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순수한 허구이므로, 본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국가, 배경, 도시 등은 모두 사실과 관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19>의 내용도 있으므로 읽으시려는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第 二 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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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그리고 또 그로부터 약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그는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2,3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는 아직 시원할 동안에 밖에서 책이나 읽으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1899~1986. 아르헨티나의 작가)>의 단편집을 골랐는데 그것은 또 그 <보르헤스>의 글에서는 자기 부친(父親)으로부터 물려 받았던 취향(趣向)이라고 할 수 있었던 <코난도일>과 <스티븐슨(Stevenson, Robert Louis-영국의 작가. 1850-94. 공상적인 이야기를 평이하고, 밝은 문체로 썼으며, 대표작으로는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있음)> 그리고 <체스터턴(Chesterton, Gilbert Keith-영국의 소설가·평론가. 1874-1936. 기발한 착상과 역설적인 論鋒으로 알려졌으며, 가톨릭 神父 Brown을 주인공으로 했던 백여 편의 탐정소설이 있음)>과 비슷했던 면이 많았던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그 <단편집>은 그가 아직 다 읽지 못하고 있었던 <사아베드라>의 최신작으로부터 기분을 전환시켜 주기에는 딱 알맞았던 것이었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또 그때, 그는 그 <남아메리카>의 영웅시(英雄詩)에 대한 것에는 이미 식상(食傷)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1976>
아무튼 잠시 후, 그는 밖으로 나가서 <남아메리카>의 영웅 중 한사람이었던 한 군인의 동상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그는 또 다시 <남자의 명예> 즉 <마치즈모>와 관련되었다는 것에 아연해 했었는데, 어쨌든 그 동상의 주인공은 역시 <남아메리카>의 영웅이었던 <산마르틴(José de san martin-1778~1850. 아르헨티나태생, 남미의 혁명지도자)>을 구했던 사람이라고 했었고, 그것은 또 이미 150년 전의 일이었다고 동상에는 쓰여 있었던 것이다.

<José de san martin>
아무튼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았던 그는 매우 편한 마음으로 <보르헤스>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목이 마르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또 그는 <보르헤스>를 정확히 음미하기 위해서는 <치즈비스킷> 같은 <아페리티프(apéritif-식사 전에 마시는 술 또는 식욕을 돋구기 위해서 마시는 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더위 속에서는 오히려 뭔가 시원하게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였던 <그루버(Gruber)>를 찾아가서 그와 함께 <독일식 맥주>를 마시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그루버>는 그가 그곳에 처음 왔을 때 사귀었던 친구였다. 그는 소년시절이었던 1936년도에 독일에서 유대인 박해(迫害)가 격화(激化)되었을 때부터 그곳으로 도망을 왔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때 아주 어린애였지만, 그러나 그의 양친(兩親)은 그를 해외로 도피시키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었고, 그것은 또 단지 그의 이름인 <그루버>란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또 그때, 그의 어머니는 그의 여행을 위해서 특별한 케이크를 구웠다고 했었고, 그 안에다 일종의 <이별 선물>로 귀중품(貴重品) 몇 개도 숨겨서 넣었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또 그것은 가치(價値)는 별도였다고 치더라도, 다이아몬드 부스러기로 만들었던 그의 어머니의 약혼반지와 아버지의 결혼반지 등이었다고 했었는데, 그것은 또 그의 양친(兩親)은 그 새로운 땅에서 다시 시작하기에는 연세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렇게 했었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양친(兩親)들과 헤어져서 혼자서 그곳으로 왔다고 했었고, 그래서 또 그 후에는 두 번 다시 양친(兩親)을 만나지를 못했다고 했으며, 그래서 또 당연하게 양친의 묘지조차도 찾지를 못했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그와 그렇게 쉽게 친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또 그때, 두 사람 모두 뜻하지 않았던 일로 부모님들과 헤어져서 살게 되었다는 공통점 때문으로 생각되기도 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때 <그루버>는 그곳의 번화가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그 번화가에서는 길 가에다 간판들을 아무렇게나 돌출되게 내놓은 곳이 많았기 때문에, 그가 봤을 때는 마치 중국(中國)의 거리 즉, 차이나타운(chinatown) 같게만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가 그 <그루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안경점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가 <독인 사람인가?>하고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었던 것이다.
<보통 약방이나, 안경점이나, 사진전문가들은 언제나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체로 괴벨스(Goebbels)나 괴링(Goering)이란 이름보다는 차이스(Zeiss)나 바이어(Beyer)란 이름을 더 잘 알고 있는데, 그런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그루버란 이름을 더 많이 알고 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