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한 매터링 코칭 - 미국 교육계가 권하는 신개념 양육, 매터링의 비밀
제니퍼 월리스 지음, 조경실 옮김 / 웨일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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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도 소중했던 아이였건만, 아이가 자랄 수록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보다는 첨예하게 대립하며 날을 세우는 순간들이 늘어갑니다. 어떻게 재미있게 놀까 고민하던 시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모자란 시간을 쪼개가며 해야 할 일을 구겨넣곤 하죠. 참 괴로운 건 아이가 잘 따라주건 따라주지 않건 걱정과 고민이 생깁니다. 따라주지 않으면 공부하라는 잔소리에 반항하는 아이로 인해 괴롭고, 따라준다 하더라도 부모가 말하는 길이 결코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고민과 갈등이 생깁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책은 후자의 경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 아이를 위한 매터링 코칭>은 1980년대 처음 등장한 매터링(mattering) 양육방식에 관한 책입니다. 최근 미국 교육계가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고 그 효과가 입증되어 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데요,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개념을 짧게 정리해보자면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며, 주위에 기여하고 있다"는 건강하고 단단한 자존감,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메타 욕구가 충족된 상태를 말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성공 여부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느끼기 때문에 행여 학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끊임없는 불안장애와 우울감에 시달립니다. 이 현상은 중산층 이상의 엘리트 부모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더욱 도드라졌는데, 이는 부모가 성공한 것처럼 자신도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결국 자신의 가치를 성취에 고정시키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해요. 특히 "지위 보호(status safeguarding)"라는 개념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자기 자식의 지위가 하락하지 않게 만드려는 본능으로서, 아이가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어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특기에 맞춰 시간표를 짜고, 학원에 보내고, 좋은 강사를 찾는 등 사회적, 정서적으로 하는 모든 양육 방식을 뜻한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더 나은 교육,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하는 것은 결국 부모가 유지하고 있는 지위,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지위로 자식이 올라가게 하려는 본능이라는 거죠.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이는 부모로부터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자신의 존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받습니다. 특히 모든 분야에서 철저하게 평가받는 지금 세대에는 "모두가 탁월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해요. "모든 것이 측정되는 시대"이기 때문이죠. 이런 아이에게 "아무 조건 없이 스스로를 가치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매터링 코칭이라고 저자는 정의합니다. 

이 책은 지금 아이들이 처한 현실과 매터링 코칭이 필요한 이유, 매터링 코칭의 개념 정리와 적용 방법을 담고 있습니다.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지만 수많은 아이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약물, 마약 등에 손을 대는 등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생활에 빠진다고 해요. 주로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던 일들이 거의 동등한 확률로 중상류층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이 기현상은, 결국 아이들이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와 성공 여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당장 "너의 존재 가치는 절대적이고,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바뀌지 않는다"라고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끊임없는 경쟁과 비교당하는 SNS의 늪에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거고요.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이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양육(특히 학업에 관련된) 고민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잘 안 해서"니까요. 그래서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 넣기까지 노력하고, 갈등하고, 도전하고, 소진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가끔은 소위 "잘난 부모와 잘난 자식들이 말하는 그들만의 세상"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매터링"은 공부를 열심히 하든 그렇지 않든, 성적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모든 아이에게 적용되는 중요한 개념인지라 큰 도움이 됩니다. 무심결에 하는 말 가운데 아이에게 이중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끈다는 미명하에 가스라이팅이 되지는 않았는지, 정말 아이가 고유한 존재로 인정받고, 나아가 주변과 사회에 기여하며 단단한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자녀부터 중고등학교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자녀들을 가지신 부모님께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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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눈물 10대를 위한 세상 제대로 알기 5
오애리.김보미 지음 / 북카라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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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에 대해 끊임없이 들었던 것 같아요. 기억하기로 그 시작은 "산성비"였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저 비 맞으면 대머리 된다!" 소리를 지르며 비를 피해 뛰어다니곤 했죠. 엘니뇨, 오존층 파괴, 미세먼지, 코로나, 엠팍스까지 고루고루 갖추고 있는(?)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천국에 가까웠는데 말입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뽀뽀뽀 에피소드가 있어요. 일회성으로 출연한 "냉장고맨"은 우리가 냉장고문을 오래 열고 있을 때마다 약해지고 고통받기 때문에 냉장고문은 빨리 닫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때의 여파인지 지금도 냉장고 문은 쏜살같이 닫습니다. 물은 꼭 필요할 때만 틀어서 쓰고, 난방이나 에어컨도 정해진 공간에서만 제한된 시간에 하고 있어요. 텀블러를 사용하고, 한때는 면생리대만 고집할 정도로 일회용품을 안 쓰려고 노력했죠. 

