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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소원을 빌어요
이누이 루카 지음, 홍성민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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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책의 겉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숲에 소원을 빌어요'. 무언가에 이끌린다는 것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내 안의 어떤 감정들이 그것을 원하고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책 속 7명의 등장인물들도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도심 속, 어둠처럼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원시림의 숲에 이끌려 이 숲을 방문하게 된다. 각자의 아픔과 고통, 슬픔, 상처들을 가슴속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숲에 발을 디딘 그들에게 마법처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숲이 주는 대자연의 아름다움, 울창한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지저귐,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의 손길, 고요함 속에 느껴지는 숲의 포근함, 숲의 향기를 머금은 맑은 공기. 도심 속에서는 느낄 수 없던 벅찬 감동들을 그들은 숲을 통해 느끼고 교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 숲을 지키는 유일한 한 사람 '숲지기'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그들은 마음을 열게 되고, 상처, 고통, 슬픔, 아픔도 서서히 치유되어 간다. 숲은 어머니의 품처럼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바라보며 따뜻하게 품어준다. 어린 새들이 어미 새의 품속을 벗어나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처럼, 숲을 방문한 그들 역시 숲 속을 벗어나 다시금 세상에 나설 용기를 얻게 된다.
'숲에 소원을 빌어요'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보고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그녀만의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 나간다. 왕따를 당한 사람, 실직한 사람, 불치병에 걸린 사람, 자신의 자릴 잃어버린 사람, 중년의 서글픔을 간직한 사람 등 총 7가지 무지개색처럼, 7가지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나의 이야기, 내 주변의 이야기처럼 가깝게 느껴져 공감하며 읽게 되고 마지막 그들의 상처가 아물고 해피엔딩으로 끝날 때에는 마치 나의 고민과 상처들이 해결되고 치유된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감동으로 벅차오르기도 했다.
이것이 숲만이 가질 수 있는 마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답답한 일상 속에서, 이별의 상처 속에서 내가 찾아갔던 숲도(비록 이 숲 속의 숲지기는 없었지만)치유의 공간으로 나를 가득 채워주었다. 밤하늘 달빛이 고요하게 비치는 숲 속의 공간은 혼자서 눈물 흘려도 힐긋힐긋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 편했다. 천천히 숲을 걷다 보면 내 안에 쌓여있던 것들이 내 몸 바깥으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았고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오롯이 나를 감싸 안아 주었다.
자연은, 숲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설픈 위로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만으로도 크나큰 위로를 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모습은 이곳에 잘 왔다고 나를 반겨주는 그리운 이의 손길 같고, 풀 속 어딘가 들리는 풀벌레 소리는 그 마음 이해한다며 같이 울어주는 다정한 이의 울음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책속의 숲처럼 울창한 원시림은 없지만,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에 소소하게 나마 심어져 있는 나무와 풀들 사이로 난 길을 나는 가끔 걷곤 한다.
걷다 보면 알게 모르게 마음속 응어리들이 살살 풀리는 느낌이다. 다만 이곳도 책 속에 등장하는 테너 톤의 맑은 목소리를 간직한 숲지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녕하세요! 산책하세요? 저 쪽 정자에도 한 번 가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또 오셨네요."라고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따뜻하게 미소 짓는 그런 숲지기가.
<책 속 따뜻한 문장들>
: "뭔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을 사랑하는 일처럼 멋진 일이에요. 이 숲은 거울 같아요.
숲의 나무와 풀, 꽃과 새를, 구불구불 이어지는 오솔길을 사랑하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다. -
나는 그렇게 믿어요. 호타카는 잎을 억지로 따려 하지 않고 저절로 떨어질 때를 기다려 주었어요.
그래서 착한 아이라고, 괜찮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던 거예요. 그래요. 호타카는 '때'를 알고 있었어요.
숲의 나뭇잎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때를! 사람의 심장이 사랑으로 물드는 때를!" -50페이지-
: "저 자작나무는 스스로 일어설 수도 없고 구를 수도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달라요. 구르고, 쓰러졌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바꿔 말하면...."
"자신이 넘어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스스로 일어설 수 없어요, 영원히.
그러니까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비참하게 쓰러졌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는 경험이 인생의 자양분이 됩니다." -92페이지-
: 그렇다. 모든 것이 그야말로 일제히 반짝거렸다. 단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
엷게 낀 구름 사이를 빠져나와 한 줄기 빛이 자작나무 위로 떨어진다.
빛은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하나, 또 하나의 숲으로, 초원으로 비쳐든다.
"................ 보였어!"
단은 깨달았다. 이것이 죽어 가는 자의 눈이다.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을 눈앞에 눈 채 죽고 싶지 않다고, 살고 싶다고 절실히 바라는 자의 눈.
단은 다시 소리 내어 울었다. 한참 동안 그는 서럽게 울었다. 마지막 눈물이 그의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오열로 일그러져 있던 단의 입은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순간, 그의 얼굴에 왜 미소가 지어졌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단은 지금 이 순간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잊지 않도록. - 140페이지 -
: "아무도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무얼 하든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을 때다,라고.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를 두고 무리인지 어떤지 생각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선생님도 그래요. '이 나이에'라든가, '다 늦었다'라고 생각해도 선생님의 남은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젊은 때죠."
반짝이는 가랑눈 알갱이가 청년의 벤치 코트를 스치듯 지나갔다. -239페이지 -
: 종달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하늘 높이, 멀고 먼 저편으로, 빛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간다.
"아름다운 세계에 살고 있어요, 우리는. 살아 있고 웃을 수 있어요......... 이것도 행복의 한 조각이에요." -293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