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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지음 / 소동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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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복잡한 날, 마음이 울적한 날, 그런 날들에 나무가 있는 풍경 속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반짝이는 태양빛을 눈부시게 머금은 초록빛 환영에 살며시 눈을 감으면 감미롭고도 따뜻한 위안을 받기도 한다. 나무는 그렇게 어둠처럼 신비롭고 고요하게 세상을, 나를 말없이 품어준다. 이난영 저자의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는 회색빛 빌딩 사이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도시민들에게 쉼을 주고, 위로를 건네는 '식물 에세이'이다.
저자가 직접 그리고, 겪은 사람과 식물 사이의 유대와 경험담들이 가슴이 아릿할 정도로 와닿았다. 책상에 앉아 잠깐 읽어봐야지 했다가 단숨에 읽어버린 책.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그냥 눈물이 났다. 감정의 폭풍이 몰아치며 답답하기도 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무처럼, 혹은 나무를 사랑하는 저자와 같은 마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의 깊은 어둠은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심연의 세계로 살아있는 생명들을 품어준다. 어둠이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사실 이것도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처음에는 책을 오해했었는데, 읽을수록 제목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고 그 과정 속에서 흙은 마구 파헤쳐 지며 수많은 나무들은 잘려나간다. 그들은 들었을까? 두려움에 가득 찬 나무들의 비명 소리를? 하늘과 땅을 위협하듯 우뚝 솟아있는 크레인의 모습은 위압적이고 별로 낭만적이지 못하다. 저자는 크레인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였기를 상상한다. 저자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옛날 서울 달동네에 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오래되어 무너지듯 서 있는 작은 빌딩 옥상에는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텃밭이 있고, 콘크리트 돌담 틈새엔 민들레가 노랗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퇴근 후 지친 어깨를 떨구며 군데군데 어둠을 밝히는 샛노란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걷는다. 그냥 하루가 고단하고, 이 도시가 쓸쓸하고, 답답하다 느꼈다. 그렇게 작은 고샅길을 걸어가다 보면 종종 위로를 받을 때가 있었다. 발밑 틈만 있다면 작게 피어나 초록빛 잎새를 너울거리는 작은 풀들의 소박한 인사. 고생했어, 수고했어. 그러면 나는 이 작은 생명들을 밟지 않으려고 징검다리를 건너듯 길을 걷는다. 누군가 봤다면 우스꽝스러웠을 모습이었겠지만 일상의 작은 행복이었던 순간. 그러면서 상상을 해본다. 이 골목이 비밀의 숲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그냥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그림과 글에 동화되어 내가 느꼈던 그 시절들의 작은 낭만과 오버랩되면서 행복했다. 제주도 삼림이 파괴되고 개발되는 장면에선 나도 분노하고 슬펐다. 지키려는 사람들과 파괴하려는 사람들. 왜 사람들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려 하지 않는 것일까? 얼마나 더 잘 살려고, 얼마나 더 편해지려고 이기심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경쟁한다. 그런데 가끔 버겁다. 힘들다. 나무의 위로가 필요할 때이다. 가슴속나무의 씨앗을 피워내고 나무의 어두움에 안겨 침잠하고 싶다. 우린 모두 한 그루의 나무를 가지고 있다. 잊지 말자...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나무 한 그루씩 마음속에 품고 있다. 주머니 속 씨앗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언젠가 나의 나무도 희망처럼 자라지 않을까? 사람들은 기도한다. 숨을 쉴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우리도 당신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나무에게 기도한다.
도시는 개발을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을 지녔다. 끊임없이 건물이 세워지고 나무가 잘려나간다. 도시의 성장만큼이나 사람들의 가슴에 뚫린 구멍도 커간다. 그 개발의 뒷면, 어두운 곳에 작은 생명들이 있다. 잘린 나무가 있고, 콘크리트 틈새를 뚫고 나오는 여린 식물이 있고, 옥상에서 식물을 키우고 함께 모여서 TV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약해 보이지만 도시의 황폐를 감싸고 가슴 뚫린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존재다. 나무의 어두움이 깊어야 그늘의 품이 더 넓어지듯, 도시를 다채롭고 깊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 책은 가슴에 구멍 하나 뚫린 채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녹색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한다. 벌판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들꽃, 돌담 틈새의 작은 풀, 고향 집 감나무, 혹은 나만의 거대한 나무. 무엇이든 마음속에 나무 한 그루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을 테니 그걸 기억하고 떠올리며 숨을 쉬라고 한다. 그러면 식물이 당신을 위로할 것이라고. 글과 손그림으로 이뤄진 이 책은 녹색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한 기도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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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