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영구 옮김 / 푸른숲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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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는 괴테의 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가벼움마저 느꼈었던, 내 10대의 감성이 그대로 남아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 외로 접했던 독일 작가들의 공통점처럼 느꼈던, 철학적이면서 중후한 느낌이 괴테의 글에서는 안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귀족적 태생과 그 밝은 천성이 묻어나온 괴테의 소설들에 그 행복한 삶의 여정에 약간의 질투마저 느끼게 했던 괴테가, 여하튼 천재에게만 주어지는 모습들과, 그리고 죽은 뒤에 그에게 받쳐진 영원한 찬사들... 사람이라면 참으로 부러운 삶을 살고 간 그가, 소설 속의 주인공을 통해서가 아니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라는 개인으로 내게 다가온 것은, 그의 사후 몇백년 뒤에 이뤄진 만남일지라도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까.

그가 남겨놓고 간 책들과 일화를 통해서는 난 괴테를 잘 몰랐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이태리를 거닐면서, 그의 눈으로 이태리의 문물을 바라보고 함께 경탄하고 그의 의견을 들으면서, 그의 학식의 폭과 깊이에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되었다. 한마디 한마디 곱씹듯이 되새김질하면서 괴테와 함께 한가롭게 거니는 이태리...

18세기의 이태리를 18세기의 당대 최고 지성이라 일컬어졌던 독일인의 엄격하면서도 따뜻하고 지적인 음성으로 다정하게 접하게 해준 이 작은 책자에 대해서 무슨 말을 더 할 수가 있을까. 엄격하고 천방지축(?)이기만 한 줄 알았던 한 지성인의, 사실은 따뜻하고 다정한 속내에 접하면서 그 지성의 깊이에 감탄하면서 한없이 그의 매력에 빨려들어가는 자신이 안타깝다고 밖에는...

우연히 접한 책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음미해나가듯이 읽으면서 느낀 점은, 번역의 미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독백하듯이, 매일 매일 보고 느낀 일들을 친구에게 적어나가는 괴테의 필치를, 마치 오늘날의 내가 그 편지를 받아드는 친구인 양 생생하게 전해주는 번역문은, 괴테의 매력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 가장 훌륭한 도구임을 느끼면서, 딱 한 마디만 더 하자면...

무조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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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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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저자들이 가려다가 못 가보고 주저앉은 버지니아의 새넌도우 트레일 근처. 솔직히 이 책을 읽을 때까지는 그 국립공원이 그렇게 유명한 곳인지조차 몰랐었다. 저자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은 갖가지 책에는 곰들의 습격이라든가, 또는 밝혀지지 않은 살인범의 잔인함, 또는 어리석은 여행객들의 실수가 부른 죽음으로 차있고, 그에 놀라는 저자는, 독자에게는 유쾌한 어조로 -그러나 본인에게는 결코 그럴 수 없는- 불안한 여행 출발을 서술한다. 함께 길을 떠나기로 한 친구는 시종일관 무슨 생각으로 그 여행에 참여하게 된 건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비협조적이고... 여하튼 좌충우돌의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되는데...

내가 놀랐던 것은, 함께 하는 여행길임에도 불구, 걷는 동안에는 따로 따로 자신의 시간 속에서 홀로 걸어나갔다는 그 여행 모습. 저자의 타고난 유머감각은 시종일관 독자에게 즐거운 웃음을 제공해주지만, 그 행간에 간간히 묻어나는 그의 모습은 고독과 자기 성찰을 위해서 묵묵히 걸었던 그 모습이었다. 자연을 사랑하면서도 경외하고, 거기서 멀어지면 그곳을 그리워하고, 그곳에 들어가면 왜 찾아왔나 후회하는 탁구공 같은 감정의 움직임은, 저자의 생생한 필력에 힘입어서 읽는 사람에게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아..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 책을 읽고나서 나 역시 새넌도우 국립공원으로 짧으나마 주말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것 외에는... 답답하고 우울할 때 언제든지 뽑아들고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유쾌함으로 가득한 책. 이렇게 정리한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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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과 해독 - 고대 최강대국 히타이트, 100년 동안의 발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오흥식 옮김 / 푸른역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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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즐겨 봤던 당시 유명했던(?) 만화, '나일강의 여신' 당시 '캔디'와 함께 초등생들 사이에서 대유행했던 그 만화는, 20세기 발굴자의 여동생이 파라오의 저주로 고대 이집트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면서 겪는 사랑 얘기인데... 거기서 파라오의 사랑을 받는 그녀에게 또 다른 만남은 바로 히타이트 왕자였다.

