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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미디어
윌슨 브라이언 키 / 동문선 / 1996년 2월
평점 :
품절
하나의 새로운 인간이 탄생했다. 그들은 미디어 인간이다. 미디어에 대한 최근의 담론은 아무래도 친미디어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상호미디어적이고 상호텍스트적인 매커니즘 속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주체를 긍정하는 이러한 시각은 왠지 모르게 사악한 냄새가 난다. 자본이 자신의 지배력을 가장 확실히 유지하는 방법은 우리의 정신적 삶을 제어하는 것이며, 그 제어망을 보이지 않게 은닉시키는 것이다. 은닉의 가장 성공적인 방법은 우리 인식의 기초적 매커니즘, 즉 인식적, 문화적 선험의 영역을 조작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미디어론은 찬양일색이다. 저항적이고 창조적인 유목적 주체는 어느새 미디어 제국주의의 전사로 돌변하여 오프라인의 인격들을 사면초가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경향으로부터 공격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는 바로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것이며, 우리의 일상과 감수성 하나 하나가 조작되어 나가고 있다.
대중미디어의 조작성은 압도적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미로처럼 준비해 놓고 있다. 따라서 이 미로에 갇히게 되면 삶의 실제적 문제들과 단절된다. 자기 충족적이고 자기 폐쇄적인 세계에 갇혀버린다. 현실의 침입과 가설의 검증에 대해 자기를 봉인하고 영원 속에 갇혀버린다. 이는 광고 미디어에 지배당한 문화가 자초하는 가공할 귀결이다.
자신을 봉인한 정신구조는 인생에서 많은 즐거움을 이끌어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미디어가 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데 전 인생을 바칠 뿐, 창조적 유희와 혁신을 만들어 낼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미에 이 자기폐쇄적이고 쓸모없는 대중에 대해 '생존을 위한 부대'를 언급한다. 그들은 가망없는 대중들 속에서 보다는 깨어있을 가능성이 많은 사회의 상층부로부터 선발된 일종의 특수 부대다. 그는 그것을 만드는 것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방법이라고 넌지시 제안한다. 섬뜻한 경고다. 저자는 그걸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현재의 상황이 악화되어 있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