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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묘약 - 프로방스, 홀로 그리고 함께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오랜 만에 접하는 교수님의 글.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교수님의 묘사에는 항상 오로라처럼 다채로운 색깔이 넘쳐난다. 다양한 색의 향연으로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글들. 덕분에 나도 남불여행을 즐겁게 했다. 한편으로는, '어느 나라든 시골로 들어가면 그 나라 말이 편해야하는데, 이제 불어라면 오른쪽 왼쪽도 구분 못 하는 내 주제에 언제 프랑스 구석에 들어가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볼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이태리의 어느 이름모를 시골에서 작은 집 하나를 빌려 여름을 보내보리라 야심찬 계획(같은 아직까지는 몽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는 나로서는 아주 뜬구름같지도 않은 곳이라 열심히 꼼꼼히 읽었다. 그러니까 "로 에 봉"이란 간단한 말도, '아.. 로가.. 물이군. 에는.. 동사였어. 봉은 좋단 말이네. 음 그렇구나..'하며 읽었던 불어문외한 주제에도 꿈은 꿀 수 있는 거니까 어쨌든.
10여 년 전, 친구랑 둘이서 르와르강변을 따라 약 2주간 자동차 여행을 한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친구나 나나 불어 못 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래저래 꼼꼼히 준비해서 상대적으로 "아주 아주" 저렴하게 다녀왔다(저렴한 여행의 제1조건은 무조건 비수기에 떠나라는 것). 짧게 길게 다양한 인연들과 여기저기 많이 싸돌아다녔지만, 지금도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추억들은 바로 그렇게 내 갈 길 내가 정해서 떠나본 여행들인 것 같다. 친구와 함께 떠난 열흘간의 잉글랜드 기차여행, 홀로 떠나본 일주일간의 오스트리아 여행 등. 나름 테마들이 있었다. 프랑스를 갔을 때는 고성기행으로 질리도록 고성들을 보자, 웅장한 대리석을 보다가 깔려죽어보자였다. 잉글랜드를 갔을 때는 문학기행으로 브론테 자매에 초점을 맞추고 폭풍의 언덕의 무대를 찾아갔었다. 덤으로 네스호의 네시를 만나고 워스워드를 만나고 돌아왔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음악기행으로 모짜르트를 즐기고 빈에서는 양념으로 슈트라우스 부자를 즐겼다. 물론 문화적으로 월등히 우월했던 합스부르크왕가를 감상해보자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런데 그렇게 다녀온 여행들이 지금도 더 깊숙한 곳에 더 오래 생생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세상이 더 좋아졌으니 유럽 어디를 찍어서 가도 그곳에 있는 개인이 하는 민박집과 바로 연결이 되는 시절이 되었다. 아이가 크면 내가 그렇게 떠돌며 느낀 감상들, 느낌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벌써부터 어디를 갈지 몇군데 정해뒀었다. 거기에 이제 남불도 끼어볼까?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게 해준 책이었다. 물론 교수님이 이 책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문학적으론 안 될 테고 우리 부부가 간다면 아마 토속주 위주로 흘러가겠지만, 흠..(어디를 가든 그 지방 향토주는 한 번 먹어봐야 그 지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근거없는 믿음. 그런데 여행할 때는 그런 것이 은근히 즐거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 몽상(?)이 제일 빨리 실현될지도 모르겠다. 알고보니 대학시절 동기가 이 지방으로 지난 3월 남편 직장문제로 이주 갔단다, 향후 약 10년 계획으로.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르게 흘러간다. 그래서 인연들이 소중하고 예기치 못 하는 일상으로 내일이 즐거울 수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