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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ㅣ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단순히 책표지가 아름답다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선택한 책이였다. 뭔가 아름다운 내용의 서정적인 소설이겠거니 하면서...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다른 내용과 결말에 책을 덮고 난 지금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 버렸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그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의 사고 또한 무너진 느낌이였다. 이것이 언어의 연금술사라 불리우는 이장욱 작가의 마법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주된 내용은 대학동창인 A의 부음소식을 전해 듣고 김,정,최가 K시에 있는 A의 장례식장으로 떠나는 여정속에 펼쳐지는 하룻밤의 기이한 행적을 담은 로드무비 형식의 소설이다. 총 13장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는데, 각 장마다 김,정,최가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하는 1인칭 시점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결국 각 장마다 주체가 되기도 하고 하나의 대상인 타자가 되기도 한다. 같은 이야기인데도 각 장을 읽어 갈때마다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분명 사람마다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도 모두 똑같이 보고, 느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질적으로 현실에서도 우리는 같은 것을 보았다고해서, 모두 동일한 느낌과 동일한 생각을 갖지는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이 소설속의 김,정,최의 이야기를 읽을때는 어쩐지 낯설게 느껴짐을 부인할 수 없었다.
또한 각 장의 에피소드 제목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낯익은 느낌을 받았는데, 바로 영화제목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무방비 도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매그놀리아,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등 본 영화도 있고, 보지 못한 영화도 있지만 그 영화의 내용으로 다음 장에 펼쳐질 에피소드를 예상한다면 그 예상은 빗나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핵심적인 몇가지 소재만을 차용했기때문이다. 김,정,최는 죽은 A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회상한다. 읽어가다보면 그들이 A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A는 그렇게 그들의 회상속에 존재할 뿐, 별다른 실체는 책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은 실체도, 존재도 불확실한 알파벳 A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물론 그녀의 친구들 역시 명확한 이름으로 불리워지진 않는다. 단지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성'만이 존재 할 뿐이다. 이것 역시 현실과 환상의 모호함속에 그들을 담아두기 위한 작가의 장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어떤 그런 것...
A가 죽기전에 김,정,최,염은 그녀의 반지하방에 모두 모여 그녀가 만든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주인공들이 자동차를 타고 길을 떠나는 내용이다. 긴 터널을 지나며 롱 테이크로 이어지는 시퀀스가 지루한 영화이다. 마치 김,정,최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닮아있는 영화이다. 보는 내내 혹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텍스트가 A라는 그녀가 만든 영화인것인가? 내가 지금 그녀의 관객이 되어 그녀의 영화를 텍스트로 보고있는 것인가? 나는 단지 김,최,정의 이야기의 또 다른 독자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인데, 계속해서 기묘한 기분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도중 죽은 A에게서 온 문자메시지는 더더욱 충격적이였다. 다만 나의 충격과는 별개로 김,정,최는 그렇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담담함을 보인다. 다만 A의 문자는 그녀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모호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여서, 두렵지만, 아름다운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김,정,최는 새벽녘 어느 한적한 고속버스터미널에 당도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의 픽업을 기다리고 있는 염의 모습도 목격된다. 마지막 장 '염의 이야기'부분에서는 3인칭으로 시점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굽어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있음을 알게된다. 바로 시종일관 그들을 비추고 있었던 카메라의 존재를...그리고 그 카메라밖의 또 다른 시점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순간 충격과 전율에 책장을 덮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런 시점의 확장을 이용하여, 독자들을 하나의 프레임안에서 또 다른 프레임밖으로, 그리고 또 그 밖으로 몰아내면서 현실이라 믿었던 경계들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종국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익숙함 속의 낯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결국 A의 장례식장이 있는 K시에 당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은 끝나게 되는데 카메라를 넘어선 프레임밖의 또다른 시선, 그것은 프레임 밖으로 내 몰린 나 자신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를 A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염의 독백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시종일관 의문과, 묘한 끌림에 읽어나간 천국보다 낯선은 나에게 공포와, 기묘함, 뒤틀리고 엇갈린 진실속에 현실과 환상의 무너짐을 경험하게 해준 책이다.
『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염은 생각했다. 새벽 구름들 사이로 맑은 별들이 반짝였다.
그때 다시 엉뚱한 생각이 염의 뇌리에 떠올랐다. A가................
죽은게 아닐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제 겨우 삶을 시작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뒤따라왔다.
그는 방금 떠오른 두 개의 문장을 순서대로 천천히 발음해 보았다.
A가.....................죽은 게 아닐지도 몰라. 그 애는 이제 겨우 삶을 시작한 게 아닐까.
죽음 쪽에 남아 있는 건 그녀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아닐까.
A는 단지 영화의 프레임 밖으로 나간 게 아닐까.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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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들의 시선을 마주 보던 카메라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더 위로 올라갔다.
인물들이 점점 작아졌다. 터미널 건물과 광장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하늘의 한가운데서 카메라가 정지했다. 새벽 별빛이 은은하게 도시에 쏟아져 내리는 시간이었다.
이제 막 깨어나려는 듯 해안 도시의 불빛이 점점이 켜지는 시간이었다.
먼바다 쪽의 수평선에 붉은빛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천국보다 낯선,
그런 시간이었다.』
- 249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