한숨이 나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현실입니다. 오히려 가속도가 붙은 채 나빠지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죠. 아들이 태어나기 전만 해도 미세먼지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는데 어느덧 사계절 동반자가 되어버렸고, 매 년 여름 열대야와 최고 기온은 갱신을 거듭해서, 올해 여름이 앞으로의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라는 비관적인 뉴스가 들려옵니다. 오히려 코로나로 전세계가 멈췄을 때 대기가 깨끗해지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했고요. 

<고래의 눈물>은 환경보호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0대를 위한 세상 제대로 알기" 시리즈에 걸맞게, 젊은 친구들에게 실상이 무엇이고, 우리가 처한 환경이 무엇이며,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고, 무엇을 고쳐나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요. 10대를 위한 책이라고 하지만 어른들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실 저만해도 해양 환경오염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어느 정도로 심각하고 무엇이 좋고 나쁜지 알지 못했거든요. 

"고래가 살지 못하는 바다는 인간도 살 수 없는 바다입니다."


이 책의 로그라인이 그 어느 때보다 가슴 깊숙히 박혀옵니다. 더워도 너무 더운 요즘 "못 살겠다"는 말이 자주 들려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가는 느낌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지진과 해일, 태풍 소식 역시 환경오염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뭔가 멈추고, 바꾸고, 해결할 법도 한데 아직도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미세 플라스틱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신용카드 정도 크기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고 저자는 말해요.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현대 들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원인 불명의 질병들, 이유모를 불임과 난임, 기형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미지의 세계' 같았던 고래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어요. 가장 인상깊었던 건 "고래 낙하(whale falls)"라고 불리는 현상이었는데, 고래는 사는 동안 탄소를 자신의 몸 안에 축적해놓는다고 합니다. 해안으로 밀려온 고래 사체가 폭발하는 이유죠. 자연에서 고래가 죽으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데 이때 고래 몸 안에 있던 탄소도 심해에 묻히면서 수백 년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고래 개체 수 감수 이전) 모든 고래의 낙하 효과과 16만톤의 탄소 흡수 효과라고 추정했는데, 지상에서 나무를 심어 이만큼의 탄소를 흡수하려면 축구장 2800개의 면적을 숲으로 만들어야만 가능하다니 새삼 고래가 환경에 있어 얼마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한동안 지속된 고래 포획과 금지 이후에도 자행된 불법 어획, 우연을 가장해 고래를 낚는 혼획 등으로 고래 개체 수는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었고, 직접적인 포획이 아니라도 바다 자체가 더러워지면서 고래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은 턱없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와중에 일본은 놀랍게도 시대를 역행하며 잔인한 돌고래 도살쇼를 몇 년 전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통의 보존"이라는 이유로 말이죠.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배우고, 짚고 넘어가야 할 고래 이야기. <고래의 눈물>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아껴봤자 기업이 잘못하고 있는데 말짱 헛수고"라는 현실이 우리 힘을 빠지게 할지라도. 조금씩 인식이 개선되어 가고, 조금씩 변화에 동참한다면 희망은 꺼지지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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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중국사의 주인공이라면 5 - 난세 삼국 편 고양이가 중국사의 주인공이라면 5
페이즈 지음, 이에스더 옮김 / 버니온더문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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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서리쳐지게(?) 귀여운 책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벌써 5권째 출간되었고, 알고보니 이게 첫 시리즈가 아니더라고요. 지은이 페이즈는 고양이 캐릭터가 가득한 애니메이션 브랜드를 운영 중으로, 작가 소개를 보니 웨이보에서 연재하는 애니메이션을 주력하여 활동하는 듯합니다. <고양이가 중국사의 주인공이라면>은 그중 가장 사랑받는 시리즈로 이미 조회 수가 5억 뷰가 넘었다고 해요. 

