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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원래 팩션이란 장르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서양애들이 팩션이라고 쓴 것은 차라리 즐겁게 볼 수가 있는데, 이 땅의 역사로 팩션을 쓴 것은, "만약.."이란 가정으로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꿈들의 향연과 그 꿈 속에서 함께 거닐면서 "이것이 정말 내 나라의 역사였다면.."하고 바라게되는 마음이 너무 커져버리기 때문에 감당이 안 되어서다. 따라서 이정명 작가의 바람의 화원은 원래대로라면 나로서는 선택할 이유가 없는 책이었다. 그런데 드라마가 나로 하여금 그 끝을 알고 싶게 만들었다. 드라마 상으로 애틋하게 그려져가는 윤복과 정향의 모습 때문에여서였는지, 또는 여인의 몸으로는 담장 밖을 출입하는 것조차 어려운 그 시절에 잘못 걸리면 죽음에 가까운 처벌을 받을 수 있음에도 천진난만하게 궁궐 안과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윤복의 모습 때문이었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그러한 사람들의 여러 모습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소설 속의 윤복은 참으로 복잡하면서도 슬픔과 아픔이 있되 뚜렷한 삶의 목적도 있어보였다. 양부인 신한평의 욕심과는 달리, 친부의 살인범을 잡아내고 그 살해동기를 밝혀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어찌보면 참으로 효녀이되 그 뛰어난 재능으로 스스로는 행복하지 못 했던 사람. 남자인 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능에 빠져서 자기도 모르게 연정을 느끼게 된 스승, 김홍도가, 그가 남장여자임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되 또 한 편으로는 여자된 몸으로 여자인 정향을 사모하는 윤복이 안타까와서 정향에 대한 감정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한 사람으로써" 좋아하는 것이라, 예인이라서 재능을 사랑하는 한 재인으로 당당히 대답했던 사람.. 소설 속에서 그려내진 허구의 인물에 대해서 (신윤복은 허구의 인물이 아니나, 이 소설 속의 신윤복은 철저히 허구적 인물일 수 밖에 없는지라), 그 슬픔을 같이 느끼고 마음이 아파본 적이 참 오랜만인 듯 하다.
드라마도 빠짐없이 보면서 그 영상미에 감탄하지만, 눈 앞에 흐르는 영상이 없기에 오히려 흰 종이 위의 검은 활자를 달려서 그려내보는 18세기의 이 나라 모습은.. 마지막에 자신의 모습으로 당당히 돌아가 여인의 옷으로 그 끝을 접고 사라져간 얼굴없는 한 화원의 모습과 겹쳐서 더 가슴이 아리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