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저가 빌리를 만났을 때 - 자폐증 아이와 길고양이의 특별한 우정
루이스 부스 지음, 김혜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서로간에 교감할 수 있는 혹은 잘 어울릴 수 있는 인연이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좋은 사람, 아무리 좋은 동물이 나에게 왔다고 해서 운명처럼 모두 다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서로 맞지 않는다면 헤어지기도 하고 떠나 보내게 되기도 한다. 작년 10월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어린 강아지'를 입양했었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면 내 공허함과 아픔이 치유될 것이라 굳게 믿었었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로맨틱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기적이였을 나는 그 강아지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가끔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드라마틱한 상황을 기대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주인을 살린 반려견의 이야기, 주인을 잊지 못해 먼 길을 달려온 반려견의 이야기, 사람의 죽음을 미리 알고 그 곁에서 마지막을 함께 애도하며 지켜보는 고양이의 이야기 등등 그런 기적같은 이야기속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랬던 것 같다. 어머니가 그리워 혼자 울고 있으면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했지만 그 아이는 그냥 자신의 삶에 충실한 평범한 강아지일 뿐이였다. 어쩌면 내 지나친 기대 및 망상이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 당시 가끔은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길 바랬던 것 같다. 결국 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없어 다른 가정에 입양을 보냈다. 마음이 무척 아팠지만 입양된 가정에서 가끔 그 아이의 사진을 보내 주었는데 나와 있었을 때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슬프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주인도 그 아이를 정말 사랑해 주었고 그게 눈에 보였다. 나보다는 그 새로운 주인과의 인연이 그 아이에게는 더 잘 맞고 어쩌면 그게 그 아이에게는 진짜 인연이였을 것이다.

 

 서두가 조금 길어졌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프레이저와 빌리 또한 서로에게 맞는 인연이자 운명이였다. 책의 저자이자 '프레이저'의 엄마인 '루이스 부스'는 오랜 연애생활을 끝으로 남편인 '크리스'와의 사이에 '프레이저'라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낳게 된다. 하지만 '프레이저'는 평범한 남자아이가 아닌,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로 태어났다. 설상가상으로 '프레이저'는 근긴장 저하증이라는 희귀병까지 앓았다. 근긴장 저하증이란 손발의 근육에 힘이 없어 물건을 제대로 들 수도 없고,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어서 그저 무기력하게 누워있어야만 하는 질병이다. 건강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것도 보통의 부모입장에서는 힘든데, 이런 장애까지 안고 태어난 '프레이저'를 키우기는 이들 부부에게 크나큰 고통이고, 시련이였다.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주변에는 전혀 관심을 두려하지 않았고 그 세계의 질서에 부합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극도로 예민해지며 감정이 폭발하곤 했다. 때문에 부부는 하루하루를 예측불가능한 상황속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었다. 잠깐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전에는 아이를 똑똑하고 누구보다 유능한 아이로 키워야겠다는 욕구에 불타올라 있었는데 (물론 아직 아이는 없다.) 그런거 정말 다 필요없고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난다면 그보다 더한 축복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이런 힘든 상황속에서 '루이자 부스'는 어느날 집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 '토비'에게 '프레이저'가 관심을 갖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고양이 '토비'는 '프레이저'에게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오히려 '프레이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프레이저'는 그런 '토비'에게 소리 지르고 화를 냈으며 결국 '토비'는 '프레이저'를 두려워해 가까이하지 않게 되었다. 비록 서로간에 소통없이 관계가 끝나버리긴 했지만 '루이자 부스'는 이를 계기로 '프레이저'에게 알맞는 고양이를 찾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시도 끝에 캣츠 프로텍션이라는 곳에서 '프레이저'는 '빌리'라는 길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그 둘의 만남은 마치 운명처럼, 서로 사랑에 빠져버린 연인과 같았다. '빌리'가 '프레이저'에게 먼저 다가왔고 '프레이저'는 그런 '빌리'에게 자신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길고양이 '빌리'는 '프레이저'가 자신만의 세상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프레이저'가 감정적으로 격해지면 다른 곳에 있다가도 곁에 와서 응원을 해주었다. 특히 '프레이저'는 씻는 것을 싫어해서 '루이스 부스'부부는 늘 애를 먹었는데 어떻게 알고 '빌리'는 목욕탕안으로 들어와 양발을 욕조에 딛고 '프레이저'곁에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그러면 '프레이저'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씻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또한 근긴장 저하증으로 '프레이저'는 계단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빌리'는 계단을 먼저 올라가 위에서 '프레이저'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프레이저'는 '빌리'와 놀기 위해 기꺼이 계단을 올랐다. 그 밖에 용변가리기, 학교가기, 친구들과 어울리기 등등 '프레이저'가 하기 힘들고, 하기 싫은 일들이 닥쳤을 때마다 '빌리'는 늘 '프레이저'의 마음을 읽고 그의 곁으로 다가가 응원하고 교감하고 이끌어 주었다. 처음에 '루이스 부스'도 이런 것들이 그저 자신의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 수록 '빌리'의 그런 놀라운 능력은 '프레이저'가 회복될 때마다 확실한 증거가 되어 주었다. 물론 주변의 전문가들의 많은 도움도 있었지만 애초부터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부했던 '프레이저'가 그들과의 교류속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해준 것도 '빌리'였다. 다른 보통의 아이와는 달리 '정규학교에는 결코 입학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냉담한 현실적 답변을 들어야 했던 초창기 때와는 달리, 오히려 보란듯이 '프레이저'는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정규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자신만이 가졌던 작은 세상을 깨고 '빌리'가 열어준 커다란 세상 밖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기적'이라 말하기 전에 '인연'이라 말하고 싶다. 애초에 '프레이저'는 '토비'라는 고양이와 소통하길 원했지만 그 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치 나와 나의 반려견처럼... 또한 캣츠 프로텍션이라는 곳에 '빌리'를 만나러 갔을 때 그곳엔 '빌리'말고도 '베어'라는 다른 고양이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베어'는 '프레이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프레이저'와 '빌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엔 그들 주변의 세상은 흐려지고 오직 그 둘만이 선명하게 그 자리에 남았다. '빌리'와 '프레이저' 그 둘은 그 첫 순간부터 느꼈을 것이다. 우린 세상에 둘도 없는 진정한 친구가 될 거라고...

 

"첫날 저녁부터 그 둘 사이에는 마법 같은, 초자연적인 뭔가가 있었다. 빌리에게는 프레이저만이 속한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었다. 우리 중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세상 말이다. 빌리 덕분에 프레이저는 자신이 갇힌 세상 속에서 덜 외로울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빌리는 그 고립된 세상 속에서 아이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었고, 아이는 점차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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