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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허만하 지음 / 솔출판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언어의, 시의 장인이다. 그리고 그 장인이 장인답기 위해서는 심연, 궁극을 보아야 한다. 저자 허만하의 일생은 이 장인적 구도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가 일생동안 써온 잡문들을 자기 스스로 거르고 걸렀다. 그래서 70평생을 모은 글이 초라하게도 2백여 남짓의 자그마한 책으로 추려졌다. 글쎄 뭐랄까...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려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어울릴까?
허만화란 작가는 나에게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강우방의 에세이집 <미술과 역사 사이에서>라는 책에서 였다. 예술과 종교를 한 데 어우르는 시각과 궁극을 지향하는 순수한 혼과 열정이 느껴져 그의 시집과 새로 출간된 이 에세이집을 구입했다. 읽는 즉시 그 깊이있는 세계에 공명하고 싶었고 그의 삶의 태도를 따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 깊이는 나에게 너무 깊고 그 태도는 너무 순도 높은 듯 했다.
이런 생각도 든다. 저자는 전업작가는 아니다. 의사였고, 의대교수였었다. 최근에 은퇴를 했고, 이제야 문학에 전념할 여유를 얻었는 듯 하다. 전업작가... 솔직히 나는 이 직업이 불운한 직업이라고 생각된다. 전업작가는 하기 싫어도, 혹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말을 하고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이다. 물기없는 걸레를 쥐어짜는 일이다. 예술은 전업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야 예술을 전유해서 생계도구로 쓰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예술은 삶의 경험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허만하는 말한다.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젊어서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는 바로 경험인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설익은 감정과 아이디어를 성마르게 무엇으로 만드는 일에 집착한다. 아마도 금새 유통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 시대의 집단 무의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착상이 떠오르면 당장에 글로 옮기고 책으로 출판해야 직성이 풀린다. 한국의 문화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향해 나아간다고 즐거워해야 할까?
존경스런 인물의 항목에 또 한 분을 새겨넣을 수 있어서 기뻣다. 블량쇼, 오스터, 강우방, 그리고 허만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