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아직 2권을 읽지 못 했으니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 그러니까 이미 일어난 사건이 알고보니 일장춘몽이었더라~는 것은 아닐 테고, 그 보다는 그 총기난사범인 피터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을 유발하면서 눈물로 끝을 맺을지 여부는 -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1권만 읽고났을 때는.. 음, 부모라면 한 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는 것이다.
총기난사사건의 범인, 같은 학교 학생들을 10명 사살하고나서도, 자기는 피해자로서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너무 늦게 한 것 뿐이라고 분노에 떠는 피터.. "문제아 뒤에 꼭 문제부모가 있다"라는 말로 요약할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 부분을 안 짚고 넘어갈 수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터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들의 욕구를 전혀 알아주지 못 한 사람이었고, 피터의 어머니는, 글쎄.. 내가 볼 때는 가장 문제인물이었다. 자기는 따뜻하고 이유가 있고 항상 세상의 정의를 생각하며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는 그냥 마시맬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곳곳에서 나오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동기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유발된 자유방임주의에 경악을 하면서 읽었다. 자라나는 10대 청소년의 자식에게,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네 어쩌구 하면서 자식이 먼저 다가와서 입을 열기 전에는 묻거나 궁금해하지도 않은 모습. 본인은 스스로 궁금해하고 관심이 많다고 말을 하는데.. 글쎄 내가 행간을 잘못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그 엄마는 자기가 보고 싶은 모습만 골라서 바라보는, 어떻게 보면 자신만의 세상 속에 있는 외곬수라고나 할까. 결국 잔혹한 살인자로 진화한 피터는 그 전에 여러 사람들에게 놀림감으로 그 짧은 삶의 대부분을 보내온 고치인생에서부터 그 부모의 합작품에 불과했던 셈이다.
사건이 저질러진 후 변호사와 대면하는 피터는 여러 곳에서 정신적 문제를 드러낸다. 또 유일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조지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 저지른 방화사건에서 피터의 도덕적 무감각을 알 수가 있다. 이 모든 병이 그 내면에서 진행되어가는 동안 그 부모는 전혀 몰랐댄다..
오늘 읽은 신문기사가 있다. 어린 딸이 1년 반 동안 학교에서 매일 선배언니에게 구타당해서 돌아왔는데도, 그 엄마는 매일 목욕을 시키면서 아이가 넘어져서 든 멍이라고 했던 말을 믿었댄다. 구타에 의한 상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자다가 애가 너무 심하게 경기를 일으켜서 병원에 갔다가 오히려 의사로부터 들어서 처음 알게 되었단다. 매일 넘어져서 멍이 드는데 그게 몇달씩 지속되었다면 오히려 부모로서 아이의 운동신경 등을 먼저 검진해보고, 이상이 없다면 조금씩 달래서라도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넘어졌는지를 물을 것 같은데.. 그 부모는 10살 먹은 딸아이가 겁에 질려서 "그냥 넘어져서 생긴 멍"이란 말을 곧이곧대로 1년 반 동안 그냥 믿고 넘어가준 것이다. 어린아이의 자각능력이나 인지능력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어린 자녀의 말을 그대로 믿어주는 부모에게는 큰 박수를 보내지만, 과연 그것이, 그 어린아이를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힘을 기르기 전까지 전적으로 보호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부모로서 자기 역할을 다 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 19분이란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소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왕따, 학교폭력, 피해자의 가해자로서의 진화, 가해자의 도덕불감증, 피해자의 인생파괴.. 그 악순환에는 결코 아이들만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결국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임에서부터 기인된 것이란 것을, 미국에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과 한국에서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신문기사가 내게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