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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캐서린 크로퍼드 지음, 하연희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음식에는 편식하지 않는 편인데 독서는 편서를 하는지 서가를 보면 책제목만 봐도 구입시기가 구분되는 편이다. 가령, 한동안은 무협/추리소설, 역사서, 그 후에는 순수문학, 그리고 자기계발, 또 그 후에는 종교서적, 그리고 이래저래 질리기 시작하니 순수과학 및 고전으로 넘어갔다가 최근 1-2년 동안은 늦둥이 키우는 재미에 육아서적을 닥치는대로 섭렵하기 시작했었다. 이 책은 그 일환으로 산 책. 여러 다양한 육아서적을 읽다보면 요즘 유행하는 유아동 키우는 방법이 세가지로 함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에게 반응하라, 공감하라, 대안을 제시하라. 단, 생활 속에서의 실질적인 적용사례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최근 각종 매체의 다큐멘터리, 책, 기사 등 맹활약 중인 소아청소년정신과의들을 보고 있자면, 진짜 유용한 직업 같아서 부럽기만 하다. 똑같이 글 쓰고 클라이언트 만나서 상대방 얘기 들어주고 가려운 곳 긁어주고 대안을 제시하는 직업인데, 내가 택한 직업은 어쩌자고 잘하면 본전이요 못 하면 돈 못 내겠다고 진상당할 수 있는 직업이고 저쪽은 시작부터 대접받으면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질 수 있는 직업이니 그래서 더 부러웠던 것 같다. 읽고 또 읽으면서 나름 내 딴에 내린 결론은, 일단 내 앞의 일(자식)부터 잘해보자였다. 그런데 결국 만 세돌 갓 지난 꼬마를 상대로 아침에 유치원 가기 전까지의 한시간 반동안 하루동안 쓸 에너지의 절반을 소진하고 기진맥진해지는 엄마 역할이 현재의 내 모습이다.
아이마다 성격, 기질, 성향 등등이 다 다른 것은 기정사실. 그러니 천편일률적인 육아서 내용을 참고서로 활용하면서도 그 내용을 자기 아이에 꼭 맞게 재단하여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그래도 내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해서 마침 우리 꼬마는 기질도 순한 편이라, 이제는 차근차근 설명해주면 납득도 곧잘 하고 아이가 어떤 것을 요구할 때 대안을 제시하면 타협도 이룰 줄 아는, 또래에 비해서는 나름 의사소통이 되는 관계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이 녀석도 일주일에 두번 정도는 엄마에게 "쓰러질 정도의" 피로감을 선물하는 신공도 잊지않고 꼭꼭 발휘하신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극도의 피로감 속에서 숨이나 돌리자고 신간서적 검색하러 들어온 때에 딱 눈에 띈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알았다. 요즘 범람하는 육아방법은 만국공용이라기 보다는 주로 미국식이란 것을.. 난 확실히 깊이는 팔 줄 알아도 넓게는 못 보는 사람이었나 보다. 덕분에 "아 그게 다가 아닌 거여?" 하면서 새로운 눈으로 육아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물론 이 책에서 나오는 프랑스식 사례들은, 이 책의 저자처럼 "오, 역시!!"하면서 나를 맹종하게 하는 힘을 발휘하지는 못 했다. 가령, 아이가 홀로 신발을 신으려고 할 때 미국 엄마들은 참을성 있게 격려하며 끝까지 기다려주는 반면, 프랑스 엄마들은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벗겨서 다시 신기고 데리고 나간다든가 하는 것. 난 미국인은 아니지만 울 아들 신발 바꿔신을 때 말로만 참견했더니 요즘은 알아서 제대로 잘 신는다. 덕분에 지금은 아침에 홀딱 벗겨서 씻긴 후 알아서 입으라고 속옷부터 바지, 티셔츠, 양말 다 꺼내주고 내 준비 하러 들어가면 혼자서 다 챙겨입고 나오기도 한다. 시작할 때 좀 시행착오를 겪기는 하지만 그건 어차피 몇살이 되든 꼭 거쳐야하는 단계라면, 부모가 보기에 제 자식이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은 나이에 겪게 해주는 것은 좋은 일 같다. 익숙해져가는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순간들이 견디기 힘들어서 부모가 뺏어서 대신 해줘버린다면.. 봄에 홀로 신발을 신겠다고 낑낑대던 녀석이 여름에는 혼자서 옷도 다 챙겨입을 정도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책에서 나온 식사예절 등은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아이와 식당에 가면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상황이 싫어서 아이가 요구하기도 전에 미리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챙겨주는 엄마, 먹기 간편한 음식을 시켜서 혹시 흘릴까봐 적당히 쌓아두고 밀어넣기 식으로 일단 흡입을 강요하는 엄마, 식사예절은 나중에 살면서 "남"한테 배우고 일단 "부모"인 내 앞에서는 영양이나 챙기라는 생각으로 식사시간을 보낸 엄마. 프랑스엄마들이 보면 이해불가인 그 엄마가 바로 내 모습이었다. 나라고 왜 로망이 없겠나, 식당에 갔을 때 식구들이 둘러앉아서 하얀 테이블보에 물자국, 빵가루 외에는 달리 자국을 안 남기고 앞에 놓인 식기구들을 이용하여 적절한 시간동안 적절한 예절로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어떻게 보면 우리 아이도 이제 그런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시기가 되었는데 내가 잠시의 편의를 위해서 스마트폰의 세계로 아이를 초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경악했다. 10대들이 겪는 스마트폰의 폐해에 대한 기사들의 홍수 속에 살면서 여태 남의 얘기라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이 집안에서 그 씨앗을 키우고 있는 주범이란 사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100% 공감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면에서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 준 책이었다. 또 때로는 아이의 발작적인 땡깡작전에 "반응-공감-대안제시"로만 응대하기에는 버거워서 버럭했던 내 자신에 대해 좀 더 안도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꼭 잘못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였구나 하는.. 아마 이 책을 쓴 저자도 결국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 거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동이나 서나 다름없이 지상최대의 난제들 중 하나요 예측불허의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한 대형 프로젝트이다. 그 프로젝트의 귀중함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오히려 방향감각을 상실한 부모에게, "정신차려! 당신이 사령관이야, key를 잡어!"하는 일성을 들었을 때의 안도감, 동지애라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저자의 감탄에 공감한다. 프랑스 엄마들의 방식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니라도..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 뭔가 잘못된 것 같기는 한데 그간 읽은 육아서에서 크게 벗어나본 적은 없다는 혼란감이 들 때. 그럴 때는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