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친정에 갔다가 옛날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정리한 사진들을 동생들이 이사하면서 큰 상자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디지털 기기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인화보다는 컴퓨터나 핸드폰 속에 이미지 파일 형태로 사진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이젠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예전처럼 많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한 뭉텅이의 필름 사진들을 발견했을 땐 익숙한 듯하면서도 조금은 낯설기도 했다. 동생과 나는 방바닥에 자릴 잡고 앉아 상자 속 사진들을 바닥에 펼쳐놓고 한 장씩 한 장씩 살펴보았다. 언제 찍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진들, 잊고 있었던 기억과 추억들을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을 바라보며 나와 동생은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했다.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곱게 웃고 있는 젊은 시절의 어머니, 외할머니 집 텃밭에서 밭일을 도와주고 있는 나와 어머니, 어디인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느 분수대 앞에 앉아 활짝 웃고 있는 나와 어머니... 등등 한 장, 한 장, 사진들을 때마다 그리움을 동반한 궁금증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머니가 이 사진을 찍고 있던 순간에 나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어머니와 함께 갔을 이 장소는 어디일까?, 어린 시절 내 옆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무수히 많은 생각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니고, 가슴속을 헤집고 다녔다.

이렇듯 사진이란, 삶의 어떤 한순간을 작은 비밀과 함께 프레임 속에 영원히 붙잡아 둔다. 누군가 그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땐 그 작은 비밀이 풀리기도 한다. 기억과 옛 추억과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미카미 엔의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은 그런 사진 속에 숨겨져 있는 작은 비밀들을 풀어헤쳐가는 감성 미스터리 소설이다. 우리에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으로 더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도쿄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섬 '에노시마'가 소설 속 배경이다. 백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대를 이어온 니시우라 사진관. 이곳을 운영하던 할머니의 사후 유품을 정리하러 온 외손녀 마유, 여러 가지 사연으로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과 마을 사람들이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어렸을 적 할머니의 영향으로 사진을 좋아하게 된 마유는 사진을 전공했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마유는 미수령 사진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사진들 중 오랜 세월 동안 똑같은 얼굴로 사진에 찍혀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사진 속 모습과 너무나 닮은 한 남자가 니시우라 사진관을 방문하는데, 그의 이름은 '아키타카'.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기억의 일부분을 잃어버린 사연을 갖고 있다. 그에게 호감을 느낀 마유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일을 돕겠다고 말하는 아키타카. 이 둘은 니시우라 사진관의 미수령 사진들을 함께 정리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렇게 함께 사진 속 작은 비밀들을 풀어가며,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과거의 트라우마와 아픔을 마주하게 되고, 용서와 화해의 길에 조심스럽게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게 된다.

나 역시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진'이라는 단어 하나로 선택했던 책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이다. 단, 기대와는 달리 어떤 커다란 반전이나, 임팩트 있는 미스터리적 요소가 부족해서 조금 아쉬웠달까? 그러나 오히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일본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감성적인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라 크게 나쁘진 않았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묵묵히 사진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행복과 기대와 설렘을 지켜보았을 니시우라 사진관. 이제는 변화하는 세월 속에 사라지고 풍화되겠지만, 가끔은 카메라 속 필름을 필름통에 넣어 사진관에 맡기고, 사진이 나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해서 찾으러 갔던 그 시절, 그 시간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책속 밑줄>


"사진이라는 건 찰나의 시간과 장소를 잘라내는 행위라고 했죠. 저는 지금 이 섬에 있는 저를..... 얼굴을 빼앗기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제 모습을 기록해두고 싶습니다. 되도록이면 원래대로 돌아갈 기회를 준 가쓰라기 씨가 찍어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증명하고 싶어요."


"무엇을요?"


"가쓰라기 씨가 사진을 다시 시작해도 누군가의 인생이 그리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는걸요. 한 번 망가졌던 인생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걸요."


마유는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 그녀는 이렇게까지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가지 일로 머리를 싸매거나, 오랫동안 후회하거나, 불안을 느끼며 살아왔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평생 바뀌지 않는 사람도 분명 없을 것이다.


"딱 한 장만이라면 찍을게요."


"물론 좋습니다."


아키타카는 안도한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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