사러 무턱대고 달려가는 아이.

기다란 줄을 과감하게 무시하며 주인 아저씨께 

"할머니가 이제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이 집의 빙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라며 눈물을 한움큼 먹으며 말하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별다른 말없이 빙수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포장해 주는 주인.

 

책을 읽고 있으면 장면 장면이 그대로 머리 속에 스르르 영상으로 스쳐지나간다.

상황에 기다란 부연 설명도 진부한 울음 짜내려하지 않는데도 장면만으로 울게 만들다니!!

 

오가와 이토.

음식을 통해서 마음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라는 표현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이 책에는 7개의 짧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각 이야기는 모두 음식과 관련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위해 빙수를 사오는 아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주 찾았다던 삼겹살 덮밥집에서 청혼을 하는 남자.
향긋함을 담고 있는 송이버섯을 함께 나누며 마지막 이별을 하는 남녀,

결혼식을 앞두고 마지막 식사를 하는 부녀,

홀로남겨진 아내의 추억,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

이별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음식과 관련된 추억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게, 평생 맛있는 것을 먹게 해줄 사람인지 아닌지, 잘 지켜봐야지....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사소한 행복을 느꼈다.

순간, 벅찬 감정이 세차게 몰아칠 것 같았다." - 아버지의 삼겹살 덮밥


 

음식과 함께한 추억은 신기하게도 오랜 기간 몸안에 버릇처럼 남아있는 것 같다.

아빠와 함께 기름이 튈까봐 온몸에 비닐과 천을 둘러싸고 함께 만들었던 오징어 튀김!

맛있다는 말에 아빠가 만들어 놓은 엄청난 플라스틱 통을 가득채운 김밥들!

아이들과 동네로 소풍간다는 말에 동그란 소시지에 달걀을 묻혀 만들어준 엄마의 도시락!

초등학교를 들어가기도 전의 일인데 다른 일들은 생각도 잘 안나는데 이런 기억들은 머리 속에 남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할머니가 해주던 손맛의 음식을 찾는 것들이

맛을 찾는다기보다 그때 함께하던 사람들과 추억을 상기시키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달걀 묻힌 소시지를 남편은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걸 보며

새삼 그런 것들을 느낀다.

나와 남편을 공유할 수 있는 그 시대의 추억들을 이 아이들은 모르는 구나...

 

아마도 이 아이들은 소시지보다 패밀리래스토랑의 음식보다

아빠가 손수 처음으로 끓여준 짠라면이나

내가 엄마보다 하면 잘하지!라면서 아빠가 요리사 흉내를 낸

오이를 썰고 달걀을 얹은 짜파게티를 더 기억에 남기고 어른이 되서도 먹고 싶어하지 않을까?

 

따뜻함을 드세요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함께하고 먹었던 음식들과 추억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각박하게 살아가는 요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당신에겐 추억의 음식이 있나요?

 

추억할 수 있는 더 많은 음식을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가을이 살찌는 계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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