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공간 책세상총서 3
모리스 블랑쇼 / 책세상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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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두 방향으로 소멸한다. 나는 이미 다다를 수 없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소멸하며, 동시에 아직 다다르지 못한 것을 향해 무한하게 소멸한다. 블랑쇼가 본 심연은 그 한 방향이다. 그 두 무한한 점근선적 소멸은 이 세계의 바깥을 원한다. 이 바깥의 세계는 오직 이 세계가 사라질 때에만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세계 속에 있는 한 나는 오직 점근선적 운동으로만 존재하며, 그 운동은 결국 죽음과 침묵을 동반한다.

침묵은 과소인 동시에 과잉이다. 다시 말해 침묵은 등가교환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너무 적거나 동시에 너무 많으며 결코 하나로의 일치에 이를 수 없는 불가능에 대한 반응이다. 불가능에 대해 가능을 온몸으로 염원하는 것은 곧 죽음을 염원하는 것이다.

침묵은 때로 과소 또는 과잉의 수다다. 등가의 수다가 내적 합목적성을 유지한다면 과소와 과잉의 수다는 그런 것이 없다. 이 수다는 말을 많이 할수록 더 애매해지고, 모순이 증폭되며, 말을 더 적게 할수록 교환할 수 있는 의미가 희박해진다. 이 때 말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감추며, 그 감춤 그대로를 드러낸다.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블량쇼가 말한대로 중성적인 것이다.

나는 바깥의 세계를 염원하지만 안쪽의 세계에 살고 있다. 나는 밤을 염원하지만 낮의 빛에 던져져 있다. 그래서 나는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곳에서 헤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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