시리즈의 중간에 탑승하는 건 여러모로 아쉬운 일인지라 혹시라도 몰입이 잘 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만… 책을 펴든 순간 씻은듯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중국사를 사건별, 테마별로 짧게 끊어가는데다 충분한 설명과 반복적인 복습으로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역사가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죠. (물론 거기에는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가 큰 몫을 했습니다)

챕터의 길이도 적당하고, 연재된 작품을 모체로한 책 답게(?) 끊는 포인트가 드라마틱해서 다음 장을 넘기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고요. 300쪽이 넘는 분량인데 너무 금방 끝나 아쉬웠어요. 특이하게도 이 책은 기존의 고양이 캐릭터가 중국 역사의 인물을 “연기한다”는 컨셉으로 만들어져 챕터가 끝날 때마다 백스테이지와 Behind the Scenes를 엿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적당히 시대적 거리가 벌어진 다음엔 같은 고양이가 다른 인물로 출현하기도 하고요(엄청난 현실 고증 아닌가요 ㅎㅎ). 

5권은 삼국지가 다루는 마지막 내용인 천하통일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가장 친숙하면서도 궁금했던 부분이었어요. 만화만 있는 게 아니라 컷마다 그 내용을 뒷받침하는 주석이 붙어있어 단순히 재미로만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사 책도 이렇게 나와준다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역사광이 될텐데 말이죠! 

다음 시리즈를 기다리는 동안 지난 4권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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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에게 - 동네서점 2024 올해의 책 추천도서, 2025년 아침독서 추천도서, 2025년 한학사 추천도서 그래픽 노블 1
이루리 지음, 모지애 그림 / 이루리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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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십수 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짙어만 가는 그리움에 괴로워하는 분들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가 상실을 감당할 수는 있는걸까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지구인에게>의 저자 이루리 씨는 오래 전 작은형을 사고로 잃었습니다. 갑작스레 떠난 작은형의 빈 자리는 가족 모두에게 오래도록 큰 상실과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루리 씨는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늘 자신의 자리에서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었던 작은형에게 한 번도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은형에게서 받은 사랑은 또렷해져 갔지만 그 사랑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은 남은 가족들을 더욱 괴롭게 했죠.

이루리 씨가 선택한 방법은 <지구인에게>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작은형의 죽음을 소재로 한 이 책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이며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언뜻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상치 못한 스토리텔링에는 수많은 메타포가 숨겨져 있어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았어요. 외계인이 등장하는, 분명 SF로 시작한 이야기인데도 미묘하게 현실감있는 전개와 예상못한 결말이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만듭니다. 몇 번 읽으며 의미를 알아채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형을 떠나보낸 저자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형에게 건네는 따뜻하고 미안한 감사인사”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어릴 적 희미한 기억이 뒤섞인 꿈처럼, 아련한 감정만 남은 빛바랜 추억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의미가 불분명한 전개가 계속되더라도 그 모든 이야기 가운데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메시지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책을 덮고 나서 <지구인에게>라는 제목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야기 초반, 아무런 설명도 없이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은 지구인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왜 지구인들을 혼돈과 무질서로 어지럽힌 걸까.
그들이 무엇을 원했든지간에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것”이라고요.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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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에게 - 동네서점 2024 올해의 책 추천도서, 2025년 아침독서 추천도서, 2025년 한학사 추천도서 그래픽 노블 1
이루리 지음, 모지애 그림 / 이루리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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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십수 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짙어만 가는 그리움에 괴로워하는 분들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가 상실을 감당할 수는 있는걸까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지구인에게>의 저자 이루리 씨는 오래 전 작은형을 사고로 잃었습니다. 갑작스레 떠난 작은형의 빈 자리는 가족 모두에게 오래도록 큰 상실과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루리 씨는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늘 자신의 자리에서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었던 작은형에게 한 번도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은형에게서 받은 사랑은 또렷해져 갔지만 그 사랑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은 남은 가족들을 더욱 괴롭게 했죠.

이루리 씨가 선택한 방법은 <지구인에게>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작은형의 죽음을 소재로 한 이 책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이며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언뜻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상치 못한 스토리텔링에는 수많은 메타포가 숨겨져 있어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았어요. 외계인이 등장하는, 분명 SF로 시작한 이야기인데도 미묘하게 현실감있는 전개와 예상못한 결말이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만듭니다. 몇 번 읽으며 의미를 알아채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형을 떠나보낸 저자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형에게 건네는 따뜻하고 미안한 감사인사”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어릴 적 희미한 기억이 뒤섞인 꿈처럼, 아련한 감정만 남은 빛바랜 추억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의미가 불분명한 전개가 계속되더라도 그 모든 이야기 가운데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메시지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책을 덮고 나서 <지구인에게>라는 제목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야기 초반, 아무런 설명도 없이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은 지구인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왜 지구인들을 혼돈과 무질서로 어지럽힌 걸까.
그들이 무엇을 원했든지간에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것”이라고요.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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