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비밀 가방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140
정경숙 지음 / 길벗어린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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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가방을 머리 위에 쓰고 있는 악어의 표정이 침울해 보인다. 책 제목인 악어의 '비밀 가방', 가방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책장을 넘기면 무척 소심해 보이는 모습의 꼬마 악어 도롱이가 보인다. 커다란 가방 속엔 무언가 가득 들어있다. 바로 소심한 꼬마 악어 도롱이의 다양한 가면들이다.

소심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세상에 당당히 나서기 위해 필요한 가면들. 재잘거리기를 좋아하는 원숭이 가면을 쓰면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너무 많은 말을 해서 추후 타격이 크긴 하지만. 혼자 있고 싶은데 자신을 가만두지 않는 친구들에겐 쌀쌀맞은 늑대 가면을 꺼내 쓴다. 따끔하게 친구들에게 쏘아붙이지만 돌아서면 오히려 그 가시가 자신을 찌른다. 가면 뒤 자책하는 도롱이의 마음이겠지.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겐 무시무시한 사자 가면을 쓰고 더 무섭게 포효를 한다. 역시나 돌아서면 불같은 화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태운다. 가면을 쓰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다. 더 당당해질 수도 있고, 더 용감해질 수도 있고, 더 명랑해질 수도 있다. 분명 좋은 것 같은데 가방 속 가면을 벗고 나면 찾아오는 후회와 자책은 아마도 진짜 내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가면을 쓴 가짜 모습의 나와 가면을 벗은 진짜 나의 모습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




그 괴리감이 소심한 악어 도롱이의 마음을 좀 먹어갈 때쯤 가방 속 가면들이 서로 자기들이 '도롱이'라고 우기기 시작한다. 여기서 책의 구성이 참 재미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책장을 넘기면 양쪽 면지에 가방 손잡이가 보인다. 책장을 넘기는 것 자체가 가방을 여는 것이지! 가방을 열면 좌우로 면지가 넓게 펼쳐진다. 놀라움도 잠시! 사방에서 들려오는 가면들의 아우성!! 진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아마도 두 귀를 막고 싶을 것 같은 느낌이다. >x<

그때 소심한 악어 도롱이는 힘차게 외친다. "진짜 도롱이는 나라고!!!" 가면을 벗고 처음으로 용기 있게 자신의 마음을 내보인 도롱이. 도롱이의 진심이 통했을까? 뭔가 홀가분함을 느낀 도롱이. 이제는 비밀 가방 속 가면들이 필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방을 들고 어딘가로 향하는 도롱이의 발걸음이 가볍다. 주변 풍경도 도롱이 마음처럼 해사하니 맑다.


가면 뒤의 진짜 나를 찾아가는 <악어의 비밀 가방>은 걸벗어린이 그림책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가면을 써야 할 때가 종종 있다. 화가 나도 참고 웃어야 할 때가 있고, 슬퍼도 울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뭐, 일단 기본적으로 몇 가지 종류의 가면을 구비해야 안전하게 나 자신을 사회로부터 지킬 수 있다는 말이지. 물론 가면이 아닌 이성적 감정 조절이란 표현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온전히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때론 위험할 때도 분명 있다. 때문에 적절한 가면 쓰기는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필수조건인 것 같다.

다만 <악어의 비밀 가방> 도롱이처럼 '전적으로 가면에 의지'하게 되면 어느 순간 진짜 나는 사라지고 가짜인 내 모습에 휘둘릴 수 있으니 적절한 균형 유지가 필요할 것이다. 가면 뒤의 진짜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가끔 가면을 통해 험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지혜를 갖추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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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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