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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십각관의 살인>은 책 소개에도 나와있지만 당시 일본 미스터리계의 주류였던 '사회파 추리 스타일'에 반기를 들고 추리 문학 고전기의 본격 미스터리로 돌아가고자 했던 '신본격 운동'의 효시가 되는 작품임과 동시에 데뷔작(1987년 발표)이기도 하다. 신본격 추리소설이란 '트릭'을 중시하는 소설이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시마다 소지, 우타노 쇼고, 오리하라 이치, 아야츠지 유키토 등이 있다. 신본격과 본격의 차이는 '시대'라 할 수 있다. 1900년대를 본격이라 하며 대표적인 작가로는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 등이 있으며 1980년대 이후에 나온 본격은 신본격이라 부른다. 이와 다르게 트릭의 비중보다는 사회적 이슈나 병폐를 다루는 추리소설을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는 미야베 미유키와 마쓰모토 세이초가 있다. 쉬운 예로,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이상, 개인적으로도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늘 궁금했던 '본격'이니 '신본격'이니 하는 용어들을 조사하여 정리해 보았다.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관 시리즈'는 <십각관의 살인>을 시작으로 <수차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 <인형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흑묘관의 살인>, <암흑관의 살인>, <깜짝관의 살인>, <기면관의 살인>으로 완결되었고 국내에 <깜짝관의 살인>만 아직 출간되지 않은 상태이다. 소설의 시작은 한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은 찾아올 것이다. 아무런 의심도, 두려움도 없이, 자신들을 포획하고 심판할 그 십각형의 덫 속으로...
과연 이 남자의 정체는 누구이며, 무엇을 계획하고 있으며, 그 의도와 목적은 무엇인가? 궁금증을 동반한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소설의 배경은 '츠노시마'라는 무인도이며 이곳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수수께끼의 천재 건축가가 만든 '청옥부'라는 건물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반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나카무라 세이지'와 그의 부인, 고용인 부부 등이 처참하게 살해되었으며 청옥부 역시 불에 탔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청옥부'의 별관인 10개의 변으로 이루어진 기묘한 십각관 형태의 건물뿐이다. 일곱 명의 K 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회원인 '엘러리', '아가사', '카', '르루', '포', '올치', '반'은 여름방학을 맞아 일주일 예정으로 이곳 '츠노시마'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실명이 아닌 미스터리 연구회의 전통에 따라 작가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는데, 작가의 '본격추리문학' 황금기에 대한 진한 향수가 드리워진 것이라 한다. 기본 설정 역시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잠깐 옆길로 세자면, 나는 이들이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요즘 나온 책들은 잘 읽고 있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 살아남은 고전작품들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잘 안 읽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장르문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추리문학의 고전이랄 수 있는 엘러리 퀸, 아가사 크리스티, 심지어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등등 걸출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제대로 완독하지 못했다. 2017년도에는 독서의 폭도 넓히고, 고전 작품들도 자주 접해 봐야겠다. >>
어쨌든, 이렇게 섬으로 떠나는 일곱 명의 등장인물들 외에 육지에 남아있는 인물들도 있다. K대학 미스터리 회원이었지만 현재는 탈퇴한 '가와미나미'와 '모리스'라는 인물이다. '가와미나미'는 수상한 편지를 받게 되는데, 내용은 이렇다. '네놈들이 죽인 치오리는 나의 딸이었다.' 반년 전 죽은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편지였는데, 그렇다면 나카무라 세이지는 살아 있단 말인가? '가와미나미'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동생인 '나카무라 코이지'를 찾아가는데, 그 역시 이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코이지'의 집에 놀러와 있던 '시마다 기요시'는 이 기묘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결국 '시마다 기요시'는 섬으로 떠난 친구들을 걱정하는 '가와미나미'와 함께 '츠노시마'에서 벌어졌던 반년전 살인사건의 진실을 좇기 시작하고, '모리스'는 안락의자 탐정 역할을 자처하며 함께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반면, 섬에 도착한 일곱 명의 미스터리 회원들은 조금씩 기괴한 건축물에 적응해가고,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십각형의 홀에 모인 일곱 명의 회원들 앞에 살인을 예고하는 이상한 조각들이 발견된다. 그 조각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제1피해자', '제2피해자', '제3피해자', '제4피해자', '최후의 피해자', '탐정', '범인'.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범인이고, 누가 탐정이 된다는 것인가? 약간의 두려움 속에서도, 자기들 중 누군가의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해 버리지만, 그 카드패의 명명처럼 제1피해자가 생기고, 제2피해자가 생기기 시작한다. 동료들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살해당하는 와중에 언제 자신의 순서가 될지 모를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 속에 그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을 데리러 올 배는 일주일 뒤에나 올 예정이고, 거친 폭우와 파도로 뒤엉킨 '츠노시마 섬'은 고립무원 그 자체일 뿐이다.
<십각관의 살인>은 이렇듯 육지와 섬이라는 공간을 번갈아가며 반복 교차되는 '이중 구조'를 취하고 있다.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고립무원의 '츠노시마 섬'의 인물들과 사건을 추리하는 육지의 인물들이 반복 교차되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꼭짓점에 도달하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십각관 내부의 밀실트릭이 공개되며, 범인의 의도와 목적, 정체까지 밝혀진다. 개인적으로 범인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 인물이 이 인물과 동일인물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다만 범인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고, 범인의 의도도 약간은 억지스럽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고, 모든 사람의 원한의 크기나, 생각, 의도는 다 제각각이기도 하니...
마지막으로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관 시리즈' 중 현재 <시계관의 살인>까지 읽어 본 나로서, 이 시리즈 나름의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첫 번째, 일본 곳곳에 '나카무라 세이지'의 독특한 건축물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것! (물론 그러니까 '관 시리즈'겠지만) 두 번째, 무서운 살인사건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호기심으로 늘 그 현장에 항상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 세 번째, 범인은 절대 완벽하지 않다는 것! 나중에 모든 진상과 트릭이 밝혀질 때 예상치 못했던 범인의 실수가 매 시리즈마다 나타난다는 것! 네 번째, 범인은 경찰과 같은 조직에 의해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 다섯 번째,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트릭은 엄지척이라는 것! 이상 조금은 긴 서평이 되었는데, 앞으로 남은 관 시리즈도 조금씩 정주행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