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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영화
마르크 페로 지음 / 까치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영화로 본 역사가 아니라 역사로 본 영화이다. 따라서 영화적으로 재현된 역사를 다루던 몇 가지 비슷한 제명의 책들과는 분명히 그 종류가 다르다. 마르크 페로의 관점은 다음과 같다. 영화는 '일종의 반역사 혹은 비공식적 역사의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클리포드 기어츠가 제시한 '두껍게 읽기'의 한 전형으로써 영화를 그 자료로 쓰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시대의 감수성을 읽어낼 자료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동시에 영화는 역사적 사건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즉 단순히 시대의 반영자료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 역사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라 미디어가 대중이 어떤 역사적 사건을 인식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현대사회에서 영화나 미디어의 현실 해석은 그 자체로 역사적 사건의 발생과 추이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차원들은 기존의 전통적 역사학의 주제에서 놓쳐왔던 영역이다.
페로의 문제의식 중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시간상의 지속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 어떤 방식이나 혹은 단지 공간상의 이전을 나타내기 위해서 배치한 스타일상의 어느 한 인물 같은 것들이 감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데올로기의 구역 또는 사회적 구역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의 이러한 언급은 영화란 예술의 형식적 차원이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는 시대의 망탈리테를 찾는 실마리가 된다. 따라서 영화적 묘사와 구성의 방식은 단지 미학적 차원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도 접근이 가능해진다.
역자는 문화사 연구에서 주도적인 길을 트고 있는 주경철 선생이고, 저자는 프랑스의 아날학파 학자인 자크 르 고프에게 이 책을 헌정하고 있다. 따라서 만일 자신이 영화 매니아로서 이 책을 골랐다면 일찌감치 내려놓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매니아를 넘어서고 싶다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