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인간성이 드러나는 추리소설을 쓰고 싶었다."

 

이 문구에 주저없이 "잠복"을 집어들게 된다.

책읽는 재미라고는 전혀 몰랐던 내가 책을 좋아하게된 것도 다 추리소설 덕분이다.

추리소설! 피튀기는 사이코패스가 나오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푹 녹아있는 이야기들을 특별히 더 좋아하기에 영원의 아이와 같은 이야기,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들, 히가시노 게이고 신참자같은 소설, 미야베 미유키,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로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잠복의 저자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미스테리의 거장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사회파 미스테리 = 미야베 미유키로만 칭해지는 줄 알았는데 원조는 따로 있었다! 트릭이나 범죄 자체에 매달리기보다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드러내서 인간성의 문제를 파고드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붐을 일으킨 마쓰모토 세이초는 오늘날 일본 미스테리 소설 작가들의 문학적 뿌리이자 영원한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다고 한다. 1992년에 생을 마감한 작가의 이야기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람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책은 총 6권으로 기획된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의 첫번째 책이다. 8개의 단편을 담고 있다. 각 단편이 꼭 홈즈나 코난 같은 탐정시리즈 단편들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볼 수 있었다. 추리소설 단편으로 단순한 트릭들만 나열하고 있다면 참 지극히 뻔한 책이었을텐데 '잠복'은 너무나 많이 봐서 추리소설을 여러 권 읽은 사람이라면 간파할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는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들기도 하고 인간의 사악함이 어디까지인가도 느끼게 한다. 이런 면때문에 사회파 미스테리, 인간성이 드러나는 추리소설이라는 말을 듣는 것 같다.

 

 

자신이 벌인 살인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는 남자를 찾아내 죽이려는 남자의 이야기 '얼굴'.

범인을 잡기 위해 범인의 옛여자친구 집에서 잠복하는 형사의 이야기 '잠복'. 귀축, 투영, 목소리,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일년 반만 기다려, 카르네아데스의 널 이렇게 8편의 단편중에 오랫동안 머리속에 남아있는 이야기는 '귀축'이었다.

 

작은 인쇄소를 운영하며 폄범하게 살던 남자가 돈을 벌게 되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게 되자 바람을 피게 되고 아내 몰래 8년동안 딴살림을 차려 아이를 셋이나 갖게 된다. 경제 불황으로 인쇄소 사정이 어렵게 되자 첩은 아이들만 남기고 떠나버린다. 남겨진 아이들은 본처에게 구박을 받는데 남자는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가 아닐것이라는 본처의 말에 넘어가 본처와 함께 세 아이를 하나씩 하나씩 살해하게 된다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야기속 첫째 아들의 행동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동생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아가며 아버지를 향한 막연한 사랑도 가지고 있는 아이. 그런 것을 알면서도 본처의 잔소리때문인지 책임회피인지 첫째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청산가리를 먹이려하고 절벽에서 떨어뜨리려하고 익사시키려한다. 자신의 품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정신을 차릴 줄 알았는데 이 남자는 그런 아이를. 자신의 품속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어둠 속에서 절벽아래로 던져버린다.

 

도대체 사람이란 뭔지. 계모와 친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건들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요즘 흔히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더욱 울분이 생기고 안타깝게 읽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가 속이 후끈후끈해짐을 느낀다. 8편의 이야기들이 살인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트릭을 밝혀내고 범인을 밝혀가는 재미가 아니라 사람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짧은 단편이다. 그런데 단편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장편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 같다. 현실 어디에서인가 일어나고 있을 법한 사건들. 그 사건 속의 동기를.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시선에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머지 5권의 단편들도 참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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