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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인 것에서 신성한 것으로 - 솔의신서 3
피에르 고디베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솔출판사 / 1993년 10월
평점 :
절판
근대성이란 결국 우리의 일상에서 신성한 것 혹은 환상적인 것을 소거하고 과학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대치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결과는 괴상한 방향으로 틀어졌다. 현대가 신성을 소거하면서 맞아들인 두 대안, 즉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전자는 물신숭배로 후자는 정치숭배로 나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가지 대답을 준비할 수 있다. 우리의 근대성에 기초부터 프레임웍이 잘못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신성성을 제거한 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고디베르의 이 저서는 후자의 대답을 택한다. 그는 1930년대 이후 서구 합리주의 문화 속에 침투하고 있는 비합리적인 것의 존재, 탈신성의 흐름을 따져나가면서, 그 속에서도 신성이나 상상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고수했던 지성들, 예를 들어 블로흐, 벤야민, 융, 말로, 바슐라르, 앙리 코르뱅과 질베르 뒤랑 등의 활동을 고찰한다. 그는 선형적인 진화론적 역사관 대신, 수직성과 원형성이 농후한 나선형적 역사관을 피력하면서, 위기는 몰락의 위기가 아니라 쇄신과 변혁을 위한 위기이고, 한 단계 수직적으로 상승하기 위한 위기이다. 이 때 바로 신성성의 의미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여기서 신성의 위치는 도피가 아니라 각성을 의미하게 된다.
이것은 다시금 '깊이'와 '높이'를 중요한 자산으로 삼는 문화를 복구하자는 의미로 들린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용어를 쓴 사람은 아마도 김지하가 아닐까? 그는 '그늘'을 이야기했다. 그늘은 명약관화하게 내 눈 앞에 던져지지는 않지만 그 의미의 모호성만큼이나 깊은 의미의 떠개로 쌓여있다. 우리의 삶은 그 더깨를 거둬버릴 때 삶은 기껏해야 계량화된 척도에 의해 얇게 분석될 수 있을 뿐이다. 더깨는 우리의 삶을 두껍게 만든다. 삶이 두꺼워지면 우리는 아주 단순한 사물에서도 무한한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게된다. 신성성의 회복은 바로 삶의 두께를 회복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