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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작년 여름이었던가... 집에서 한참 즐겁게 책을 보시던 아버지가, 주섬주섬 떠날 짐을 챙기는 나에게, 이것 한 권 가져가서 시간 날 때마다 보라고 주신 것이 바로 이 책이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한가지 실수, 그냥 시간 날 때마다 두고 두고 보기에는 너무 단숨에 읽혀져버렸기에...
유럽 미술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웬디 수녀님의 옷깃을 잡고서 떠난 미술관 나들이는, 그림을 볼 때에 그저 '아 유명한 화가 것이군'하고 돌아서기 급급한 나에게, 또는 '아 그릴 때 제일 큰 피사체가 저거였나보군' 하면서 성급하게 단정짓던 나에게, '얘야, 그림이란 이 구석 저 구석에까지 그 화가의 손길과 의지가 스며들어있는 거란다'라고 보여준 순롓길이었다. 그림을 남겨두고 떠나간 화가들의 유품을 바라보며, 나 같은 대부분의 문외한들은, 그 그림 한 장만 보고 말 때가 많다. 하지만,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 그림을 그려냈던 그들도, 한 때는 이 지구상에서 호흡하면서 사랑을 하고 슬픔을 나누면서 참담함과 빛남을 함께 영위했던, 삶이란 하나의 개인사를 짊어지고 걸어갔던 인생이었다는 것을...
웬디 수녀님은 바로 그들이, 그 그림을 그릴 때의 시대상과 그들의 처해진 상황, 그러기에 그 그림을 그릴 당시의 그들의 심리 상태 등을, 해박한 지식과 함께 그녀만의 따뜻한 어조로 쉽게 들려준다.
그렇다고 지금 내게, '그래서 라파엘로 그림의 뒷 얘기는 뭐였다고?' 하면서 섣부른 질문은 하지 말라. 수녀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녀에게서 그림 보는 방법도 함께 배워나간 거라면, 그것만으로도 난 훌륭한 학생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