고고학이 전공인 여대생인 그는, 고대 문명과의 만남을 경이롭게 보고, 그의 눈을 통해서 나도 조금은 맛본 짜투리 얘기들. 그 중 하나가, '히타이트 족은 호전적인 민족으로 전투시 목을 보호하기 위해서 -상대가 검으로 내리칠 때 조금이라도 보호되기 위해서- 남녀 모두가 머리를 길게 길렀었다'라는 부분이라든가, 철기가 발달한 기마민족으로 강한 나라여서 항시 이집트의 불안거리였다던가... 그래서 어린 내 기억에 히타이트는 강하면서도 신비로운 부족, 더 알고 싶은 나라로 남았나보다. 그래서인가, 알라딘에서 이 책이 히타이트에 관련된 것이란 것을 읽음과 동시에 주저함 없이 택한 것은..

오랜 세월에 거쳐 고고학자들의 추정, 또 그 실수와 빈 시공을 메꿔나가는 노력... 급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200년이란 시간을, 그것도 과거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고고학자들의 고충과 노력, 보람이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애정이 느껴지는 어조로 찬찬히 기술되어있는 책.

생각했던 것 만큼은 '히타이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고고학자들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들의 노력과 함께 조금씩 살아나는 고대문명의 모습을 매시간적 고찰로 기술한 것은, 저자 본인이 바로 뛰어난 고고학자였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중동의 고대문명이나 또는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손길에 스쳐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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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반의 역사 - 역사는 그들을 역모자라 불렀다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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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보다는 그 의도가 더 신선하게 느껴졌던 책. 여러 사학자들이 함께 모여서 그들이 평소에 느꼈을 법한 과거의 흥미진진한 사건들의 재구성 기법은 읽는 자에게도 신선함을 선사해줬다. 특히 몇몇, 이름도 잘 몰랐던 과거의 역모자들, 항상 아련한 그리움으로만 남아있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인물들 얘기들은, 그들이 정사 속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떠나서, 현대의 독자에게는 이렇게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게 했다.

그런데 옥의 티라고나 할까... 가끔 엿보이는 현대인의 시각으로서 당시의 상황을 논평한 듯한 글에서는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예를 들어서, 한 사학자가 쓴 '이자겸'편은 좀 황당했었다. 그 전개는 당시 고려 국왕이었던 인종과 모반자로 전락한 이자겸의 양방변론 형식을 취했는데, 가령 인종이 스스로를 칭할 때 하다못해 '과인'이란 말도 없이 '나'라는 칭호를 썼다던가, 당시의 시대상으로는 남매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촌지간의 통혼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던 때였음에도 불구, 인종의 변론에는 '나는 이모들과도 혼인을 했으니 어찌 이럴 수가 있었단 말인가, 이것은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라는 식으로의 변론 전개를 한 것은 궁색하기 그지 없는 내용이었다. 46촌일지라도 동성동본이면 혼인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 이후일 텐데, 어찌 한 나라의 국왕이 스스로를 '나'라고 낮춰부르면서 먼 훗날의 사고방식으로 스스로의 행동을 비판하겠는가. 이러한 몇몇 군데의 씁쓸한 기록 외에는 읽을 만한 내용이었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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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한 사진가가 기록한 마음의 풍경, 풍경의 마음
한현주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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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접하게 된 책... 흑백사진으로 틈틈이 메꿔진 내용은 여백의 미를 전해주는 느낌. 독자에게, '너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 하지만 난 전할 말이 있고 쓸 얘기가 있어서 쓴다. 그리고 찍을 것이 있어서 찍는다...'라는 저자의 당당하다기 보다는 떳떳한 한 기행문.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한국서의 번듯한 삶이 두려워서' 떠나간 60년대 태생의 사진작가... 뜻이 맞는 남편과 함께 갈 곳이 남아있기에 오히려 다 버리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음 속 자유의 소유자. 그가 길을 떠나면서 만난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얘기가 수수하게 펼쳐지면, '아 세상을 이런 시각으로도 볼 수 있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든다. 그러면서 드는 상념...

'가만, 이 나이의 보통 한국 아줌마라면, 몇평대의 집에 학교 몇등하는 자녀와 함께 사는가라는 것이 가장 큰 명제일 텐데... 그게 과연 유일한 삶의 형태였을까.' 저자가 무서워서 버리고 간 '한국서의 번듯한 삶'이란 건 어쩌면 때로는 삶의 무게로 작용하는 것들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수하게 흘러가는 여행기는, 작자 부부가 어느 외딴 섬에 정착하면서 끝난다. 그러나 그 여운은 끝나지 않는다. 책의 끝에 실린 마음 편하면서도 인생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섬주민들의 소개와 함께, 그들의 여행기는 계속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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