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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홀했던 것들 - 완전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완전한 위로
흔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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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좋았다. <내가 소홀했던 것들> 지금도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살면서 내가 소홀했던 것들이 참 많았다. 내 감정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감정엔 소홀했고, 무심했던 시간들. 왜 후회와 깨달음은 그런 것들이 한 차례 지나간 후에야 알게 되는 걸까? 미안하다고,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그리고 멀리 흘러가 버렸는데. 바쁘게 하루를 사느라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내 감정만을 우선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 만나게 된 흔글 작가의 <내가 소홀했던 것들> 마치,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소홀했던 것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고, (내가 소홀했다고 생각했던 것들 외에 소홀했지만 소홀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것들까지) 그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건져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장 한 장 작가의 글들을 읽어가면서, 나는 오래전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지만 서로 좋지 못한 감정으로 이별을 고해야 했던 순간들. 아 맞아,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바로 이런 감정이었어. 당시 입 밖으로 뱉어지지 못한 감정의 말들이 흔글 작가의 문장 속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경험을 했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다. 심장과 마음은 그때의 시간을 흐르고 있는 것처럼 잠시 들썩이기도 했다. 사랑부터, 이별까지. 사람 사이의 관계부터 나 자신까지 흔글 작가의 글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부딪히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아주 작은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잡아둔 것 같다. 촘촘한 그물망으로 최대한 많은 물고기를 낚아 올리려는 뱃사람의 마음처럼. 추억과 기억이 환기되고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글들도 좋았지만, 새삼 타인에게 내 감정의 밑바닥까지 보여주기엔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일 것 같은 감정선들까지 흔글 작가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또 공감이 되었다는 건... 나 역시 부끄럽고 초라한 감정들을 가슴속 깊은 곳에 갖고 있었다는 걸 거다. 덕분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감춰두었던 내 마음속 깊은 곳 감정의 더께들을 이 책을 통해 다소나마 털어내고, 편안하게 들여다본 것 같아서 홀가분하다.
포장
당신을 굳이 '좋은' 사람으로 포장할 필요도
남들이 옳지 않다고 손가락질하는 게 겁난다고 해서
그들의 '맞춤'옷이 될 필요도 없어요.
당신은 그 누구의 쓸모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는
그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고, 누군가에겐 선물이죠.
공허하다
공허에 가까운 말은 외로움.
나는 혼자 있을 때, 사랑이 막 끝났을 때,
수업이 끝난 뒤 혹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에,
속상한 일이 있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에
휴대폰을 들여다보지만 막상 연락할 곳은 없을 때
그런 감정을 느끼곤 했다.
가끔 그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얕은 관계를 자처하며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공허함을 이겨보려 했었지만
그럴수록 공허함은 더해져만 갔다.
예전부터 알아왔던, 깊은 관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도
사소한 이유로 어긋날 수 있는 게 인간관계인데
나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과연 이해를 바라고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영양가 없는 위안일 것이다.
공허함을 이기자고 시작한 일이 더 큰 공허함으로 되돌아오고
또다시 공허함에 빠지게 된 나는 결심했다.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텅텅 비어버린 마음을
제대로 느끼고 이겨내야겠다고.
외로움에 못 이겨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의미 없는 만남일 가능성이 크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